커티스 에이씨텍

평론가는 전문적인것이지 객관적인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거에요. 객관적, 주관적인것의 판단 척도는 결국에 다수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다수에게 이익이 되도록 우리는 규범들을 만들어놓았고, 그것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녀요. 반대로 소수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주관성과 특수성을 지니죠.(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이기성을 지니겠죠.)  영화평론가의 평가가 객관적인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영화종사자는 아니지만 영화를 깊게 즐기기 시작하면서, 평점체계가 점점 세분화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작품은 4개가 아닌 3개부터가 기준이 되었고, 3개를 넘으면 '볼만한 작품'인거에요. 왜 그렇게 하느냐면 그래야 내가 즐기는 영화들의 구조들을 세분화하여 평가할수 있기 때문이죠. 가령 이런겁니다.

 '짜장면대신 짬뽕을 선호하니 짬뽕이라면 무조건 호'라고 짬뽕애호가는 말할겁니다. 그런데 짬뽕이라는 음식을 깊게 즐기기 시작하면 '맛있는' 짬뽕과 '맛없는' 짬뽕을 구분하기 시작할겁니다. 같은 음식이어도 요리사의 솜씨와 개성에 따라 맛이 다르고, 요리는 재료의 신선도에 따라 맛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재료에 따라 다르고, 요리사에 따라 다르고, 신선도에 따라 다르고, 음식점을 방문한 시간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그렇게 세부적인 항목들이 총체적으로 얼마나 만족스러운가에 따라 음식을 깊게 즐기게 되겠죠. 평론가란 그런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예시가 적절할런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특정 분야에 방대한 지식을 갖게되면, 오히려 초심자가 그 분야를 어떻게 접하는지 잊는다고 하죠. 같은 이치로 영화를 깊게 즐기다보면 자신의 취향과 영화적 지식이 결합된 분석체계를 갖습니다. 그것은 그 분야를 오래 탐구할수록 전문적이게 되고, 그 자체로 '특수성'을 갖습니다. 그리고 전문화될수록 보편성을 유지하기엔 더 많은 이해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지식체계의 깊이는 깊어지지만 그것의 전문화와 객관화는 성질이 조금 다릅니다.

 객관성의 중요한 특성이 보편성인데, 보편성을 갖는 일반인들이 모두 영화인은 아닌것이죠. 보편적 관객이 보기에 평론가나 영화인은 특수성을 갖는 사람들인 겁니다. 친구나 연인과 혹은 혼자, 어떤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까 궁리하다 찾는 영화관람과는 다르게, 영화인들에게 영화는 직업이고 삶인겁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알고있는 업무적 지식과 노하우와 같은 성질의 것이요. 같은 영화를 감상해도 전문가의 시야에 보이는 정보와 대중이 보이는 정보가 다를것이고, 다르게 입력된 정보는 다르게 출력됩니다.  아마 일반인의 시야로는 겉으로 상처나서  피가보여야 '아픈 상태'인것이 전부라면, 의료인의 눈에는 정밀한 진료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되는 전문적 진단인 것과 같은 것이겠죠.


 저도 영화를 일반인보단 깊게 즐기기 시작하면서, 시나리오 작법책을 읽고 예술/독립영화들을 감상하면서 저만의 영화적 시야의 구조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인가, 아닌가는 매우 피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냥 멍때리고 부담없이 봐도 재밌다면 추천하고 아니라면 말을 삼가합니다. 현대미술을 보며 예술이란 예술병 걸린 사람들의 사치일뿐이라고 생각한적도 있었는데, 어느덧 제가 마이너한 영화들에 깊은 감정을 느끼는 오타쿠가 되어있더라구요. 물론 걔중에도 난해한 영화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대중적일 영화와 아닐 영화를 매우 잘 구분하는 평론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취향을 잃지않고 대중에게 어떤 영화가 가진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토로하는 개성인중에 한명이에요. 저도 평론가들의 이런저런 입장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제가 재미있느냐 없느냐가 거의 전부인 사람이에요.

 예술적인 영화, 평론가들의 영화, 상받은 영화를 탐구하며 깊이 고찰한 시기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내 자신이 어느샌가 없더라구요. 평론가들의 말에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사가 꼭 아프다고 해야 내 몸이 아픈것을 아는건 아니잖아요.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깨어난 내 머리가 아픈것은 내가 아는것이잖아요. 문턱을 넘다 부딪힌 발가락이 아픈건 내가 아는것이잖아요. 의사가 병명을 진단해야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픈것을 아는게 아니라, 내가 아프면 그게 아픈거잖아요.


 엊그제 <콰이어트 플레이스2>를 극장에서 보고나오는데, 뒤에 어떤 여자분이 '왜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만드는거야?'라는 투의 말을 하시더군요. 속으로 '영화볼 줄 모르네'라며 비웃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얼마나 오만했는가 싶습니다. 내가 남보다 옳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면 내가 틀리더라도 올바른 누군가를 내가 사랑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조차 지극히 인간적인거라 위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