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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아스타 꽃밭에 풍차까지... 여기 진짜 한국 맞아?

[여행] 가을 인생 샷 명소, 경남 거창 감악산 '꽃&별 여행' 현장에 가다▲  감악산 풍력발전단지 부근에 들어선 아스타 꽃과 구절초 꽃밭이 이루는 거창군의 축제 ‘꽃& 별 여행’ 현장. 주차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장호철감악산(紺岳山, 952m)의 구절초꽃 소식은 <오마이뉴스> 기사로 들었다. 감악산? 처음 듣는 산 이름인데도 그 울림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인터넷 검색으로 그게 경남 거창의 안산이라는 걸 알았다. 산 중턱에 있는 연수사(演水寺)는 본디 신라 애장왕 때 감악 조사(祖師)가 세운 감악사였으니, 산과 절, 스님의 이름이 모두 '감악'으로 똑같다. 거창군 축제 '감악산 꽃&별 여행'구절초 꽃을 따라가니 감악산 정상 아래 감악 평전(平田)에서 지난 24일 개막하여 오는 17일까지 베풀어진다는 거창군의 축제 '꽃& 별 여행' 소식이 있었다. 축제 이름에 '별'은 밤이면 하늘에서 별빛과 거창읍 야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붙었다. 나는 주말과 공휴일에 '꽃&별 음악회', 거창국제연극제 공연 등이 진행된다는 축제가 아니라, 산등성이에 융단처럼 깔린 보랏빛 아스타 꽃과 구절초 꽃에 홀딱 빠졌다. 아내와 함께 30일 오전 9시쯤 출발하여 감악산 정상 아래에 닿은 것은 11시가 지나서였다. 2016년 3월에 준공하여 상업 운전을 시작한 풍력 2㎿급 7기의 '풍차'가 돌고 있는 감악산 풍력 발전 단지 산등성이에는 흰색, 빨간색, 보라색의 아스타(Aster) 꽃과 하얀 구절초 꽃이 '꽃사태'를 이루고 있었다. ▲  주차장 아래의 보랏빛 아스타 꽃밭. 진한 자줏빛의 꽃은 저 멀리 풍력 발전기 터빈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이룬다.ⓒ 장호철▲  현장에서 거창읍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주차장 가장자리에 핀 구절초 사이로 억새가 휘날리고 있다.ⓒ 장호철   평일인데도 산등성이에는 꽃구경과 사진 찍기에 흠뻑 빠진 나들이객으로 넘쳤다. 흔하지 않은 보랏빛 꽃과 빨갛고 흰 아스타 꽃으로 뒤덮인 산등성이를 거니는 기분은 몽환적이라도 해도 좋다. 사람들이 저마다 온갖 자세로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데 몰두하는 까닭도 거기 있을 것이었다.감악산 산등성이의 '아스타와 구절초' 꽃사태북아메리카 원산의 아스타 꽃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일년초 아스타 꽃인 과꽃(Callistepus)을 개량한 원예종이라고 한다. 세 빛깔 가운데 자줏빛이 제일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자줏빛은 사진에선 밝은 보랏빛으로 비치기도 했다. 빽빽한 아스타 꽃밭은 마치 융단처럼 비탈과 산등성이에 화사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주차장으로 오르는 진입로 오른쪽 비탈에 핀 노란 꽃은 소국(산국의 오기인 듯)과 감국이었다. 흔히 '들국화'라고도 불리는 꽃인데 아직 철이 이른가, 이제 제일 아랫단부터 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등성이 끝에 모두 7기가 풍력 터빈이 돌고 있는데, 파인더에 꽃밭을 담으면 그 끝에 풍차가 걸쳐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풍차 주변의 제멋대로 난 억새밭과 구절초 군락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국적이라면, 보랏빛 아스타 꽃과 어우러지는 풍차는 다소 이국적이었다. ▲  주차장 아래 아치형으로 조성된 아스타 꽃밭에서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풍경을 담고 있다. 앞쪽 언덕엔 구절초가 듬성듬성 피어 있다.ⓒ 장호철▲  주차장 맞은편 산등성이에는 아스타 꽃밭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풍경의 끝에는 풍차가 있다.ⓒ 장호철▲  주차장 건너편 비탈은 감국과 소국밭이다. 철이 일러서 국화는 아주 조금만 피었다.ⓒ 장호철▲  산등성이 위에 조성된 구절초 꽃밭. 자생하는 구절초는 빽빽한 군락이 있긴 하지만, 여기저기 듬성듬성 피었는데 키나 기세가 저마다 달랐다.ⓒ 장호철     심어서 가꾼 아스타 꽃밭은 가지런하게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 산과 들에 자생하는 구절초는 빽빽하게 자란 군락이 있긴 하지만, 여기저기 듬성듬성 피었는데 키나 기세가 저마다 달랐다. 구절초도 국화과 산국속에 속하는 식물이지만 산국, 감국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구절초와 이른 감국, 그리고 억새와 풍차가 어우러진 풍경구절초 사이로 어쩌다 눈에 띄는 연보랏빛 꽃은 쑥부쟁이다. 이 둘을 헷갈리곤 하니, 지인이 '백구자쑥'이라고 정리해 주었다. 꽃 모양과 잎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둘의 차이는 빛깔이다. 하얀 꽃이 구절초고, 자줏빛이 나는 놈은 쑥부쟁이다. 쑥부쟁이는 같은 국화과지만 참취속이라 잎이 다르다. 쑥잎을 닮았다면 그건 볼 것 없이 구절초다. 쑥부쟁이는 이름과 달리 길고 가늘며 좁은 잎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경마다 렌즈를 들이대다 보니, 어디에서든 진득하게 풍경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마스크를 쓴 데다가 연신 셔터를 누르느라 머릿밑과 얼굴에 땀이 배었다. 촬영자는 자신의 파인더를 통해 풍경을 바라본다. 사각형의 프레임에 들어오는 풍경을 갈무리하다 보니, 거기 끼는 전신주나 전깃줄 따위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프레임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한다.가능하면 프레임 안을 의도한 피사체만으로 채우고 싶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명승지에선 방법이 없다. 곳곳에 사진기 앞에 자세를 잡고 이른바 '인증 샷'부터 '인생 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넘치는 상황에선 그건 과욕이다. 늘 그렇듯 돌아가 사진을 정리하면서 상황을 복기하면서 비로소 그 장면의 여운을 맛볼 수밖에. ▲  빨강과 자줏빛 아스타 꽃밭 너머 능선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도, 공제선에 서 있는 사람들도 풍경의 일부다.ⓒ 장호철▲  억새밭 너머 풍력발전기의 터빈, 그리고 하늘과 구름. 풍경은 단일한 요소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호철▲  흰색과 빨간색, 그리고 자주색의 아스타 꽃이 층계를 이루며 저편의 풍차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호철     한 30분쯤 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었는데, 곳곳에 펼쳐진 장관에 조금 흥분했나 보다. 렌즈 뚜껑을 허리에 두른 가방에다 넣었는데, 이게 지퍼를 제대로 잠그지 않아 빠져나왔던 모양이다. 아내가 그걸 지적했는데 나는 다른 데 정신을 파느라 이를 챙기지 못했다. 억새밭까지 찍고 내려오는데, 뭔가 찝찝해서 만져보니 어딘가 빠뜨리고 없었다. 풍경의 복기, '사람도 풍경의 일부'다알려주었는데도 괜찮다며 돌아다니더니, 아내가 혀를 차며 잔소리를 한 바가지 쏟아냈다. 나는 아차 싶어서 왔던 길을 한 바퀴 되짚었지만, 찾지는 못했다. 그렇게 헤매느라, 사진 찍기는 맥이 끊어져 버렸다. 우리는 100m 위쪽에 있는 쉼터에서 쉬면서 땀을 말리고 오후 2시쯤에 하산했다.  ▲  사진의 색감은 실제 사물의 색감과 달리 변형된다. 주차장 아래의 짙은 보랏빛 아스타꽃이 붉은 색감으로 보인다. 사진을 찍는 젊은 부부도 이 풍경의 일부다ⓒ 장호철돌아와 사진 파일을 정리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용인했지만, 파인더 안에 들어와 찍힌 사람들도 그 풍경을 구성하는 일부라는 걸 깨달았다. 셀카봉을 향해 포즈를 취하거나, 일행과 어깨를 겯고 서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사람 등이 내가 정지화면으로 포착한 풍경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렌즈 뚜껑을 새로 장만해야 하지만, 200컷이 넘게 찍어온 감악산의 가을을 한 장씩 넘기면서 나는 더할 수 없이 넉넉해졌다. 시방 익어가는 가을의 끝을, 너무 일러 만나지 못한 피아골의 단풍으로 마무리할지, 흉내만 내고 돌아온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재방문으로 매듭지을지를 고민하면서.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