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의원 정리해고' 日 중의원 해산... 어떻게 진행되나요?
일왕 서명하지만 실질적 권한은 총리가중의원 의장이 '해산' 외치면 '만세' 관행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14일 중의원 해산, 31일 총선 실시 일정을 발표했다. 도쿄=AP 뉴시스일본이 14일 오후 1시 중의원 해산 절차를 진행한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고유 권한인 의회 해산권을 발동하고 오는 19일 총선(중의원 선거)을 공시, 31일 투·개표 실시 등의 일정을 결정한다. 중의원 해산은 아베 신조 전 내각 당시인 2017년 9월 28일 이후 4년 만이다. 정해진 일정으로 총선을 치르는 한국과 달리 중의원 해산을 통해 조기 총선을 치르는 일본의 제도를 문답식으로 설명한다.Q. 중의원 해산이란 무엇인가요.A. 일본의 의회 해산 제도로, 임기가 만료하지 않은 중의원 의원 전원의 지위를 상실케 하는 것을 말합니다.요미우리신문의 비유를 들자면 ‘의원에 대한 정리해고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국회에는 참의원과 중의원이 있는데, 중의원에만 해산 제도가 있습니다. 중의원을 해산하면 의원을 다시 뽑기 위한 총선이 40일 이내에 치러집니다.Q. 중의원 해산 권한은 총리에게 있나요, 일왕에게 있나요.A. 헌법상 중의원 해산은 일왕의 국사행위 중 하나로 돼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일왕이 최종 서명하지만, 실질적 권한은 총리에게 있습니다. 총리가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 일정을 고려해 해산권을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전임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달 초 그달 중순 해산할 계획을 세웠다가 아베 전 총리의 강한 반대로 포기하고 해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14일 해산, 19일 중의원 선거 고시, 이달 31일 투·개표로 해산 일정을 정했습니다. 지난 2일 자 요미우리신문 1면 톱에 ‘14일 해산 다음 달 7일 총선, 기시다 의향 굳힌다’는 기사가 났는데, 기시다 총리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에 이를 보고 “내 권한인데 누구한테 듣고 멋대로 쓰냐”고 화를 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2017년 9월 28일 정오 소집된 본회의에서 중의원 해산이 결정되자 만세 삼창을 하는 모습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Q. 해산 절차는 어떻게 됩니까.A. 먼저 오전에 총리가 해산을 각의(각료회의, 우리나라의 국무회의에 해당)에 자문하면, 각료 전원이 해산 조서 결정을 위한 각의서에 서명합니다. 중의원 해산에 대한 각의 결정이 내려지면 내각 총무관이 일왕의 거처인 고쿄로 가서 일왕에게 서명, 날인을 받은 해산 조서를 받습니다. 조서 자체는 공문서로 보관되며, 같은 문구의 전달서가 관방장관으로부터 중의원 사무총장을 거쳐 국회의장(오시마 다다모리 중의원 의장)에게 전해집니다. 의장이 이를 낭독함으로써 중의원은 해산됩니다. 중의원 의장이 ‘중의원 해산’을 말하면 일제히 만세를 부르는 관례가 있습니다.Q. 이번 중의원 해산의 특징이 있나요.A. 그동안 일본 정계에선 10월 26일 공시, 11월 7일 투ㆍ개표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기시다 총리는이를 1주일 앞당겨 실시하겠다고 총리 취임 직후 발표했습니다. 해산에서 투표까지 불과 17일 동안에 선거전을 치러야 합니다. 이는 일본에서 역대 최단기간입니다. 또한 현재의 중의원 임기는 이번 달 21일까지여서 원래 임기가 끝난 후에 총선을 치르게 되는데, 이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일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감염자 수가 급감하면서 지난 1일부로 긴급사태선언을 일제히 해제했다. 현재 하루 확진자 수가 1,000명도 되지 않는다. 1일 도쿄 시나가와역에서 마스크를 쓴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Q. 이렇게 총선 시기를 앞당긴 이유는 무엇인가요.A.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감염자 수가 1년 전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최근에는 하루 1,000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재확산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긴급사태 해제 후 사람의 흐름이 많아지면서 다시금 확산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 전에 빨리 선거를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가 내각 당시 30% 미만까지 추락했던 지지율도 자민당 총재 선거전 및 새 내각 출범과 함께 50% 전후로 높아졌고,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도 크게 회복됐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총선을 치러야 가능한 한 많은 의석을확보할 수 있는 셈입니다.Q. 일본 여야 중의원 선거 공약은 어떻습니까.A. 이번 여야 모두 ‘분배’를 통한 ‘격차 시정’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총재 선거 후보 시절 ‘레이와 버전 소득 배증 정책’을 내걸었고 임금 인상 기업에 대해 법인세 인하 혜택을 주는 등의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야권 역시 ‘1억 총중류사회 부활’을 내걸었습니다. 다만 총재 선거 시절 ‘분배 없이 다음의 성장 없다’며 분배를 매우 강조했던 기시다 총리는 당선 전후 연속 8일 동안 증시가 하락하자 성장을 다시 강조하고 금융소득과세도 당분간 하지 않겠다며 보류하는 등 애초의 약속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야권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공약에서도 육아 가구에 대한 거주비 등의 지원 정책 등 기시다 총리의 공약이 빠졌습니다. 반면 야당에서는 ‘기시다의 분배 공약이 흔들리고 있다’며 비판하고 소비세를 한시적으로 낮추는 등의 공약을 내세우며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매우 낮아, 이번 총선에서도 자민당이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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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영석 대장 10주기 (2) 추모 전기박영석, 그는 악몽에 시달렸다1980년 5월, 동국대 마나슬루 등정 환영 카퍼레이드.박영석 대장의 생애를 다룬 전기 <1%의 고독>이 그의 실종 10주기인 오는 10월 18일 출간된다.먼저 발행된 전기들이 그의 영웅적인 면모와 등반 성취를 주로 다룬 반면, <1%의 고독>은 탐험가 이전에 인간 박영석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주안을 뒀다. 집필은 산악인이자 작가인 국립한국등산학교 김헌상 행정실장이 맡았다.월간<山>이 이번 10월호에서 지구상의 정점과 극점에 섰던 인간 박영석의 고뇌와 고독 일부를 먼저 공개한다. 자료 제공은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카퍼레이드“아저씨, 무슨 환영 행사예요?”마나슬루가 어쩌고저쩌고 눈사태로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이번에는 성공했다는 기자아저씨의 이야기를 영석은 금세 알아듣는다.“그래, 맞아. 히말라야에 갔다가 아마 눈사태로 죽었었지.”대규모 사망사고가 났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런데 몇 년 후 또다시 그곳에 갔다가 이젠 형제 산악인 중 동생이 눈사태로 죽어서 한동안 사회적으로 떠들썩했던 기억도…영석은 카퍼레이드에 파묻힌 지프를 우두커니 서서 계속 바라본다.영석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뭐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것인지 영석도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강렬한 인상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영석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특히, 왜 산악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그렇게 험한 산을 오르는지, 올라갔다가 내려 올 산을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가는지 영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운명적으로 다가온 어떤 사건처럼 그날의 카퍼레이드는 영석의 뇌리에 각인된다. 영석은 그날 밤 카퍼레이드를 생각하면서 잠을 설치고 만다.1993년 동국산악회 에베레스트 원정대.#치유되지 않는 산“진섭아, 원우야.”한동안 잦아들었던 악몽이 최근 들어 다시 박 대장의 잠자리를 괴롭힌다. 박 대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원정으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올 때마다 박 대장은 악몽을 꾸곤 했다. 노년의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고자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 거처를 마련한 박 대장. 박 대장은 이곳에 올 때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한국에 있을 때는 원정준비뿐만 아니라 후원사 언론사를 비롯해 여러 행사와 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빡빡한 일정 때문에 숙소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러다가 동생이 살고 있는 뉴질랜드에 오게 되면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한적한 시간이 오히려 박 대장을 괴롭혔다. 박 대장에게는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으로 인해 지난날의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것이었다.“니가 후배를 잡아먹은 거야.”박 대장은 악몽을 꾸는 듯 또 잠꼬대를 한다. *안진섭, 남원우 대원은 1993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중 사망했다. 박 대장은 당시 두 대원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을 질책했다.#박 대장 술에 취해 횡설수설한다“저는 왜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하죠. 언론이 무서워서일까요? 아니오. 산에 가지 않는 산악인 박영석이 부끄러워서요.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가 호랑이입니까. 호랑이는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포효해야 그게 호랑이죠.”2007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무전기를 손에 꼭 쥔 채 고개를 떨군 박영석 대장.#2007이튿날 새벽, 수색에 나섰던 셰르파들로부터 캠프2 인근에서 희준과 현조의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박 대장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김동영, 정찬일, 김석우 등 남은 대원들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박 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는다. 그가 어딘가를 찾으며 울먹이며 말한다.“종호 형, 텐트가 없어졌어요. 캠프4가 없어졌어요. 형, 내가 죽였어요.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북극 원정 중 강한 바람에 휘청거리는 대원들. 2003년.#14좌 후박 대장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혼란스러워진다. 지금까지 히말라야 14좌를 해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온 그. 히말라야 14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달려왔었다.14좌를 완등한 후 박 대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동안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 뭔가를 이루어 냈을 때 오는 허탈감. 막상 가지고 싶었던 그 뭔가를 손에 쥐었을 때 오는 무상함일까. 더 이상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지난날의 열정이 사그라지는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메스너가 못다 이룬 남극 북극을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그건 허영호가 이미 하지 않았냐”였다.후일 박 대장이 남극 북극 원정을 계획할 때도 그것이 산악그랜드슬램이라는 말로 탈바꿈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故 박영석 대장 10주기 (2) 추모 전기박영석, 그는 악몽에 시달렸다1980년 5월, 동국대 마나슬루 등정 환영 카퍼레이드.박영석 대장의 생애를 다룬 전기 <1%의 고독>이 그의 실종 10주기인 오는 10월 18일 출간된다.먼저 발행된 전기들이 그의 영웅적인 면모와 등반 성취를 주로 다룬 반면, <1%의 고독>은 탐험가 이전에 인간 박영석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주안을 뒀다. 집필은 산악인이자 작가인 국립한국등산학교 김헌상 행정실장이 맡았다.월간<山>이 이번 10월호에서 지구상의 정점과 극점에 섰던 인간 박영석의 고뇌와 고독 일부를 먼저 공개한다. 자료 제공은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카퍼레이드“아저씨, 무슨 환영 행사예요?”마나슬루가 어쩌고저쩌고 눈사태로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이번에는 성공했다는 기자아저씨의 이야기를 영석은 금세 알아듣는다.“그래, 맞아. 히말라야에 갔다가 아마 눈사태로 죽었었지.”대규모 사망사고가 났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런데 몇 년 후 또다시 그곳에 갔다가 이젠 형제 산악인 중 동생이 눈사태로 죽어서 한동안 사회적으로 떠들썩했던 기억도…영석은 카퍼레이드에 파묻힌 지프를 우두커니 서서 계속 바라본다.영석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뭐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것인지 영석도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강렬한 인상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영석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특히, 왜 산악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그렇게 험한 산을 오르는지, 올라갔다가 내려 올 산을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가는지 영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운명적으로 다가온 어떤 사건처럼 그날의 카퍼레이드는 영석의 뇌리에 각인된다. 영석은 그날 밤 카퍼레이드를 생각하면서 잠을 설치고 만다.1993년 동국산악회 에베레스트 원정대.#치유되지 않는 산“진섭아, 원우야.”한동안 잦아들었던 악몽이 최근 들어 다시 박 대장의 잠자리를 괴롭힌다. 박 대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원정으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올 때마다 박 대장은 악몽을 꾸곤 했다. 노년의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고자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 거처를 마련한 박 대장. 박 대장은 이곳에 올 때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한국에 있을 때는 원정준비뿐만 아니라 후원사 언론사를 비롯해 여러 행사와 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빡빡한 일정 때문에 숙소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러다가 동생이 살고 있는 뉴질랜드에 오게 되면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한적한 시간이 오히려 박 대장을 괴롭혔다. 박 대장에게는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으로 인해 지난날의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것이었다.“니가 후배를 잡아먹은 거야.”박 대장은 악몽을 꾸는 듯 또 잠꼬대를 한다. *안진섭, 남원우 대원은 1993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중 사망했다. 박 대장은 당시 두 대원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을 질책했다.#박 대장 술에 취해 횡설수설한다“저는 왜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하죠. 언론이 무서워서일까요? 아니오. 산에 가지 않는 산악인 박영석이 부끄러워서요.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가 호랑이입니까. 호랑이는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포효해야 그게 호랑이죠.”2007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무전기를 손에 꼭 쥔 채 고개를 떨군 박영석 대장.#2007이튿날 새벽, 수색에 나섰던 셰르파들로부터 캠프2 인근에서 희준과 현조의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박 대장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김동영, 정찬일, 김석우 등 남은 대원들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박 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는다. 그가 어딘가를 찾으며 울먹이며 말한다.“종호 형, 텐트가 없어졌어요. 캠프4가 없어졌어요. 형, 내가 죽였어요.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북극 원정 중 강한 바람에 휘청거리는 대원들. 2003년.#14좌 후박 대장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혼란스러워진다. 지금까지 히말라야 14좌를 해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온 그. 히말라야 14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달려왔었다.14좌를 완등한 후 박 대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동안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 뭔가를 이루어 냈을 때 오는 허탈감. 막상 가지고 싶었던 그 뭔가를 손에 쥐었을 때 오는 무상함일까. 더 이상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지난날의 열정이 사그라지는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메스너가 못다 이룬 남극 북극을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그건 허영호가 이미 하지 않았냐”였다.후일 박 대장이 남극 북극 원정을 계획할 때도 그것이 산악그랜드슬램이라는 말로 탈바꿈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