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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 <편집자주>
2008년 2월 10일 밤 숭례문에 화재가 난 가운데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에게 죄송하고 가족에게도 죄송합니다.”
바다이야기오리지널 18년 전 오늘인 2008년 2월 12일.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을 잿더미로 만든 방화 용의자 채모(70)씨는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되던 그는 깊이 눌러 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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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채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밝혔다. 김영수 서울 남대문경찰서장과 남현우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 남대문서 브리핑에서 “방화 전력자의 범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했다”고 설명했다.
◇600년 성문, 화마로 5시간 만에 무너지다=사건은 이틀 전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인 2월 10일 밤 발생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던 일요일 오후 8시 40분경 한 남성이 숭례문 누각에 침입해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바로 채씨였다.
1398년 조선 태조 7년에 건립돼 600년 넘게 서울의 정문을 지켜온 숭례문은 불과 5시간 만에 처참히 무너졌다. 초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신속하 릴게임예시 게 진압에 나섰지만, 국보 훼손을 우려한 신중한 접근과 전통 목조 건축물의 구조적 특성 탓에 불길을 초기에 잡지 못했다. 기와 아래 숨어든 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조 골조를 태우며 급속히 번졌다.
자정을 넘기며 불길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11일 새벽 1시 55분께 2층 누각이 먼저 붕괴한 데 이어 1층까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지 내려앉았다. 조선 시대 목조 건축의 정수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보던 많은 시민들은 통곡했고, TV 생중계를 통해 이를 본 국민들 역시 망연자실했다.
이 화재로 2층 문루의 90%, 1층 문루의 10% 이상이 소실됐다. 국보 1호는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2008년 2월 10일 발생한 화재로 부분 붕괴된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날이 밝자 화마의 흔적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라이터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방화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특히 방화전력자의 범행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동일 수법의 전과자를 중심으로 화재 당일 행적을 추적했다.
그렇게 경찰은 2006년 창경궁 문정전 방화범이었던 채씨를 유력 용의선상에 올렸다. 주변 관계자 및 행적에 대해 탐문수사를 벌였고, 전처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너통과 시너 냄새가 나는 가죽 장갑 등이 발견됐다.
사건 다음날인 11일 오후 7시 40분께 경찰은 인천 강화도의 한 마을회관 앞에서 채씨를 발견했다. 화재 당일 행적을 추궁한 끝에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오후 8시 15분께 채씨를 긴급 체포했다.
◇범인은 왜 숭례문을 불태웠나=조사 결과 채씨는 범행 당일 전처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서 출발해 고양과 서울시청을 거쳐 숭례문 인근에 도착했다. 8시 45분께 숭례문 좌측(서쪽)으로 올라간 그는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를 이용해 숭례문 내부로 침입했다.
이어 2층 누각으로 올라가 1.5리터 페트병에 담긴 시너 3통 중 1통을 바닥에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범행 도구인 사다리와 라이터, 배낭은 현장에 버려둔 채 달아났다.
2008년 2월 12일 새벽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숭례문 방화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품, 시너통과 사다리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채씨는 대체 왜 숭례문 방화 같은 끔찍한 범죄를 결심했을까. 그의 분노는 1997~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신의 토지가 아파트 건설 부지에 포함되며 수용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여긴 게 발단이었다. 회사는 토지매입금으로 공시지가 9600만원을 책정했지만 채씨는 4억 원을 요구했다. 건축회사가 토지 매입을 거부하자 결국 채씨의 토지는 아파트 단지 사이에 고립됐다.
분노한 채씨는 이후 건설사를 상대로 토지수용재결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고 고양시청과 대통령비서실 등에 수차례 진정과 이의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은 채씨가 사회에 극단적 불만을 품게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라고 말했다.
채씨는 당초 서울 종묘를 범행 대상으로 고려했으나 큰 인명 피해 우려와 출입 통제 문제로 숭례문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는 2006년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러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었다.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문화재를 노린 셈이다.
채씨의 집에서는 ‘오죽하면 이런 일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4장짜리 편지도 발견됐다. 편지에는 토지보상 문제, 민원 제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 사회에서 받은 냉대 등에 대한 울분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재범행 후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었잖아,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는 실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2008년 4월 25일 채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해 10월 9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으며 이후 10년간 복역한 뒤 2018년 만기 출소했다.
◇225억원 들여 복원…‘국보 1호’ 숭례문이 다시 세워지다=숭례문은 5년이 넘는 복원 공사를 거쳐 2013년 5월 다시 시민 앞에 섰다. 복원에는 225억 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숭례문은 현재 복원 비용을 근거로 국유재산가액이 새로 산출돼 현재 가치는 약 250억 원으로 평가된다.
600년 세월을 견뎌온 상징은 한 사람의 분노로 무너졌지만,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그날의 화마는 단순한 문화재 훼손을 넘어 온 국민에게 큰 충격과 상실감을 남겼다.
이 사건은 문화재 방재 시스템 체계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또 우리 유산을 지키는 일의 무게를 다시 일깨운 뼈아픈 교훈으로 남았다.
국보1호 숭례문 복원식을 하루 앞둔 2013년 5월 3일 오후 마침내 숭례문이 제모습을 되찾았다. 뉴스1
“전기차는 끝났다? 아니, ‘로봇 옷’ 입고 2차전지 제2막 시작”
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doremi@sedaily.com
2008년 2월 10일 밤 숭례문에 화재가 난 가운데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에게 죄송하고 가족에게도 죄송합니다.”
바다이야기오리지널 18년 전 오늘인 2008년 2월 12일.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을 잿더미로 만든 방화 용의자 채모(70)씨는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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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성문, 화마로 5시간 만에 무너지다=사건은 이틀 전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인 2월 10일 밤 발생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던 일요일 오후 8시 40분경 한 남성이 숭례문 누각에 침입해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바로 채씨였다.
1398년 조선 태조 7년에 건립돼 600년 넘게 서울의 정문을 지켜온 숭례문은 불과 5시간 만에 처참히 무너졌다. 초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신속하 릴게임예시 게 진압에 나섰지만, 국보 훼손을 우려한 신중한 접근과 전통 목조 건축물의 구조적 특성 탓에 불길을 초기에 잡지 못했다. 기와 아래 숨어든 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조 골조를 태우며 급속히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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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라이터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방화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특히 방화전력자의 범행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동일 수법의 전과자를 중심으로 화재 당일 행적을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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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2일 새벽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숭례문 방화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품, 시너통과 사다리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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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채씨는 이후 건설사를 상대로 토지수용재결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고 고양시청과 대통령비서실 등에 수차례 진정과 이의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은 채씨가 사회에 극단적 불만을 품게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라고 말했다.
채씨는 당초 서울 종묘를 범행 대상으로 고려했으나 큰 인명 피해 우려와 출입 통제 문제로 숭례문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는 2006년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러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었다.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문화재를 노린 셈이다.
채씨의 집에서는 ‘오죽하면 이런 일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4장짜리 편지도 발견됐다. 편지에는 토지보상 문제, 민원 제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 사회에서 받은 냉대 등에 대한 울분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재범행 후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었잖아,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는 실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2008년 4월 25일 채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해 10월 9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으며 이후 10년간 복역한 뒤 2018년 만기 출소했다.
◇225억원 들여 복원…‘국보 1호’ 숭례문이 다시 세워지다=숭례문은 5년이 넘는 복원 공사를 거쳐 2013년 5월 다시 시민 앞에 섰다. 복원에는 225억 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숭례문은 현재 복원 비용을 근거로 국유재산가액이 새로 산출돼 현재 가치는 약 250억 원으로 평가된다.
600년 세월을 견뎌온 상징은 한 사람의 분노로 무너졌지만,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그날의 화마는 단순한 문화재 훼손을 넘어 온 국민에게 큰 충격과 상실감을 남겼다.
이 사건은 문화재 방재 시스템 체계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또 우리 유산을 지키는 일의 무게를 다시 일깨운 뼈아픈 교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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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는 끝났다? 아니, ‘로봇 옷’ 입고 2차전지 제2막 시작”
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doremi@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