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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리치 에임스의 17세 시절, 1958 [맥린 고등학교]
편집자 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원조 맛집’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새로운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종종 문학과 역사 이야기도 합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으로 쓰였습니다.
그는 ‘가장 악랄한 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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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리치 에임스, 1994 [연방수사국]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1994년 2월21일, 미국 버지니아주 일대의 한 저택 인근.
무장한 FBI(연방수사국) 요원이 하나둘 모였다. 몇몇은 고목, 또 몇몇은 풀과 울타리에 몸을 숨긴 채였다. 쉿. 황금성오락실 이들은 신호를 주고받았다. 각자 알아서 권총을 꺼냈다. 앞 조부터 천천히 걸었다. 나뭇잎 한 장도 허투루 밟지 않는 건, 역시 정예부대다운 움직임이었다. 앞문과 뒷문, 창문과 지하 창고. 요원들은 집을 에워쌌다.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모두 막았다. 특별 조사반이 보고서에 쓴 문장에 따르면,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최악의 범죄자.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가장 오션릴게임 악랄한 배신자(the most notorious traitor)’가 머물러 있었다. 이러니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올드리치 에임스 씨. 우리 요원들이 당신을 포위했습니다.”
FBI의 경고. 감도는 건 정적. “에임스 씨. 저항하지 마시고, 체포에 응하시길 바랍니다.” 역시나 흐르는 건 정적뿐이었다. 한 요원이 팔을 들 릴게임방법 어올렸다. 손가락을 말아 주먹을 쥐었다. 이는 플랜 B였다. 말로는 어려울 듯하니 힘으로 제압하자는 신호였다. 각 조는 맡은 문을 열었다. 문고리를 발칵 돌리자, 이들 눈앞에는 번쩍이는 가구가 있었다. 호화로운 장식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짓’으로 돈을 얼마나 벌었으면…. 요원들은 허탈감을 억눌렀다. 총구를 세운 채 경계에 집중했다. “누구시죠?”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이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이 느껴진 곳은 차고였다. 가까이에 있는 요원이 철 가림막을 들었다. 에임스의 얼굴이 보였다. 이 사내의 모습은… 그간 전해들은 악명치고는 의외로 평범했다. 그냥 50대 아저씨 같았다. 머리칼은 적당히 벗어졌다. 안경알은 크고 두꺼웠으며, 배도 약간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지역이든 동네 술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상이었다.
“에임스 씨가 맞습니까?”
“네.” 그는 막 자기 차에 올라탄 모습이었다. 이 또한 재규어 XJ-6, 당시 최고급 모델이었다. “에임스 씨, 차 문을 열고 나오세요. 당신을 간첩 활동과 탈세 혐의로 체포합니다.” “…여보세요. 아까부터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데.” 에임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창문을 한 뼘 더 내렸다. 순순히 내릴 생각은 없어보였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저는 CIA(중앙정보국) 요원이에요. 당신들보다도 더 높은 급의 국가 기밀을 다루는 직급이죠.” 그는 발음이 썩 좋지 않았다. “보세요. 이건 소련 모스크바행 표입니다.” FBI가 미동도 없자, 그는 품에서 비행기표를 꺼내 흔들었다. “저는 거기서 열리는 비밀 정보 회의에 참석해야 해요. 제 행동에 수상함이 있었다면, 그건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 놈들을 따돌리기 위한 기만 작전일 뿐입니다.” 그는, 지금 상황으로만 봐선 정말 ‘억울해’보였다. “에임스 씨.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상관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FBI 요원들이 조수석 차 문을 부수듯 열었다. 이내 에임스를 에워싸 포박했다.
누군가 일을 꾸며 제게 누명을 씌운 겁니다.
아니, 당신들은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어!
사람을 잘못 본 거라고!”
에임스는 표정을 바꿔 외치기도 했지만, 이는 공허한 저항에 지나지 않았다.
딱히 기민해보이지도, 그렇다고 크게 치밀해보이지도 않던 남자 에임스.
그는 정말 소련에 붙은 최악의 스파이였을까. 아니면 FBI의 오판에 희생당한, 그저 사치나 즐겼을 뿐인 선량한 정보요원이었을까. 이것은 미국 첩보 역사상 가장 기막힌 이야기, 이른바 ‘에임스 사건’을 다루는 글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은 ‘그 놈’
CIA의 스파이 색출팀(특별 조사팀). 왼쪽부터 산드라 그라임스, 폴 레드먼드, 잔 베르테푀유, 다이애나 워든, 댄 페인.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집요하게 스파이를 추적했고, 그 결과 ‘두더지’를 잡아낼 수 있었다. [United State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1986년.
미국 정보당국은 무언가 단단히 꼬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새 비밀 요원 10여명이 죽거나 사라졌다. 크고 작은 첩보 작전 또한 100여차례나 불발됐다. 특히, 소련에 대한 정보전은 초토화 수준이었다. …가슴팍에 ‘붉은 별’을 품은 첩자가 있다. 이제 이 생각은 의심 아닌 확신이었다.
CIA는 특별 조사팀을 꾸렸다.
팀은 곧 두더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꼬리를 잡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왜? “수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였다.
1. 첩자는 소련 태생일 가능성이 크다.
2. 첩자는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워렌턴 훈련 센터(WTC·기밀 통신 시설) 내 일하거나, 일한 적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팀이 미국 쪽 스파이 등을 모아 얻은 정보는 이 정도였다. 그렇게 추려보니 용의자는 10여명에 이르렀다. 한 명씩 따져보긴 했다. 이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문제가 있어보이는 인물이 너무 많아 누구 하나 두드러지지 않는다.” 책임자의 한탄 섞인 메모였다. (그 자체도 문제인 듯하지만)사실 모든 건 소련의 함정이었다. 일부러 엉뚱한 미끼를 흘린 것이었다. “우리가 잘못 짚었어. 스파이는 소련 출신이 아니야.” 집중 조사를 마친 팀원들 사이 오간 말이었다. 즉, 다시 원점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팀이 헛다리를 짚는 동안 희생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암호명 ‘버번’이 소련 정보당국에 붙잡혔다. 미스터 버번의 정체, 그는 GRU(소련 군사정보총국)의 소장 드미트리 폴랴코프였다. 폴랴코프는 미국을 위한 핵심 첩보원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포병 장교였다. 전쟁 영웅으로 불릴 만큼 신망도 있었다. 그랬던 폴랴코프는 공산당의 부패에 차츰 회의를 느꼈다. 때마침 아들이 중병에 걸려 미국 병원으로 보내야 했는데, 당 지도부가 단지 이념을 이유로 막아세웠다는 설도 있다. 이 두 가지가 그의 전향 결심 계기로 꼽히곤 한다. 폴랴코프가 미국 정보당국에 전한 기밀은 모두 금쪽같았다. 그는 가령 소련이 자랑하는 대전차 미사일의 설계도 일부를 흘렸다. 외교적으로는 소련과 중국 사이의 분열 증거도 넘겼다. 소련 정보당국이 몰래 심어놓은 각국의 첩자를 골라내주기도 했다. 폴랴코프는 빠른 두뇌 회전, 흔적 없는 일 처리로 “내가 아는 한 미국 정보기관이 가진 최고의 정보원이자, 역사상 최고의 정보원일 것(CIA 요원 산드라 그라임스의 평)”이라는 평까지 받은 자였다. 그런 그마저 내부 첩자 때문에 잃고 만 것이었다.
그뿐인가.
미국과 영국 등에 민감한 정보를 준 스파이, 암호명 ‘티클’의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FBI를 위해 KGB 요원 정보를 건넨 세르게이 모토린, CIA에 소련 전자 장비 기술을 보낸 엔지니어 아돌프 톨카체프 등도 비슷한 시기에 덜미가 잡혔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두더지는 여전히 땅을 파고 있었다. 조여오는 수사망을 피해, 유유히.
이 남자, 거짓말 탐지기 결과는…
올드리치 에임스, 1994. [AP=연합]
첩자는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
사실, 에임스는 그런 점에서 망에 잘 걸리지 않았다. 에임스의 업무 능력은 평범했다. 근무 평가 또한 ‘만족(satisfactory)’에서 ‘대체로 열정적(generally enthusiastic)’ 정도를 오갈 뿐이었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 눈여겨볼 지표는 결코 아니었다.
물론 그 또한 보다 젊을 때는 실력이 괜찮았다.
보너스도 꽤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잔실수가 많았다. 그는 뉴욕 지하철에 서류 가방을 두고 내린 적도 있었다. 그 안에는 하필 기밀문서가 잔뜩 담겨 있었다. 다행히 사고 없이 되찾긴 했지만, 이미 그때부터 상관에게 나쁜 인상을 안긴 건 사실이었다. 에임스는 종종 술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고, 때로는 여자 문제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요주의 인물, 즉 흑막에 가려진 주도면밀한 스파이가 될 깜냥은 없는 듯했다.
특별 조사팀이 그런 에임스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그의 갑작스러운 사치 행각 때문이었다.
에임스는 돈이 많았다. 정확히는, 이상하리만큼 ‘많아졌다’. 에임스는 언젠가부터 재규어 XJ-6를 몰고 다녔다. 이는 당시 5만달러 수준이었다. 옷도 휙휙 바꿔 입었다. 하나같이 고급 원단의 맞춤 정장이었다. 아울러 버지니아주 일대의 저택도 사들이는가 하면, 집값 54만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건넸다는 말도 돌았다. 당시 에임스의 연봉은 6만~7만달러 수준이었다. 누군가 물으면 에임스는 처가의 형편이 좋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안에도 크라운이 가득했다. 처가가 부자라고 한들, 복권 1등에 당첨된 게 아니고서야….
에임스 씨.
당신은 조국을 배신했습니까?
조사관이 물었다. “그런 적 없습니다.” 에임스가 답했다. 둘 사이에는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다. 기계의 판독 결과는…‘진실’. 첨단 장비는 에임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일부 질문에 대해선 약간 모호한 결과도 있긴 했다. 다만, 이는 그저 오류로 치부해도 될 수준이었다. 에임스는 1986년과 1991년, 두 차례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두 번 다 ‘통과’였다.
스위스 계좌에서 꼬리가 잡히다
시간은 또 흘렀다. 그사이 유능했던 미국 측 첩자는 또 붙잡혔다. 몇몇은 또 실종되고 말았다.
특별 조사팀도 나름대로는 애를 썼다. 조사팀은 추려낸 유력 용의자 몇몇(여기에 에임스도 있었다)에게 사람도 계속 붙이려고 했다. 다만 어째서인지 인력 충원이 수월치 않았다. 수사망을 더 좁힐 수 있었는데,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 구조였다. 이렇게 또 몇 해가 지나갔다. 답답함도 커져만 갔다. 그러다….
“다들 이 기록을 보세요. 우리가 그자를 잡은 것 같아요!”
조사팀이 꾸려지고 8년째, 1994년의 어느 날. 팀원 한 명이 모두를 불러모았다. 그가 책상에 올린 건 스위스 은행의 특정 계좌, 거기에 빼곡히 적혀있는 입금 내역이었다. 총액은 130만달러에 이르렀다. “지금껏 용의자들의 계좌를 하나씩 살펴봤죠. 불규칙적으로 출처 불명의 거액이 들어오는 계좌를 드디어 찾았어요. 입금 날짜를 따져 계좌주의 행보를 몇 달간 역추적해봤어요.” “그래서요?” “돈은 이 사람이 소련 대사관을 드나들 때마다 들어오고 있었어요.” 그토록 찾고 잡으려고 애쓴 두더지, 그자가 이 계좌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빌어먹을 스파이(a goddamn spy)’를 기어코 특정할 수 있겠군요.” 실제로 당시 회의장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자가 누구죠?” 계좌주의 이름은… “에임스. 올드리치 에임스요.” 역시나 그 인간이었다.
바란 건 오직 돈밖에 없었다
올드리치 에임스의 머그샷, 1994 [연방수사국]
에임스가 바란 건 돈이었다.
조직에 대한 회의감 또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향한 경도(傾倒)가 아니라 돈. 그의 범행 동기는 나라를 팔 때마다 따박따박 입금되는 달러가 전부였다. 이는 당시 미국 정보 당국에 충격을 안겼다. 왜? 굳이 덧붙이면, 그 시절 첩자 중 상당수에게는 그래도 최소한의 품격 비슷한 게 있었다. 대표 사례가 폴랴코프였다. 폴랴코프는 “애국자로서 조국(소련)의 엇나감을 좌시할 수 없어” 스파이가 됐다고 주장했다. 근거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매년 3000달러 정도의 수고비만 고집했다. 이마저도 공구, 낚시와 사냥 장비로 받는 일이 많았다. 에임스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는 나라의 뒤를 치는 사이 점점 더 많은 돈만 바랐을 뿐이었다.
겉보기에 에임스는 적당히 불행한 CIA 요원이었다.
에임스는 1941년생이었다. 미국 위스콘신주 리버폴스 출신이었다. 그는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원래는 그곳에서 역사를 공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금방 싫증을 느껴 중퇴하고, 그때부터 여러 일자리를 돌며 푼돈을 벌었다. 그랬던 에임스의 발길이 닿은 마지막 직장이 CIA였다. 사실, 그의 아버지도 CIA 요원이었다. 이 덕에 자연스럽게 다리가 놓인 케이스였다. 에임스는 이후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 입학해 학위를 받았다. 같은 CIA 동료인 낸시 세게바스와 결혼도 했다.
에임스에게 아예 능력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는 크고 작은 실수를 종종 저질렀다. 술 또한 알코올 중독 수준으로 좋아했다. 에임스는 차츰 불만 많은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그런 에임스의 무채색 삶에 끼어든 여인이 있었다. 주멕시코·콜롬비아 대사관의 직원, 그보다 10살 어린 로사리오 카사스 뒤푸이였다. 둘은 한 연회장에서 만났다. 우연히 마주 앉았다. 학자 움베르토 에코,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놓고 토론도 했다. 말을 섞을수록 불꽃이 튀었다. 그때부터 불륜의 초가 타올랐다. 에임스는 뒤푸이와의 결혼을 꿈꿨다. 끝내 아내 세게바스와 이혼하고, ‘운명의 사랑’과의 두 번째 식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의 삶은 더 꼬이고 만다. 술과 사고, 거기다 불륜…. 켜켜이 쌓인 부정이 살찌울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불행.
에임스는 매일 밤 돈에 허덕였다.
그가 내야 할 이혼 위자료는 4만6000달러였다. 그 돈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새롭게 맞은 아내 뒤푸이 또한 사치가 심했다. 훗날 에임스는 이러한 상황이 간첩 활동을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1985년, 4월. 에임스는 소련 대사관 문을 대담하게 열었다. 우체부가 된 양, 소련 외교관에게 봉투를 줬다. “내게 5만 달러를 주시오.” 봉투 속 쪽지에 적힌 말이었다. 무작정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 안에는 몰래 미국 편을 든 소련의 KGB 요원 2명 명단도 함께 쓰여있었다. 때마침 에임스는 대(對)소련 방첩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소련과 관련한 기밀 자료는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소련 정보 당국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에임스가 지목한 둘. 이들은 정말 미국으로 돌아선 두더지가 맞았다. 5만 달러가 아깝지 않았다. 요구한 돈이 꽂힌 그날, 에임스는 고민의 끈을 완전히 놓았다.
사치는 동료들의 목숨값이었다
에임스가 1993년 10월 13일 러시아 정보기관 담당자들과의 만남을 약속하기 위해 우체통에 분필로 가로로 표시해 둔 흔적. [연방수사국]
돈은 소금물과 비슷한 면이 있다. 취하면 취할수록 갈증을 더 심하게 느낀다는 점에서 그렇다.
에임스는 폭주하듯 돈과 정보를 맞바꿨다. 그는 소련 대사관의 KGB 요원과 수시로 몰래 접촉했다. 9년간 소련 내 미국 스파이를 ‘성실히’ 밀고했다. 그가 넘긴 이름은 최소 25명이었다. 에임스는 자신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는, 정보전 최전선에 있는 스파이부터 차례차례 일렀다. 이들 모두 사실상 사형 선고가 내려질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아울러 덤이라는 듯 CIA의 대소련 공작 기밀문서도 100건 이상 제출했다. 급하게 만날 일이 있으면 미국우정공사(USPS) 우체통에 분필로 선을 그었다. 이는 양측 사이 약속이었다. 목숨이 걸려 있어서였을까. CIA 안에서는 무기력한 직원이, KGB에서 줄타기를 할 때는 의외의 주도면밀함을 발휘했다.
KGB의 고위 장교는 에임스가 지치지 않도록 계속해 당근을 줬다.
그 결과 에임스는 건당 2만~5만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모두 250만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35억8000만원)였다. 에임스는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그는 곧 “평생을 물쓰듯 써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으리라 믿었다. 현실은 꿈과 달랐다. 돈은 챙기고 챙겨도 모자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권에 당첨된 듯 저택을 사고, 최신형 외제차를 뽑고, 옷과 가구, 보석과 구두…. 받는 족족 아내 뒤푸이와 함께 흥청망청 써버렸으니.
그 사이 특별 조사팀은 에임스의 비밀 계좌를 해부했다.
희대의 배신자를 잡기 위한 체포 작전도 은밀히 펼쳤다. 1994년 2월21일. 이날이 두더지 사냥에 나선 결전의 날이었다. FBI 요원들이 에임스를 차 안에서 체포했다. 그를 집 아닌 도로에서 잡았다는 말도 있다.
사람을 잘못 본 거라고!
에임스는 FBI 요원에게 끌려가는 내내 소리쳤다.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CIA와 FBI, 특별 조사팀 모두 지금껏 사람을 잘못 봤던 건 확실했으니. 이들 모두 소련의 거짓 정보에 휘둘린 게 첫 패착이었다.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믿은 게 두 번째 패착이었다. 그저 인간만 훑어보고, 그 인간의 뒤틀린 욕망까지 파헤치지 못한 일 또한 치명적 패착이었다. 에임스의 집에서는 롤렉스 시계 6점, 다수의 고급 드레스와 수십개의 명품백, 수백 켤례의 신발 등이 나왔다고 한다.
종신형 선고, 32년 뒤 쓸쓸한 사망
올드리치 에임스, 1994년 2월 22일 알렉산드리아 소재 미국 연방 법원에서 연행되고 있는 모습. [AFP=연합]
“처음에는 당장의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속임수만 쓸 생각이었어요. 선을 넘은 후로는 되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1994년 초봄. 에임스는 법정에서 잘못을 인정했다.
에임스가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문제의 스위스 은행 계좌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사이 FBI가 그의 사무실을 털었는데, 거기에서도 문제 소지가 큰 비밀 서류가 114건이나 쏟아졌다고 한다. 그는 간첩 활동과 탈세 혐의로 공식 기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제 행동은)미국의 중대한 안보 이익에 실질적 영향을 주지 않은, 부차적 사건에 불과했습니다.”
에임스는 이처럼 끝까지 억울함을 표하기도 했다. “에임스 씨.” 검찰이 높아지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당신은 수년간 미국의 귀중한 정보 자산을 훔쳤습니다. 조국의 안보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줬습니다.” 이는 마지막 기세를 쥐어짜낸 에임스를 재차 내려찍는 반론이었다. “더 큰 집, 더 큰 차를 원했던 저 자식 때문에 우리 요원들이 죽었다고!” 당시 CIA 국장이었던 제임스 울시는 에임스를 향해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기도 했다. 울시는 조직관리 부실 등을 이유로 사실상 불명예 사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40087-083.
에임스의 수감자 번호였다. 그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나이는 쉰셋이었다. 그의 범죄 행위가 연방 사형법이 완전히 부활하기 전 이뤄졌던 만큼, 사형수가 되지는 못했다. 에임스가 머물게 된 곳은 메릴랜드주 컴벌랜드의 연방 교정시설이었다. 에임스는 감옥에서 32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2026년 1월6일,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욕망은 긴 초였다. 기세 좋게 타올랐지만, 다 타버린 뒤 남은 건 제멋대로 뭉개져 번진 촛농뿐이었다. 그는 본인 죄와 걸맞은 무게감의 죄책감을 느끼기는 했을까. 하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떤 잘못은 끝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에게, 다시 들여다보기를 강박처럼 여기는 역사에게도.
(…)
(…)
(…)
“…그런데, 에임스는 무슨 속임수를 써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두 번이나 통과했을까요? 인간이 혈압과 맥박, 호흡을 한 번에 조절한다는 게 말이 돼요?”
한 수사관이 물었다.
“그자가 신문 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마법은 없었다. 자신감이 중요했다. 나는 웃었다. 조사관이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이런 검사 따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했다’고요.”
“왠지 그것도 거짓말 같네요.”
“그렇죠? 음…. KGB가 무슨 수를 써줬겠죠?”
“분명히요.”
*에임스는 실제로 조사관에게 저런 증언을 했다. 에임스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앞두고 KGB에 도움을 청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KGB는 “그냥 긴장을 풀면 된다”는 조언만 건넸다고 한다.
참고자료
벤 매킨타이어, 스파이와 배신자, 열린책들
Tim Weiner, David Johnston, Neil A. Lewis, Betrayal: The Story of Aldrich Ames, an American Spy, New York : Random House
U.S. Senate,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 An Assessment of the Aldrich H. Ames Espionage Case and Its Implications for U.S. Intelligence, Report Prepared by the Staff of the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편집자 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원조 맛집’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새로운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종종 문학과 역사 이야기도 합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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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리치 에임스, 1994 [연방수사국]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1994년 2월21일, 미국 버지니아주 일대의 한 저택 인근.
무장한 FBI(연방수사국) 요원이 하나둘 모였다. 몇몇은 고목, 또 몇몇은 풀과 울타리에 몸을 숨긴 채였다. 쉿. 황금성오락실 이들은 신호를 주고받았다. 각자 알아서 권총을 꺼냈다. 앞 조부터 천천히 걸었다. 나뭇잎 한 장도 허투루 밟지 않는 건, 역시 정예부대다운 움직임이었다. 앞문과 뒷문, 창문과 지하 창고. 요원들은 집을 에워쌌다.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모두 막았다. 특별 조사반이 보고서에 쓴 문장에 따르면,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최악의 범죄자.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가장 오션릴게임 악랄한 배신자(the most notorious traitor)’가 머물러 있었다. 이러니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올드리치 에임스 씨. 우리 요원들이 당신을 포위했습니다.”
FBI의 경고. 감도는 건 정적. “에임스 씨. 저항하지 마시고, 체포에 응하시길 바랍니다.” 역시나 흐르는 건 정적뿐이었다. 한 요원이 팔을 들 릴게임방법 어올렸다. 손가락을 말아 주먹을 쥐었다. 이는 플랜 B였다. 말로는 어려울 듯하니 힘으로 제압하자는 신호였다. 각 조는 맡은 문을 열었다. 문고리를 발칵 돌리자, 이들 눈앞에는 번쩍이는 가구가 있었다. 호화로운 장식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짓’으로 돈을 얼마나 벌었으면…. 요원들은 허탈감을 억눌렀다. 총구를 세운 채 경계에 집중했다. “누구시죠?”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이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이 느껴진 곳은 차고였다. 가까이에 있는 요원이 철 가림막을 들었다. 에임스의 얼굴이 보였다. 이 사내의 모습은… 그간 전해들은 악명치고는 의외로 평범했다. 그냥 50대 아저씨 같았다. 머리칼은 적당히 벗어졌다. 안경알은 크고 두꺼웠으며, 배도 약간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지역이든 동네 술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상이었다.
“에임스 씨가 맞습니까?”
“네.” 그는 막 자기 차에 올라탄 모습이었다. 이 또한 재규어 XJ-6, 당시 최고급 모델이었다. “에임스 씨, 차 문을 열고 나오세요. 당신을 간첩 활동과 탈세 혐의로 체포합니다.” “…여보세요. 아까부터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데.” 에임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창문을 한 뼘 더 내렸다. 순순히 내릴 생각은 없어보였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저는 CIA(중앙정보국) 요원이에요. 당신들보다도 더 높은 급의 국가 기밀을 다루는 직급이죠.” 그는 발음이 썩 좋지 않았다. “보세요. 이건 소련 모스크바행 표입니다.” FBI가 미동도 없자, 그는 품에서 비행기표를 꺼내 흔들었다. “저는 거기서 열리는 비밀 정보 회의에 참석해야 해요. 제 행동에 수상함이 있었다면, 그건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 놈들을 따돌리기 위한 기만 작전일 뿐입니다.” 그는, 지금 상황으로만 봐선 정말 ‘억울해’보였다. “에임스 씨.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상관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FBI 요원들이 조수석 차 문을 부수듯 열었다. 이내 에임스를 에워싸 포박했다.
누군가 일을 꾸며 제게 누명을 씌운 겁니다.
아니, 당신들은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어!
사람을 잘못 본 거라고!”
에임스는 표정을 바꿔 외치기도 했지만, 이는 공허한 저항에 지나지 않았다.
딱히 기민해보이지도, 그렇다고 크게 치밀해보이지도 않던 남자 에임스.
그는 정말 소련에 붙은 최악의 스파이였을까. 아니면 FBI의 오판에 희생당한, 그저 사치나 즐겼을 뿐인 선량한 정보요원이었을까. 이것은 미국 첩보 역사상 가장 기막힌 이야기, 이른바 ‘에임스 사건’을 다루는 글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은 ‘그 놈’
CIA의 스파이 색출팀(특별 조사팀). 왼쪽부터 산드라 그라임스, 폴 레드먼드, 잔 베르테푀유, 다이애나 워든, 댄 페인.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집요하게 스파이를 추적했고, 그 결과 ‘두더지’를 잡아낼 수 있었다. [United State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1986년.
미국 정보당국은 무언가 단단히 꼬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새 비밀 요원 10여명이 죽거나 사라졌다. 크고 작은 첩보 작전 또한 100여차례나 불발됐다. 특히, 소련에 대한 정보전은 초토화 수준이었다. …가슴팍에 ‘붉은 별’을 품은 첩자가 있다. 이제 이 생각은 의심 아닌 확신이었다.
CIA는 특별 조사팀을 꾸렸다.
팀은 곧 두더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꼬리를 잡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왜? “수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였다.
1. 첩자는 소련 태생일 가능성이 크다.
2. 첩자는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워렌턴 훈련 센터(WTC·기밀 통신 시설) 내 일하거나, 일한 적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팀이 미국 쪽 스파이 등을 모아 얻은 정보는 이 정도였다. 그렇게 추려보니 용의자는 10여명에 이르렀다. 한 명씩 따져보긴 했다. 이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문제가 있어보이는 인물이 너무 많아 누구 하나 두드러지지 않는다.” 책임자의 한탄 섞인 메모였다. (그 자체도 문제인 듯하지만)사실 모든 건 소련의 함정이었다. 일부러 엉뚱한 미끼를 흘린 것이었다. “우리가 잘못 짚었어. 스파이는 소련 출신이 아니야.” 집중 조사를 마친 팀원들 사이 오간 말이었다. 즉, 다시 원점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팀이 헛다리를 짚는 동안 희생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암호명 ‘버번’이 소련 정보당국에 붙잡혔다. 미스터 버번의 정체, 그는 GRU(소련 군사정보총국)의 소장 드미트리 폴랴코프였다. 폴랴코프는 미국을 위한 핵심 첩보원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포병 장교였다. 전쟁 영웅으로 불릴 만큼 신망도 있었다. 그랬던 폴랴코프는 공산당의 부패에 차츰 회의를 느꼈다. 때마침 아들이 중병에 걸려 미국 병원으로 보내야 했는데, 당 지도부가 단지 이념을 이유로 막아세웠다는 설도 있다. 이 두 가지가 그의 전향 결심 계기로 꼽히곤 한다. 폴랴코프가 미국 정보당국에 전한 기밀은 모두 금쪽같았다. 그는 가령 소련이 자랑하는 대전차 미사일의 설계도 일부를 흘렸다. 외교적으로는 소련과 중국 사이의 분열 증거도 넘겼다. 소련 정보당국이 몰래 심어놓은 각국의 첩자를 골라내주기도 했다. 폴랴코프는 빠른 두뇌 회전, 흔적 없는 일 처리로 “내가 아는 한 미국 정보기관이 가진 최고의 정보원이자, 역사상 최고의 정보원일 것(CIA 요원 산드라 그라임스의 평)”이라는 평까지 받은 자였다. 그런 그마저 내부 첩자 때문에 잃고 만 것이었다.
그뿐인가.
미국과 영국 등에 민감한 정보를 준 스파이, 암호명 ‘티클’의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FBI를 위해 KGB 요원 정보를 건넨 세르게이 모토린, CIA에 소련 전자 장비 기술을 보낸 엔지니어 아돌프 톨카체프 등도 비슷한 시기에 덜미가 잡혔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두더지는 여전히 땅을 파고 있었다. 조여오는 수사망을 피해, 유유히.
이 남자, 거짓말 탐지기 결과는…
올드리치 에임스, 1994. [AP=연합]
첩자는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
사실, 에임스는 그런 점에서 망에 잘 걸리지 않았다. 에임스의 업무 능력은 평범했다. 근무 평가 또한 ‘만족(satisfactory)’에서 ‘대체로 열정적(generally enthusiastic)’ 정도를 오갈 뿐이었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 눈여겨볼 지표는 결코 아니었다.
물론 그 또한 보다 젊을 때는 실력이 괜찮았다.
보너스도 꽤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잔실수가 많았다. 그는 뉴욕 지하철에 서류 가방을 두고 내린 적도 있었다. 그 안에는 하필 기밀문서가 잔뜩 담겨 있었다. 다행히 사고 없이 되찾긴 했지만, 이미 그때부터 상관에게 나쁜 인상을 안긴 건 사실이었다. 에임스는 종종 술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고, 때로는 여자 문제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요주의 인물, 즉 흑막에 가려진 주도면밀한 스파이가 될 깜냥은 없는 듯했다.
특별 조사팀이 그런 에임스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그의 갑작스러운 사치 행각 때문이었다.
에임스는 돈이 많았다. 정확히는, 이상하리만큼 ‘많아졌다’. 에임스는 언젠가부터 재규어 XJ-6를 몰고 다녔다. 이는 당시 5만달러 수준이었다. 옷도 휙휙 바꿔 입었다. 하나같이 고급 원단의 맞춤 정장이었다. 아울러 버지니아주 일대의 저택도 사들이는가 하면, 집값 54만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건넸다는 말도 돌았다. 당시 에임스의 연봉은 6만~7만달러 수준이었다. 누군가 물으면 에임스는 처가의 형편이 좋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안에도 크라운이 가득했다. 처가가 부자라고 한들, 복권 1등에 당첨된 게 아니고서야….
에임스 씨.
당신은 조국을 배신했습니까?
조사관이 물었다. “그런 적 없습니다.” 에임스가 답했다. 둘 사이에는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다. 기계의 판독 결과는…‘진실’. 첨단 장비는 에임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일부 질문에 대해선 약간 모호한 결과도 있긴 했다. 다만, 이는 그저 오류로 치부해도 될 수준이었다. 에임스는 1986년과 1991년, 두 차례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두 번 다 ‘통과’였다.
스위스 계좌에서 꼬리가 잡히다
시간은 또 흘렀다. 그사이 유능했던 미국 측 첩자는 또 붙잡혔다. 몇몇은 또 실종되고 말았다.
특별 조사팀도 나름대로는 애를 썼다. 조사팀은 추려낸 유력 용의자 몇몇(여기에 에임스도 있었다)에게 사람도 계속 붙이려고 했다. 다만 어째서인지 인력 충원이 수월치 않았다. 수사망을 더 좁힐 수 있었는데,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 구조였다. 이렇게 또 몇 해가 지나갔다. 답답함도 커져만 갔다. 그러다….
“다들 이 기록을 보세요. 우리가 그자를 잡은 것 같아요!”
조사팀이 꾸려지고 8년째, 1994년의 어느 날. 팀원 한 명이 모두를 불러모았다. 그가 책상에 올린 건 스위스 은행의 특정 계좌, 거기에 빼곡히 적혀있는 입금 내역이었다. 총액은 130만달러에 이르렀다. “지금껏 용의자들의 계좌를 하나씩 살펴봤죠. 불규칙적으로 출처 불명의 거액이 들어오는 계좌를 드디어 찾았어요. 입금 날짜를 따져 계좌주의 행보를 몇 달간 역추적해봤어요.” “그래서요?” “돈은 이 사람이 소련 대사관을 드나들 때마다 들어오고 있었어요.” 그토록 찾고 잡으려고 애쓴 두더지, 그자가 이 계좌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빌어먹을 스파이(a goddamn spy)’를 기어코 특정할 수 있겠군요.” 실제로 당시 회의장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자가 누구죠?” 계좌주의 이름은… “에임스. 올드리치 에임스요.” 역시나 그 인간이었다.
바란 건 오직 돈밖에 없었다
올드리치 에임스의 머그샷, 1994 [연방수사국]
에임스가 바란 건 돈이었다.
조직에 대한 회의감 또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향한 경도(傾倒)가 아니라 돈. 그의 범행 동기는 나라를 팔 때마다 따박따박 입금되는 달러가 전부였다. 이는 당시 미국 정보 당국에 충격을 안겼다. 왜? 굳이 덧붙이면, 그 시절 첩자 중 상당수에게는 그래도 최소한의 품격 비슷한 게 있었다. 대표 사례가 폴랴코프였다. 폴랴코프는 “애국자로서 조국(소련)의 엇나감을 좌시할 수 없어” 스파이가 됐다고 주장했다. 근거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매년 3000달러 정도의 수고비만 고집했다. 이마저도 공구, 낚시와 사냥 장비로 받는 일이 많았다. 에임스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는 나라의 뒤를 치는 사이 점점 더 많은 돈만 바랐을 뿐이었다.
겉보기에 에임스는 적당히 불행한 CIA 요원이었다.
에임스는 1941년생이었다. 미국 위스콘신주 리버폴스 출신이었다. 그는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원래는 그곳에서 역사를 공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금방 싫증을 느껴 중퇴하고, 그때부터 여러 일자리를 돌며 푼돈을 벌었다. 그랬던 에임스의 발길이 닿은 마지막 직장이 CIA였다. 사실, 그의 아버지도 CIA 요원이었다. 이 덕에 자연스럽게 다리가 놓인 케이스였다. 에임스는 이후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 입학해 학위를 받았다. 같은 CIA 동료인 낸시 세게바스와 결혼도 했다.
에임스에게 아예 능력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는 크고 작은 실수를 종종 저질렀다. 술 또한 알코올 중독 수준으로 좋아했다. 에임스는 차츰 불만 많은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그런 에임스의 무채색 삶에 끼어든 여인이 있었다. 주멕시코·콜롬비아 대사관의 직원, 그보다 10살 어린 로사리오 카사스 뒤푸이였다. 둘은 한 연회장에서 만났다. 우연히 마주 앉았다. 학자 움베르토 에코,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놓고 토론도 했다. 말을 섞을수록 불꽃이 튀었다. 그때부터 불륜의 초가 타올랐다. 에임스는 뒤푸이와의 결혼을 꿈꿨다. 끝내 아내 세게바스와 이혼하고, ‘운명의 사랑’과의 두 번째 식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의 삶은 더 꼬이고 만다. 술과 사고, 거기다 불륜…. 켜켜이 쌓인 부정이 살찌울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불행.
에임스는 매일 밤 돈에 허덕였다.
그가 내야 할 이혼 위자료는 4만6000달러였다. 그 돈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새롭게 맞은 아내 뒤푸이 또한 사치가 심했다. 훗날 에임스는 이러한 상황이 간첩 활동을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1985년, 4월. 에임스는 소련 대사관 문을 대담하게 열었다. 우체부가 된 양, 소련 외교관에게 봉투를 줬다. “내게 5만 달러를 주시오.” 봉투 속 쪽지에 적힌 말이었다. 무작정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 안에는 몰래 미국 편을 든 소련의 KGB 요원 2명 명단도 함께 쓰여있었다. 때마침 에임스는 대(對)소련 방첩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소련과 관련한 기밀 자료는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소련 정보 당국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에임스가 지목한 둘. 이들은 정말 미국으로 돌아선 두더지가 맞았다. 5만 달러가 아깝지 않았다. 요구한 돈이 꽂힌 그날, 에임스는 고민의 끈을 완전히 놓았다.
사치는 동료들의 목숨값이었다
에임스가 1993년 10월 13일 러시아 정보기관 담당자들과의 만남을 약속하기 위해 우체통에 분필로 가로로 표시해 둔 흔적. [연방수사국]
돈은 소금물과 비슷한 면이 있다. 취하면 취할수록 갈증을 더 심하게 느낀다는 점에서 그렇다.
에임스는 폭주하듯 돈과 정보를 맞바꿨다. 그는 소련 대사관의 KGB 요원과 수시로 몰래 접촉했다. 9년간 소련 내 미국 스파이를 ‘성실히’ 밀고했다. 그가 넘긴 이름은 최소 25명이었다. 에임스는 자신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는, 정보전 최전선에 있는 스파이부터 차례차례 일렀다. 이들 모두 사실상 사형 선고가 내려질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아울러 덤이라는 듯 CIA의 대소련 공작 기밀문서도 100건 이상 제출했다. 급하게 만날 일이 있으면 미국우정공사(USPS) 우체통에 분필로 선을 그었다. 이는 양측 사이 약속이었다. 목숨이 걸려 있어서였을까. CIA 안에서는 무기력한 직원이, KGB에서 줄타기를 할 때는 의외의 주도면밀함을 발휘했다.
KGB의 고위 장교는 에임스가 지치지 않도록 계속해 당근을 줬다.
그 결과 에임스는 건당 2만~5만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모두 250만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35억8000만원)였다. 에임스는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그는 곧 “평생을 물쓰듯 써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으리라 믿었다. 현실은 꿈과 달랐다. 돈은 챙기고 챙겨도 모자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권에 당첨된 듯 저택을 사고, 최신형 외제차를 뽑고, 옷과 가구, 보석과 구두…. 받는 족족 아내 뒤푸이와 함께 흥청망청 써버렸으니.
그 사이 특별 조사팀은 에임스의 비밀 계좌를 해부했다.
희대의 배신자를 잡기 위한 체포 작전도 은밀히 펼쳤다. 1994년 2월21일. 이날이 두더지 사냥에 나선 결전의 날이었다. FBI 요원들이 에임스를 차 안에서 체포했다. 그를 집 아닌 도로에서 잡았다는 말도 있다.
사람을 잘못 본 거라고!
에임스는 FBI 요원에게 끌려가는 내내 소리쳤다.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CIA와 FBI, 특별 조사팀 모두 지금껏 사람을 잘못 봤던 건 확실했으니. 이들 모두 소련의 거짓 정보에 휘둘린 게 첫 패착이었다.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믿은 게 두 번째 패착이었다. 그저 인간만 훑어보고, 그 인간의 뒤틀린 욕망까지 파헤치지 못한 일 또한 치명적 패착이었다. 에임스의 집에서는 롤렉스 시계 6점, 다수의 고급 드레스와 수십개의 명품백, 수백 켤례의 신발 등이 나왔다고 한다.
종신형 선고, 32년 뒤 쓸쓸한 사망
올드리치 에임스, 1994년 2월 22일 알렉산드리아 소재 미국 연방 법원에서 연행되고 있는 모습. [AFP=연합]
“처음에는 당장의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속임수만 쓸 생각이었어요. 선을 넘은 후로는 되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1994년 초봄. 에임스는 법정에서 잘못을 인정했다.
에임스가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문제의 스위스 은행 계좌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사이 FBI가 그의 사무실을 털었는데, 거기에서도 문제 소지가 큰 비밀 서류가 114건이나 쏟아졌다고 한다. 그는 간첩 활동과 탈세 혐의로 공식 기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제 행동은)미국의 중대한 안보 이익에 실질적 영향을 주지 않은, 부차적 사건에 불과했습니다.”
에임스는 이처럼 끝까지 억울함을 표하기도 했다. “에임스 씨.” 검찰이 높아지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당신은 수년간 미국의 귀중한 정보 자산을 훔쳤습니다. 조국의 안보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줬습니다.” 이는 마지막 기세를 쥐어짜낸 에임스를 재차 내려찍는 반론이었다. “더 큰 집, 더 큰 차를 원했던 저 자식 때문에 우리 요원들이 죽었다고!” 당시 CIA 국장이었던 제임스 울시는 에임스를 향해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기도 했다. 울시는 조직관리 부실 등을 이유로 사실상 불명예 사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40087-083.
에임스의 수감자 번호였다. 그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나이는 쉰셋이었다. 그의 범죄 행위가 연방 사형법이 완전히 부활하기 전 이뤄졌던 만큼, 사형수가 되지는 못했다. 에임스가 머물게 된 곳은 메릴랜드주 컴벌랜드의 연방 교정시설이었다. 에임스는 감옥에서 32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2026년 1월6일,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욕망은 긴 초였다. 기세 좋게 타올랐지만, 다 타버린 뒤 남은 건 제멋대로 뭉개져 번진 촛농뿐이었다. 그는 본인 죄와 걸맞은 무게감의 죄책감을 느끼기는 했을까. 하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떤 잘못은 끝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에게, 다시 들여다보기를 강박처럼 여기는 역사에게도.
(…)
(…)
(…)
“…그런데, 에임스는 무슨 속임수를 써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두 번이나 통과했을까요? 인간이 혈압과 맥박, 호흡을 한 번에 조절한다는 게 말이 돼요?”
한 수사관이 물었다.
“그자가 신문 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마법은 없었다. 자신감이 중요했다. 나는 웃었다. 조사관이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이런 검사 따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했다’고요.”
“왠지 그것도 거짓말 같네요.”
“그렇죠? 음…. KGB가 무슨 수를 써줬겠죠?”
“분명히요.”
*에임스는 실제로 조사관에게 저런 증언을 했다. 에임스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앞두고 KGB에 도움을 청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KGB는 “그냥 긴장을 풀면 된다”는 조언만 건넸다고 한다.
참고자료
벤 매킨타이어, 스파이와 배신자, 열린책들
Tim Weiner, David Johnston, Neil A. Lewis, Betrayal: The Story of Aldrich Ames, an American Spy, New York : Random House
U.S. Senate,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 An Assessment of the Aldrich H. Ames Espionage Case and Its Implications for U.S. Intelligence, Report Prepared by the Staff of the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