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예감] 전세 사기, 왜 수사해도 못 잡나? – 한국일보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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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인용 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방송시간 : 8월 26일(금) 09:05-10:53 KBS1R FM 97.3 MHz■ 진행 : 김방희 소장 (생활경제연구소)■ 출연 : 김동욱 기자 (한국일보)- 전세사기,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보증금 등 피해 복구 어렵고 집주인 처벌 힘들어- ‘안심전세대출한도 80~90%’, ‘융자금 없음’ 등 홍보 문구 주의... 사전 작업된 물건일 수도- ‘무갭 투자’ 형태로 진행하는 매매와 전세의 ‘동시 진행’ 수법... 투자금 없이도 매물 처분할 수 있어- 사기로 이어지는 ‘깡통 전세’... 집주인 바꾸거나, 매매가가 전세금보다 낮은 경우- 신축빌라, 세입자가 정확한 시세 알기 어렵고, 감정평가기관과 공모해 시세 올리기도- 보증보험 가입하면 전세금은 돌려받을 수 있어... 다만, 당일 전입신고가 필수- 아파트의 경우에도 시세는 명확하지만, 중개업자와 집주인 공모해서 압류나 경매 상황 숨기기도- 피해 줄이려면, 시세 파악, 공시지가 확인, 전입신고 후 집주인의 명의변경 금지나 은행대출 불가 등 특약 작성해야◇김방희> 어제 깡통전세 얘기했죠. 이 퀴즈 낸 이후에 많은 분이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자면 김미경 님이 막냇동생이 지방에서 깡통전세로 5000만 원 피해 봤습니다. 소송만 1년 넘게 걸렸는데 결국 한 푼도 못 받았네요. 8894번님 딸이 대출받아 전세로 들어갔는데 사기였습니다. 집주인이 부동산과 짰더군요, 하고 제보를 해주셨는데 잠시 후에 어떻게 이런 사기 작전이 펼쳐지는지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밖에도 8718, 2919 전세금 날려서 충격으로 쓰러졌다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전해주셨습니다. 이게 심각한 게요. 최근에 국토부에서 적발한 전세 사기 의심 건수가 1만여 건이니까 또 피해 보증금이 1조 원 가까이 되니까 참 정말 통탄할 노릇입니다. 500여 명 대상으로 1000억 원 규모의 깡통전세 사기부터 아파트 한 동 전체를 전세 사기에 이용한 집주인도 있었고 수법과 행태도 가지각색입니다. 이 문제를 취재한 한국일보 김동욱 기자와 함께 전세 사기 제대로 알고 속지 않는 법 얘기해 보겠습니다. 김 기자 어서 오십시오.◆김동욱> 네, 안녕하세요.◇김방희> 김 기자가 당해보지는 않으셨을 텐데. 전세사기 취재를 해야 되겠다. 저희가 김 기자를 섭외한 이유는 전세 사기와 관련해서 가장 심층적인 기사를 연재하셨더군요. 그래서 모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거 취재해 봐야 되겠다.◆김동욱> 잘 아시다시피 최근에 전세 사기가 굉장히 핫 이슈가 됐었고 그다음에 그렇게 이슈가 되니까 대통령까지 일벌백계 하겠다. 이런 말씀을 하셔서 얼마나 심각한지 저희도 알아봐야겠다. 이렇게 해서 기획을 하게 됐습니다.◇김방희> 그렇군요. 게다가 집값 조금 떨어지게 되면 2010년 이후에 경험했지만 전세가가 더 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피해자분들을 많이 만나셨더군요.◆김동욱> 네, 그렇습니다.◇김방희> 공통적으로 이분들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까?◆김동욱> 방금 진행자께서 소개해 주신 분들 그분들도 보면 전세 사기를 당했는데 그래서 소송까지 걸었는데 한 푼도 못 받았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니까 그거거든요. 이게 어려운 게 피해 복구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법원에서는 당신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렇게만 하는데 어떤 강제권을 해서 집주인한테 집이 피해자한테 돈을 보내시오. 이렇게 판결을 내리지 않거든요. 그럼 본인이 이기더라도 당장 돈을 받을 수가 없는 거예요. 두 번째는 그러면 내가 만약에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개인의 심정은 이 사기꾼 집주인을 처벌을 해야 된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처벌을 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사기죄로 이 사람이 분명히 사기를 쳤으니까, 나한테. 사기죄로 처벌을 하게 해야 되는데 사실상 사기죄로 기소까지 가는 것도 어렵고 그다음에 경찰이... 일단은 이분이, 뒤에도 얘기하겠지만. 500명 이렇게 사기 친 이렇게 대규모 피해가 아니면 사실 수사 기관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어려워요. 그렇다 보니까 본인이 내가 이걸 어디에 신고를 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고 법원에 소송을 걸더라도 피해 복구가 안 되고. 그러니까 굉장히 피해자로서는 굉장히 자괴감이 드는 그런 상황이겠죠.◇김방희> 난감하겠군요. 전세금이라는 게 사실 평생에 걸쳐 모은 돈이니까 더욱더 그럴 테고. 사기죄 처벌이 쉽지 않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여쭤보고 싶은데 경찰이나 검찰이 물론 몇 백 채, 몇 천 채 하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수사에 돌입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사기의 의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왜 처벌이 안 됩니까.◆김동욱> 일단 말씀하신 그런 이유도 있고요. 저희한테 제보해 주신 분들이 하나같이 말씀하시는 게 지금 3년째 이렇게 수사만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게 계속 검찰까지 넘어가도 검찰에서 계속 담당 검찰이 계속 바뀌고 그런 거 보면 계속 후순위로 밀리는 거거든요. 정확하게.◇김방희> 솔직히 말씀드리면 검경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사건인데요.◆김동욱> 그렇죠. 이게 개인 단위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수사를 하기는 하겠지만 속도가 빠르지 않고. 그러니까 계속 시간이 지연되는 거죠.◇김방희> 알겠습니다. 구체적인 사기 사례들 살펴보면서 조언을 구하도록 하죠. 가장 많이 당한 사례들을 보니까 현수막이나 전봇대에 광고가 붙어 있는데. 융자금 없음. 이게 벌써 마음이 턱 놓이거든요. 융자금 없다. 안심 전세 대출 한도 80~90% 홍보 문구가 붙어 있는데. 일단 이거는 믿어도 되는 겁니까?◆김동욱> 일단 의심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저희가 빌라라든지 이런 데 하면 전세를 끼고 들어가지 않습니까. 전세를 끼고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얘기를 하는 게 전세 대출이 가능하고 그다음에 이 전세 대출에 대해서 보증보험이 가능하니까 당신의 전세금은 안전합니다. 이렇게 홍보하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뒤에서 설명한 동시 진행이라는 게 있는데 이거를 하기 위한, 사전 단계가 사실 이거예요. 그래서 근저당이 있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전 세입자를 들여야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근저당이 있으면 일단은 대출도 안 되고 그다음에 보증보험도 안 되니까 처음에는 전부 다 이런 근저당이라든지 이런 걸 전부 다 말소해 놓아요.◇김방희> 깨끗하게 만들어놓는 거군요.◆김동욱> 깨끗하게 만들어놓는 이게 사전 작업인데. 그러다 보니까 나오는 게 전부 다 하나같이 융자금 없음. 그다음에 안심 전세 대출 한도 90%다. 그런데 안심 전세 대출이라는 게 대출 플러스 보증까지 가능한 그런 상품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거를 내거는 건데. 깡통전세일 가능성이 높죠.◇김방희> 오히려 더 깨끗하고 신뢰를 얻으려고 하는 게 사기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아까 동시 진행 얘기해 주셨는데, 이게 뭡니까?◆김동욱> 그러니까 말 그대로 매매와 전세를 동시에 한다는 건데요. 그러니까 어떤 물건을 팔기 위해 고안된 기법입니다. 그러니까 빌라라든지. 특히 빌라, 이런 것은 사실 잘 사지 않잖아요.◇김방희> 그럼요. 아파트에 비해서 훨씬 이슈가 떨어지죠.◆김동욱> 그래서 이런 빌라를 팔려고 고안된 건데. 그런데 매매 수요는 없지만 전세 수요는 있거든요. 사회 초년생이라든지 특히 신축 빌라 이런 거는. 깨끗하고 가격도 저렴하니까. 그래서 이거를 팔려고 이렇게 만든 거예요. 그런데 일종의 갭 투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전 세입자를 들여서 분양 대금을 치르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 구조가 무갭투자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도 투자금을 들이지 않고 이 빌라를 처분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만약에 건축주가 빌라를 짓고 한 채에 한 1억 원에 팔고 싶어요. 이 사람은. 1억 원만 팔아도 자기는 남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걸 당장 1억 원에 팔려고 하면 아무도 살 사람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팔리겠지만 시간이 굉장히 걸려요. 그러면 여기에 이제 컨설팅 업자가 끼어듭니다. 집주인한테. 내가 당신 집을 1억 5000만 원을 팔아줄 테니까 나머지 5000만 원은 수수료로 주세요. 이렇게 해요. 그러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아니 내 집을 그렇게 바로 팔아준다는데 굳이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어떻게 1억 5000만 원을 파느냐. 이 컨설팅 업자는 1억 5000만 원의 전세를 놓는 겁니다. 왜냐하면 신축 빌라는 시세라는 게 별로 없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도 별로 크게 따지지도 않고.◇김방희> 빌라 같은 경우는 신축을 또 좋아하고.◆김동욱> 그렇죠. 대출도 되고 그다음에 보증보험도 되고 이렇게 하니까 1억 5000만 원에 전세로 들어가요. 이 집은 이미 깡통 전세인 겁니다. 왜냐하면 매매값보다 훨씬 높은 1억 5천만 원의 전세가 나갔으니까. 이미 이런 식이에요. 동시 진행이. 거의 그래서 이게 불법은 아닙니다. 불법은 아닌데 문제는 지금처럼 집값이 떨어지거나 전셋값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2년 뒤에 전세금을 돌려줄 수가 없거든요. 동시 진행의 맨 마지막 단계는 어쨌든 1억 5000만 원의 전세를 내줬잖아요. 그러면 이 건축주의 명의를 누군가를 가져가야 되거든요. 팔았으니까. 그러면 이 명의를 누구한테 주냐면 모집을 해요. 바지 집주인을. 그러니까 투자금을 한 푼도 들이지 않아도 당신이 빌라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억 5000만 원에 이미 전 세입자가 들어왔으니까 그래서 명의를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바지 집주인들은 2년 뒤에 내가 전세금 조금 오르면 그 차익 이렇게 벌 수 있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보니까 그게 아닌 거예요. 이미 매매값보다 훨씬 전셋값이 올라가 있고 바지 집주인도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좀.◇김방희> 상당히 피해자가 많이 개입되는 구조인데. 보니까 세입자만 피해자가 아니라 바지 집주인이라고 표현되는.◆김동욱> 바지 집주인도 그럴 수 있어요.◇김방희>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거고. 그런데 두 가지 의문이 드는데 이 부분을 전세 사기와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취재하셨겠지만. 하나는 전세 사기까지는 아니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그냥 깡통전세가 돼서 본의 아니게 갚을 수 없게 됐다. 전세보증금. 이런 분들도 꽤 있지 않아요? 그보다는 이렇게 조직적으로 이런 구조가 형성된 경우가 훨씬 많습니까?◆김동욱> 좀 이게 다른데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시장 상황이 전셋값이 내려서 깡통전세가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어요. 지방 같은 경우는. 그런데 그런 경우는 일단 집주인이 있고 그대로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집주인이 상환을 한다든지 그런 최악의 경우까지 갈 가능성은 낮거든요.◇김방희> 정 안 되면 거기서 계속 사시면 되는 거니까.◆김동욱> 계속 살게 하거나 아니면 그 집주인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해서 신뢰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일단은. 그런데 이게 방금 말씀드린 이 구조에서는 집주인이 이미 바뀐데다가 시작부터가 깡통 전세인 거예요. 그런데 2년 뒤에 내가 새로 살 집을 이사 가려다 찾아보니까 어느 순간 집주인이 바뀌어 있고 보니까 매매 시세가 내가 계약한 전세보다 턱없이 못 미치는구나, 이걸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김방희> 두 번째 궁금한 게 처음 시작부터 빌라나 다세대주택이 깡통 전세로 출발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부동산 중개사무소나 이런 데 가서 전세 시세를 좀 알아보고 안 당할 수는 없나요? 부동산 중개업소가 시세를 안 알려주나요. 신축의 경우에는?◆김동욱> 알려주죠. 그러니까 그런데 신축 같은 경우는 신축 빌라 같은 경우는 저희는 구조를 이미 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유통을 하고 이걸 아니까 분양가를 다 압니다. 저희는 취재를 했으니까 그런데 대부분 보면 어떻게 돼 있냐면 분양가가 만약에 2억 원이다. 그러면 옆에 전세도 2억 원이라고 이렇게 딱 돼 있어요.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분양가와 전세를 똑같이 책정해 놓는 거예요. 신축빌라 같은 경우는. 그러면 세입자를 모집할 때는 전세가 2억 원입니다. 이렇게 하면 매매 시세는 어떻게 돼요. 이 분양가는 얼마에 나왔어요. 이렇게 하면 거의 비슷하게 나왔는데 그래도 분양가가 더 높습니다. 이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신축빌라 같은 경우는 아직 매매된 전례가 없으니까 세입자가 정확하게 시세를 알 수가 없어요. 이 분양가를 알 수가 없고, 그리고 사실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어차피 반환보증 가입도 되고 내가 봤을 때는 전세금도 저렴한 것 같고 그리고 지금 저희가 뒤에 얘기하겠지만 이런 매물 같은 경우는 이사 지원금이라고 그래서 돈도 한 1000만 원씩 줍니다. 그러니까 세입자 입장에서는 나 괜찮은 빌라 골랐구나 신축을.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김방희> 아까 잠깐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마는 이 구조 자체에 원천적으로 불법적이냐 이 부분은 애매한 게 원래 부동산 거래할 때도 중개인들이 끼어 들어가서 서로 정보를 공유한 다음 수수료를 쪼개서 나눠가지기도 하니까 이것 자체는 불법적이라고 볼 수 없는데 어느 지점부터 이게 사기가 되는 겁니까?◆김동욱> 그러니까 이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동시 진행을 하는 이유는 집을 쉽게 팔고 그다음에 분양업자들은 그 집을 파는 대가로 수수료를 챙기려는 목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구조가 되려면 전셋값이 최대한 높아야 이 구조가 돌아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분양업자도 자기한테 남는 몫도 커지고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전셋값을 최대한 높일수록 이 주택은 처음부터 깡통 전세가 굉장히 심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셋값도 높고 리베이트 규모가 크다. 그러면 이 주택은 깡통 주택 정도가 굉장히 심한 주택인 거예요. 그러면 시작부터 깡통 주택이면 이거는 이미 중개업자도 이 주택이 깡통 주택이라는 걸 인지를 하고 있는 거지 않습니까? 집주인은 모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알더라도 묵인할 수 있겠죠. 이런 방식으로 자기 집이 팔린다는 걸 알더라도 묵인할 수 있고 중개업자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도 전 세입자를 모집하는 거고 그러니까 이건 깡통 전세인 걸 알고 2년 뒤에 어떻게 되는 걸 알면서도 전 세입자를 모집한 거니까 사실상 사기죄에 적용될 수도 있는 거죠.◇김방희> 적용될 수 있는 거군요. 입증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사기의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건데 거듭 시세가 아파트처럼 분명하지 않다는 게 이런 동시 진행이라는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 사기의 어떤 기반이 되는 건가요? 그러니까 만약에 이 빌라 시세 같은 게 명쾌하게 다 공개가 될 수 있다면 전세사기의 가능성은 좀 낮아지는 거 아닌가요?◆김동욱>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제도의 맹점이 있는 게 빌라 같은 것은 시세도 잘 없는데 시세를 만들기가 쉬워요. 그러니까 무슨 말씀이냐면 보증기관에서 보증을 내줄 때, 조건으로 내걸 때 주택 가치를 산정을 합니다. 그런데 빌라 같은 경우는 주택 가치 산정하는 기준이 명확한 시세가 없으니까 공시가격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민간감정평가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돼 있어요. 그렇다 보니까 분양업자들이 대부분 신축빌라는 민간 감정평가기관에서 그러니까 이것도 다 다 서로 연결이 돼 있는데◇김방희> 네트워크일 가능성이 많죠.◆김동욱> 거기에 의뢰를 해서 여기 빌라 시세 전세 높일 수 있게 감정을 해달라 이렇게 하면 한 3일이면 그 시세를 만들어줘요. 수수료를 500만 원 주면 그러니까 이미 이런 동시 진행 매물은 이미 분양가 자체가 처음 나온 매매가 자체가 굉장히 부풀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기네들이 전세금을 통해서 리베이트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빌라의 시세가 명확하면 좋은데...◇김방희>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김동욱> 전문가들도 구조적으로 이런 민간감정평가기관을 통해서 시세를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고쳐야 된다 이렇게 지적들을 많이 합니다.◇김방희> 그렇군요. 그동안 전세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등기부 등본 떼봐라 이런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우리 지금 김준호 님도 등기부 확인해서 임대인과 직접 계약해야 합니다. 그런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과거에 전세 피해 줄이는 방법의 핵심이 이거였죠. 등기부 확인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임대인한테 직접 계약하는 것 이런 것이었는데 문제는 아까 등기가 깨끗한 거, 융자 없이 이런 것도 전세 사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글쎄 어떻게 보면 과거의 노하우 가지고는 이걸 피해갈 방법이 없겠는데요.◆김동욱> 사실 정말 집주인이 짜고 내가 전세 사기 치겠다. 이렇게 하면 세입자로서는 그걸 사실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집주인의 세금 정보라든지, 세금이 얼마나 밀렸는지 이런 걸 알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거는 그걸 알려면 국세청 홈텍스에 가면 검색을 할 수 있는데 집주인 동의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임차인이 그런 정보를 알기가 사실 쉽지가 않아요. 굉장히 약간 정보 비대칭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등기부 등본 아무리 보고 이렇게 하더라도 사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좀 찝찝한 거죠. 정말 이게 맞는 건지?◇김방희> 그렇죠.◆김동욱>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요. 그래서 약간 중개업자들이 중간에서 정말 그런 정보들을 말하지 않더라도 알선을 잘 해주고 그다음에 특약 같은 것도 좀 잘 해놓고 하여튼 좀 그런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김방희>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도 잘 만나야 되는 게 아까 말씀해 주신 그런 세입자 입장에서 안전장치를 해줘야 되는데 늘 저도 부동산 관련 계약 상가나 이런 걸 해보면 건물주 그쪽 입장에서 진행을 하더군요. 그 이유는 세입자는 자꾸 바뀌지만 건물주는 거기서 영원하니까, 집주인은 영원하니까 아마 그렇기는 하겠습니다마는 곽정은 님 질문 하나 여쭤봐야 되겠군요. 높은 전세금 때문에 불안해서 전세보증보험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전세보증금으로 못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예전에 한 번 경매에 넘어가서 못 받을 뻔 한 적이 있어서 전세보증보험 가입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안심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했는데 저희들도 전세보증보험 추천해 드렸는데 이것만으로도 완전히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까?◆김동욱> 사실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는 게 제일 확실하긴 합니다. 왜냐하면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면 100% 전세금은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일단은 전세계약이 2년이지 않습니까? 2년 되는 시점에 집주인이 전세금을 못 돌려준다고 한다. 그러면 1개월 이내에 허그 이런 데 이렇게 절차가 있습니다. 절차가 약간 복잡하기는 한데 어쨌든 그런 절차를 다 하면 2개월 안에 그러니까 2년 플러스 2개월, 2개월 안에 전세금을 다 돌려받을 수는 있어요. 그래서 제일 확실하죠. 이게 물론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런데 못 받는 경우도 있어요.◇김방희> 그래요?◆김동욱> 어떤 경우냐? 그러니까 이 조건이 있는데 보통 저희가 이사 당일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습니까? 동사무소로 가든지 아니면 인터넷으로 하는데 이제 가령 금요일 오후에 이사를 해서 이사하다 정신이 없어서 전입신고를 못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다음 주 월요일에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다음 주 월요일에 했다. 그러면 보증계약 자체가 파기가 돼서 이분들은 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 만약에 계약 파기 대상이면 허그나 이런 기관에서 바로 그 당일에 알려줘야 되잖아요. 당신은 전입신고를 늦게 했으니까 보증보험이 계약이 파기됐어요. 그러니까 알고 계십시오 이렇게 얘기를 해줘야 되는데 지금 구조는 그렇게 알려주지 않아요. 그래서 본인이 사기를 당했구나 해서 내가 허그에 신청을 해야겠다. 이렇게 하면 그제서야 알려주는 거예요. 당신은 이 계약 대상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좀 그런 게...◇김방희> 좀 있네요. 지금 말씀을 많이 해주신 주택도시보증공사 허그라고 하는 HUG 이게 국토교통부 밑에 있는 공기업인데 여기를 통해서 시중은행 대출도 받고 보증보험 가입도 하는데 중간에 서 있는 입장이다 보니까 여기가 조금만 제도를 개선하면 좀 나아지는 면이 있을 것 같은데 왜 그게 안 되는 거죠?◆김동욱> 맞습니다. 전문가들도 그런 지적들을 그래서 많이 하고요. 그런데 허그는 자기네들이 공기업인데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고 그런데 이 대출 사업 규모는 굉장히 크고 그러니까 모든 걸 자기네들이 할 수 없으니까 시중은행에 전부 다 위탁을 했어요. 그러니까 시중은행이 이 세입자가 자격이 되는지 그다음에 이런 것들을 전부 다 검토를 해서 승인을 내주게 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허그는 그냥 도장만 찍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겁니다. 사고가 터졌을 때 돈만 이렇게 보내주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시중은행에서는 어쨌든 자기네들은 일단 1차적 책임은 없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사면 같은 게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은행에서 이렇게 급하게 이렇게 하고 하다 보니까 당신은 꼭 이렇게 해야 합니다. 뭐 한다든지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허점들이 좀 있고◇김방희> 피해자들을 쭉 만나보셨고 혹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전세 사기의 주역들 이런 분들도 접촉해 보셨어요?◆김동욱> 저희는 사실 가해자를 직접 만나지 못했고요. 가해자를 만나지 못했고 대신 이렇게 분양하신 분들, 실제로 동시 진행을 하신 분들 그런 분들을 만나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걸 저희가 취재를 했죠.◇김방희> 왜냐하면 그분들은 분양업자를 포함해서 이런 허점이나 이런 것들도 상당히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은데.◆김동욱> 어떻게 보면 분양업자 이런 분들이 가해자일 수 있으니까 그분들이 하는 게 다 이런 허점을 이용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쨌든 전 세입자를 들어오면 리베이트를 받지 않습니까? 받고 그리고 그런데 이 바지 집주인이 어차피 못 줘요. 못 돌려준다는 거 알잖아요. 그런데 허그에서 보증금은 다 반환을 해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분양업자 중에서는 본인이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리베이트도 받고 어차피 2년 뒤에는 그냥 허그해서 다시 보증금을 돌려받는.◇김방희> 돌려받으니까...◆김동욱> 그러니까 이게 문제가 그래서 보증보험에 가입하면 1차적으로 피해자는 없는 거죠. 그러니까 당장 세입자는 돌려받기는 하니까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누군가의 불로소득을 국가가 보전하는 구조라는 거예요.◇김방희> 이번에 국토교통부 측에서 전세 사기 의심 사례를 넘길 때도 보니까 우선 대상이 그 허그에서 보증금 대신 갚아줬는데 결국 대외 변제한 거죠. 그걸 다시 되갚지 않은 사람을 추려서 사기의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봤다고요.◆김동욱> 그러니까 그분들이 다 이런 경우거든요. 동시 진행해서 그러니까 다 대외 변제는 누군가한테 갔는데 그래서 그 집주인한테 다시 돈을 돌려 달라 했는데 그런데 그 집주인들은 전부 다 바지 집주인이니까 어차피 의미가 없는 거거든요. 이미 분양업자라든지 기존 집주인들은 다 자기네들이 수익 챙기고 다 빠져나가고 나머지만 이게 남은 거예요.◇김방희> 김원식 님이 성실한 부동산 중개인이신데 현장에서 많이 보신 답니다. 이거를 주변에 1~2억에도 매매가 안 이루어지는데 전세를 1억 4000이나, 1억 5000에 광고를 하고 내고 전세가 이뤄지면 1억 2000에 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상이 주변에 많습니다. 이게 대부분 이런 피해가 불가피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깡통 전세.◆김동욱> 시작부터 깡통 전세...◇김방희> 그렇죠. 어쨌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주의를 해야 될 텐데 그 언론의 기사가 가끔 나오죠. 300채를 가졌다. 전세 사기. 이번에는 보니까 500채 가까이 빌라를 소유한 이른바 빌라왕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런 분들도 그러니까 아까 말씀해 주신 동시 진행이라는 이런 시스템으로 굴린 겁니까?◆김동욱> 똑같습니다. 똑같은 말이 그러니까 ‘무갭 투자’거든요.◇김방희> 돈 전혀 안 들이고.◆김동욱> 그러니까 이 빌라 왕은 전 세입자 대금으로 전부 다 자기의 빌라를 다 팔고 자기는 돈을 한 푼도 안 들인 거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 명의만 노숙자 이런 사람한테 넘기는 거예요. 노숙자한테 당신이 이게 이 빌라를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돈도 버는 데 내가 이번에 수수료로 그래도 한 100만 원 주겠다. 이렇게 하니까 노숙자 이런 사람들은 다 명의로 주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해서 빌라왕은 전세를 굉장히 높게 해서 그 전세금 다 챙기고 그래서 남은 거는 건축 대금을 다 치르고 남은 차액을 다 자기가 가져가고 마지막 이 폭탄은 다 노숙자한테 넘기는 거예요. 명의를 그러면 2년 뒤에는 이 세입자가 이 노숙자한테 전세금 돌려달라 하면, 이 노숙자가 돈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경우는 빌라 전세가가 그렇게 높지 않고 이렇게 하니까 보증보험 가입 안 한 사람들도 많거든요.◇김방희> 대부분 그렇죠.◆김동욱> 그러면 그때는 더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죠.◇김방희> 취재를 많이 하셨으니까 정말 억울하고 황당한 사례들 말씀해 주신 동시 진행은 아주 구조적으로 짜고 치는 거니까 빠져나가기가 어려운데 어떤 분들이 있던가요? 피해자 중에 정말 이건 억울하고 황당하다 이런 사례들도 많았을 것 같아서.◆김동욱> 거의 수법이 다 이 수법이니까 다 사연 자체는 거의 비슷합니다. 비슷하고 그런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보증보험에 가입을 했는데 전입신고를 늦게 해서 못 받는 분들 그런 경우라든지 아니면 보증보험에 가입을 안 했으면 그거는 아예 피해를 구제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거고요.◇김방희> 일단 경찰에 신고는 하겠지만 수사는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그럼 개인적으로 그 돈을 되찾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나요.◆김동욱>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집주인 상대로 전세금 반환 소송을 거는 건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승소는 합니다. 승소는 하지만 이미 그 사람은 집주인은 본인의 재산이라든지 이런 걸 다 계좌에 빼놓고 이렇게 하니까 제가 강제 경매를 신청할 수 있거든요. 이 사람 재산을 다 조회를 해서 그럼 이 사람 재산을 조회를 하려면 제가 할 수가 없잖아요. 다시 소송을 걸어야 해요. 재산을 이 사람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재판부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이게 또 한 시간이 6개월 걸립니다. 그럼 6개월 뒤 이 사람 재산을 확보를 하면 한 집이 이런 사람들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빌라왕 이런 사람은 빌라 한 500채씩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게 나와도 강제 경매를 걸어도 제가 돈을 못 받아요. 왜냐하면 이미 그 빌라를 전부 다 깡통 전세이기 때문에 내가 강매 경제를 신청해 봤자 기존 세입자한테 배당금이 다 가고 저한테 남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상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니까 깡통 전세에 걸리면 소송을 하더라도 피해 복구가 거의 안 된다고 보면 돼요.◇김방희> 특히 안타까운 게 이런 모녀 전세 사기 경우도 그렇고 빌라 왕 같은 경우도 그렇고 청년들이 의외로 피해자들이 많던데 그건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빌라나 다주택 수요가 청년층에 집중돼서 그런 겁니까?◆김동욱> 그럴 수도 있고요. 그다음에 그냥 보면 저도 생각해 보면 20대 이럴 때 이렇게 집 계약할 때 잘 모르지 않습니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사실 따지기가 어렵고 그다음에 중개업자 그러니까 중개하시는 분한테 이거 좀 알아봐 주세요. 이렇게 이거 되게 미안해요. 쑥스러워하고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까지 그러면 거기서 1억짜리 전세 구하면서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이렇게 하면 또 주눅이 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굉장히 타깃이 되는 것 같습니다.◇김방희> 또 하나는 아무래도 깡통 전세가 나타나는 지역에서 이런 게 문제가 될 테니까 서울시에서도 집값 하락으로 전세 보증금이 집값의 80%를 넘어서는 경우들을 지도로 표시해서 구별로 색깔도 지정해 놓고 했던데 이런 게 조금 도움이 될까요.◆김동욱> 소비자들이 봤을 때는 경각심을.◇김방희> 주의를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 정도는 할 거다 그러나 아까처럼 동시 진행이라는 교묘한 수법에 말리면 사실 그냥 말리게 되는 건데 몇 가지 더 여쭤봐야 되는 게 빌라는 시세 때문에 그렇다고 치면 아파트는 시세가 투명하니까 좀 덜한 편이겠군요.◆김동욱> 아파트는 사실 아파트로 동시 진행을 해요. 동시진행 대상은 모든 주택이 다 동시 진행이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빌라 아파트까지 되는데 다만 아파트는 말씀하신 대로 시세가 명확하니까 쉽지 않죠. 깡통 전세를 완전히 만들기 쉽지 않은데 그런데 아파트는 이런 게 문제예요. 이제 중개업자가 중개업자랑 집주인이랑 짜고 이 집주인이 이미 세금이라든지 이런 것을 굉장히 많이 안내서 압류도 당하고 경매도 지금 되고 있고 이런데 이걸 숨기고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그러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아파트니까 괜찮겠지 중개업자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괜찮겠지 하는데 그런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김방희> 등기부로도 다 확인 안 되는 경우도 있나요.◆김동욱> 등기부 등본은 확인이 되는데 중개업자가 서류를 위조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거는 완전히 속이려고 작정하고 한 거니까 그런 경우고.◇김방희> 그 경우는 부동산 중개인까지 대게 끌어들여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고 오피스텔 같은 경우는 특히 또 청년층 거의 전용 주거시설처럼 되고 있는데 최근에 오피스텔 쪽도 그런 경우가 많아요. 이것도 조심해야 됩니까?◆김동욱> 최근에 저희가 그래서 추가로 기사를 낸 적이 있는데 오피스텔도 똑같습니다. 요즘 보면 빌라 문제가 됐던 강서구 화곡동, 등촌동, 인천, 부평 이런 데 보면 거기도 오피스텔이 굉장히 많거든요. 똑같거든요. 오피스텔도 잘 안 팔리니까 이런 식으로 굉장히 많이 해요. 그래서 요즘 보면 좀 웃긴 게 원래 오피스텔은 전형적인 월세 상품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면 이쪽 지역에서 나온 걸 보면 오피스텔이 거의 한 80%가 전세입니다. 월세는 거의 없어요. 다 전세로 나왔거든요. 그러면 거기에서 신규로 신규 전세입자 구해요. 이렇게 해서 가보면 방식이 똑같아요. 이제 중개 수수료 제로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사 지원비도 최대한 드립니다. 그리고 오피스텔이니까 좋잖아요. 이런 식으로 다.◇김방희>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빌라 다세대 주택뿐만 아니라 오피스텔 또 요즘 아까도 언급해 주셨지만 수익형 부동산이라고 그래서 월세 잠깐 벌겠다고 투자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쪽에서도 이런 게 벌어집니까? 그러면 자칫 잘못해서 세입자 피해뿐만 아니라 투자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건가요?◆김동욱> 그러니까 투자자가 그러니까 제가 만약에 오피스텔을 다들 월세를 기대하고 오피스텔을 샀다. 이런 경우는 문제는 없어요. 제가 파산을 하더라도 어쨌든 저는 월세만 받고 보증금은 낮으니까 세입자는 그렇게 피해 가지 않고 저만 손해 보는 거니까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오피스텔인데 동시 진행으로 이렇게 했다. 그럼 그런 경우에는 바지 집주인이 다 들어오는 거거든요. 바지 집주인이 들어오니까 그때는 전세금을 못 돌려주니까 나중에 허그까지 가게 되고 이렇게 하는데 이제 허그 심사에서 탈락하거나 이렇게 하면 문제가 되는 거죠.◇김방희> 그 투자들을 많이 해서 드린 질문이었는데 얼마 전에 온라인에 올라온 갭투자 혹은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투자한 분위기였죠. 오피스텔 10채를 갖고 있는데 그냥 파산 신청해야겠다. 이런 게 올라와서 세입자들 울리는 거라고 이제 했었는데 투자자들이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는 명백히 아까 말씀드린 그런 사기 수법이니까 위험한 거고 이렇게 계속 민생형 범죄인데 정말 최악의 범죄죠. 민생형 범죄 중에서도 그런데 검거 실적을 보니까 2019년에 95명 지난해 243명 조금씩 높아지기는 하는데 붙잡기가 어렵습니다. 잠적합니까? 이 사람들이 일종의 팀을 꾸려서 어느 한 지역을 동시 대행한 멤버들이 다 잡혔다거나 이런 소식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김동욱> 그러니까 이게 누구를 잡아야 되는지가 굉장히 불분명해요. 그러니까 건축주는 맨 처음에 첫 번째 집 주인은 나는 집 팔고 싶은데 저 사람이 저렇게 해준다고 해서 나는 의뢰를 했을 뿐이다. 넘어가는 거예요. 분양업자는 우리가 세입자 들였는데, 아니 이게 갑자기 2년 뒤에 전셋값이 떨어져서 못 주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되고요. 그러면 마지막 바지 집주인은 나는 그냥 수수료 한 100만 원 준다고 해서 그냥 이 명의만 받으면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양업자들은 이런 피해를 당하더라도 또 다른 데서 또 똑같이 하고 있어요.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이게 사기죄를 누구한테는 거기에 걸어야 되는데 애매한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취재를 하면서 분양업자들만 모여 있는 카톡방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 카톡방을 전부 다 해서 한번 기사로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카톡방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그러니까 최근에 검찰이 전세 사기를 척결한다고 하는데 우리 난리 났다 그러면 거기서 어떤 A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해요. 이제 동시 재능 가지고 다 잡아들이면 최소 교도소 하나를 더 만들어야 될 것 같다.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다른 사람이 왠지 교도소 하나 더 만들면 그 안에서 동시 진행이 또 생길 것 같다. 이러는 거예요. 교도소 사진을 찍어서 동시 진행으로 또 그런 식으로 농담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도 전부 다 이게 불법인 걸 알고 이 규모가 굉장히 크다는 거를 전부 다 인지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김방희> 그래요. 대통령도 전세 사기 얘기를 하면서 추가로 대책이 나온 게 있나요. 아니면 취재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대책을 제안한 적이 있나요. 어떻게 해야 풀립니까 이게.◆김동욱> 굉장히 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일단 국토부나 경찰 이런 데서도 굉장히 관심을 갖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그래서 국토부에서 일단 처음으로 사상 처음이거든요. 처음으로 단속을 해서 하여튼 나름 적발도 했고 그걸 경찰에 넘겼고 그래서 전세 대책, 사기 대책도 9월 중에 내놓는다고 해요. 일단 이렇게 계획이 잡혀 있고 그리고 사실 제도 허점도 지적들이 많이 돼서 그런 것도 개선이 돼야 될 것 같습니다.◇김방희> 마지막으로 소비자 입장에서 전세 소비자 세입자죠. 이 입장에서 특히 젊은 분들은 세상을 좀 잘 모르고 그래서 그냥 부동산 중개인이 잡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계약을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나만 제발 좀 신경 쓰자 하는 거를 김 기자가 꼽아주시면 뭘 꼽으시겠어요. 예전에는 등기부 등본 보자는 거였는데 조금 추가되어 될 것 같아서.◆김동욱> 뭐 이런 게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매매값을 정확하게 시세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까 빌라는 당연히 안 되는데 그 주변 시세를 확인한다든지 아니면 본인이 들어갈 집의 공시지가를 한번 확인을 해서 공시지가는 국토부 공시지가 이렇게 하면 검색이 되거든요. 거기서 A빌라 202호 이렇게 치면 공시지가 1억 5천만 원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제도상 거기서 150%까지는 전세를 놓을 수 있는데 그러면 1억 5천에 150이면 대략 2억 3천만 원이거든요. 그러면 내가 알아본 시세가 2억 3천만 원과 얼마나 차이가 있나 만약에 내가 알아본 시세가 주변에 보니까 한 1억 9천이더라 그러면 아무리 이게 신축이더라도 2억 3천만 원이면 이건 과도한 거거든요. 그 경계를 해야 되고 그다음에 특약도 남기는 게 좋아요. 이건 국토부에서 제시를 해 준 건데 아시겠지만 전입신고를 이사 당일에 전입신고를 하더라도 법적 효력은 다음 날 0시부터 발생을 하니까 하루 정도 갭이 생기거든요. 이 하루 동안에는 집주인이 명의 변경을 해서는 안 된다든지 아니면 은행 대출을 받아서는 안 된다든지 이렇게 특약을 남기면 그나마 좀 그런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김방희> 계약서 밑에 별표 그려서 특약 사항을 좀 남겨라. 불안한 대목을 그게 안전장치가 되겠죠. 부동산 중개인이 타박할지 모르는데 피해 입을 보는 당사자들이니까 얼굴 조금 붉히면서라도 특약을 남기셔야 됩니다. 시세 확인과 특약 사항 이런 조언까지 해 주셨습니다. 한국일보의 김동욱 기자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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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방 지도 이광수의 흔적을 찾아다닌 흔적ⓒ 백건우 경복궁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오면 '고궁박물관'이 나오는데, 고궁박물관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넓은 공간과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에서 모여 오전 10시 조금 넘어 출발했다.효자동 삼거리 못미처 청와대 사랑채 가기 직전에 '진명여학교' 자리가 있다. 이 학교를 세운 엄준원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1900년 중추원 의관, 1901년 한성부 판윤, 1903년 경무사 칙임관, 1905년 헌병사령관이었던 자로 1906년 진명여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이 되었다.엄준원의 누이가 고종의 후궁으로 황태자 영친왕 '이은'을 낳은 순헌황귀비로, 엄귀비에게 교지를 받아 진명여학교를 설립했다. 이광수는 이때 진명여학교 학생들을 자주 보면서 일본어로 쓴 짧은 글을 하나 남겼다. 우리 집 이웃에는 진명고등여학교가 있어 토요일 오후에는 여학생들이 새색시 모양으로 머릿수건을 쓰고 바지런히 근처를 왕래하며 청소를 해준다. 더운 여름날 땀이 밴 얼굴을 붉게 후끈거리며 마차를 끄는 말이 싸놓은 똥을 흔적도 남김없이 깨끗이 처리하고 있다. 작년 언저리부터 방공훈련이 종종 실시되면서 어느 집 부인이나 아가씨도 몸빼를 입고 양동이를 들고 기어나오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었다. 여학생들의 근로봉사는 이미 당연하여 희귀한 일이 아니며 가정부인 역시 사다리를 걸치고 지붕에 올라가 이를 악물고 소방작업을 할 정도는 익숙해진 것이다. 올해(아니 작년이다) 여학교의 운동회에서는 양동이로 물을 나르거나 흙을 담은 자루를 어깨에 지고 달리고, 부상자를 업거나 들 것에 눕히거나 하는 경쟁이 프로그램에 새로 더해졌다. 황송하게도 제81회 의회 개원식의 조칙(詔勅)은 "바야흐로 전국(戰局)이 중대하다. 모름지기 억조일심(億兆一心)으로 더욱더 국력을 증강하고 적국의 분에 넘치는 야심을 분쇄해야 한다"고 분부하셨다. 국력 증강을 위해서는 여성의 산업 전선 진출이 더욱더 요청될 것이다. 옥 같은 얼굴, 눈 같은 살갗은 당분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햇빛에 그을은 피부, 밭의 먼지와 공장의 기름으로 더러워진 몸빼와 마디가 불거진 손 一 이것이 금후 일본 여성의 새로운 미(美)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또한 강한 자의 어머니 될 소질도 될 것이다. (香山光郞, <朝日新聞>(南鮮版), 1943.1.9)여성 개업의 1호 의사진명여학교 터 맞은 편으로 이광수의 아내 허영숙이 1938년 개업한 조선 최초의 조산병원인 '허영숙 산원' 건물이 있다. 효자동 175번지에 있는 허영숙 산원은 스무 개가 있는 순 조선식 큰 집으로 개업하면서 장안의 화제였다. 1938년 5월 1일 개업한 허영숙 산원을 <월간 여성>에서 일하던 기자 노천명(시인 노천명)이 방문하고 쓴 기사가 있다. 효자동 가는 전차를 타고 진명고녀 앞에서 내려 들어가노라면 삼분을 채 못 걸어 바로 길가에 유난히 눈에 띄는 아담한 순 조선식 큰 건물 하나가 있다. 살림집으로는 지나치게 크고 그렇다고 무슨 공무를 보는 집으로는 맞지 않게 아늑하고 다정한 맛을 주는 여기가 허영숙씨가 새로 개업한 씨의 산원이다… 이 산원의 특징은 조선식 온돌방에서 생활하고 또 이 온돌 따뜻한 방에서 해산을 해온 조선부인들이 병원엘 갑재기 들어가 침대 우에서 느끼던 종래의 불편을 일소하기 위해서 여기는 순 조선식의 좋은 점을 살려가지고 우리 부인들에게 맞게 설비한 점이라고 한다… ('허영숙산원 탐방기' 여성 1938. 12.)이광수가 살던 집을 주로 둘러보는 과정이지만, 이광수의 아내 허영숙의 흔적을 만나는 건 필연이다. 이광수만큼이나 허영숙도 근대의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허영숙은 이광수와 혼인하기 전인 1920년 5월, 서대문정(당주동)에서 '영혜의원'을 개업한 여성 개업의 1호 의사였다. 이때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재작년에 동경녀자의학뎐문학교를 졸업하야 조선에 처음으로 녀의(女醫)가 된 허영숙 녀사는 이번에 서대문뎡 일뎡목에 녀의원을 내이고 금일부터 개업을 한다는데 병원 일훔은 영혜의원(英惠醫院)이라 하며 이로써 조선녀자가 의원을 개업하기는 처음이라 하겟더라.('허영숙 여사 개업' 동아일보 1920. 5. 1.)1921년 5월, 허영숙은 이광수와 결혼하는데, 이광수는 이미 결혼해 아내 백혜순이 있었으나 백혜순과 이혼하고 허영숙과 결혼한다. 이광수와 허영숙이 처음 만난 건 1918년 도쿄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에서였다. 허영숙은 경성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학교 부속병원에서 실습하고 있었는데, 그때 일본 유학을 하던 이광수가 폐결핵에 걸려 이 병원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결혼 직전 허영숙이 '모처의 부탁으로 무거운 사명을 받아' 상하이로 가서 이광수를 만났고, 이광수는 상하이에서 조선으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신의주에서 체포되는데, '귀순증'을 지니고 있었다는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다. 그래서인지 이광수는 불과 하루 만에 석방된다.이후 한동안 당주동 집에 칩거하며 두문불출하던 이광수는 당주동 집과 동소문 밖에 있는 명륜동 집을 오가며 생활한다. 당시 숭삼동(명륜정 3정목 127번지) 집은 이광수가 폐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길 때 백인제 박사(백병원 설립자)가 이광수를 돌봐주던 집이기도 하다.허영숙은 의사였지만 1923년 무렵부터 동아일보에 글을 싣기 시작해 1927년 3월까지 <동아일보> 기자로도 일했다. 이광수가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는데, 1925년 이광수가 폐결핵으로 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허영숙이 이광수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동아일보 기자가 되었다. 이때 쓴 기사는 허영숙의 전문 분야인 의학상식, 육아, 가정 등에 관한 내용이었고 1927년 퇴직하고 다시 의사로 돌아왔다.슬픈 경계선 '자하문'우리 일행은 창의문 앞에서 잠시 쉬며 김남일 작가의 설명을 들었다. 창의문(彰義門)은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부른다. 창의문이 나오는 소설이나 수필 작품을 보면, 최정희 작가가 쓴 소설 '흉가(1937년)', '정적기(1938년)', 수필 '화초밭(1939년)'이 있고, 엄흥섭의 작품 '산가영춘기(1937년)'도 있다.최정희의 작품을 보자. 남편과 사이가 틀어져서 헤어지고 정동 집을 떠나 자하문 밖("고향은 端川. 지금 사는 곳은 紫霞門과 洗劍亭사이"(<삼천리>, 1937.1)에 나가 살게 된 시절의 이야기로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특히 <정적기>는 일기체에, 자신이 쓴 작품 제목들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예컨대 <흉가>를 써서 집을 팔아먹지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집주인에게 혼나는 이야기가 나오고, 창의문(자하문)은 서울에서 어떤 이유로든 쫓겨나게 된 사람들이 넘어가는 슬픈 경계선을 의미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만하면 고향 손님이 와도 부끄럽잖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 "엄마 왜 우리는 밤낮 이사만 해... 우리 지금 가는 집은 하늘 끝에 있어?" 하고 정동 집에서 떠나던 날 자하문턱을 해가 저물어서 넘을 때 자하문으로 뵈는 하늘을 넘어다보며 울 듯 겁나는 듯한 얼굴로 아이가 내게 묻던 말도 기억에 있기는 하나 그래도 나는 날이 밝으면 집주인에게 돈을 찾아가지고 이사를 하리라는 마음을 먹었다.(<흉가>) 엄흥섭이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수필 '산가영춘기(1937년)에는 다음처럼 기록하고 있다. 창의문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사람은 쓰봉 기럭지가 길어서는 안 된다. 깃도구두니 강가루껍질 구두를 신어서는 안 된다. 실용적인 복수구두니 병정구두에 뒷축 앞코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징을 박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이면 긴 치맛자락을 끌어서는 안 된다. 백설 같은 흰버선을 신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굽 높은 구두를 신어서는 더구나 안 된다. 창의문 고갯길은 돌밭길이요 바위 언덕길이요 모래 흙투성이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고개 너머엔 부암, 홍지, 신영, 구기 등의 여러 동리가 이 산골짝 저 산골짝으로 흩어져 산다. 이 4,5 동리의 동민들은 대부분이 '지게'와 친한 사람들이다. 봄엔 여러 가지 꽃 장수를 하고 여름에서 가을엔 능금 장수 사과 장수 감 장수, 겨울엔 문안에 들어와 똥오줌을 퍼내가고 '시메나와' 장사까지 하는 악착스런 근로척급들이다."(조선일보, 1937년 3월 26일)창의문(자하문)을 지나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약간 오르막 길을 오르면 부암동 백사실 계곡으로 향한다. 백사실 계곡 안에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가 남아 있는데, 건물은 사라지고 주춧돌만 남았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는 연못과 계곡과 함께 이곳이 조선시대에도 꽤 사람이 많이 찾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 건물은 사라지고 주춧돌만 남았다.ⓒ 백건우 백사실 계곡을 내려와 평지에 이르면 계곡이 만나 흐르는 곳에 세검정 정자를 볼 수 있다. 부암동 일대에는 역사와 관련한 흔적이 많다. 무계원(武溪園)은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도심 속 전통문화공간으로 무계원에서 인왕산 안쪽으로 150m쯤 올라가면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가 있다. 세종의 셋째 왕자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의 별장인 무계정사가 있던 터다.
▲ 무계원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무계원ⓒ 백건우 윤치호의 아버지 반계 윤웅렬의 별장도 부암동에 있는데 1905년 유행병을 피해 부암동에 별장을 짓고 살았으며, 윤웅렬 사후에는 셋째 아들 윤치창이 상속받아 안채 등 한옥건물을 추가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부암동에는 대원군의 사랑채인 석파정 별당과 석파정이 있는데, 일본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1909년 조선을 방문해서 남긴 기록에 이곳 석파정에 관한 기록이 있다. 또한 화가 김환기의 미술관도 있는데,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은 본명이 변동림으로, 천재 이상의 아내이기도 했다. 이상의 죽음을 지켜본 변동림은 1944년 김환기와 결혼한다. 김향안은 환기미술관을 부암동에 짓고 미술관 옆에 '수향산방'을 짓고 살았다.부암동 325-2번지는 현진건 작가가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살던 곳으로 생계를 위해 양계를 했다. 이 시기에 주로 역사소설, 신문소설을 집필했다. 현진건
▲ 탐방 지도 이광수의 흔적을 찾아다닌 흔적ⓒ 백건우 경복궁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오면 '고궁박물관'이 나오는데, 고궁박물관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넓은 공간과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에서 모여 오전 10시 조금 넘어 출발했다.효자동 삼거리 못미처 청와대 사랑채 가기 직전에 '진명여학교' 자리가 있다. 이 학교를 세운 엄준원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1900년 중추원 의관, 1901년 한성부 판윤, 1903년 경무사 칙임관, 1905년 헌병사령관이었던 자로 1906년 진명여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이 되었다.엄준원의 누이가 고종의 후궁으로 황태자 영친왕 '이은'을 낳은 순헌황귀비로, 엄귀비에게 교지를 받아 진명여학교를 설립했다. 이광수는 이때 진명여학교 학생들을 자주 보면서 일본어로 쓴 짧은 글을 하나 남겼다. 우리 집 이웃에는 진명고등여학교가 있어 토요일 오후에는 여학생들이 새색시 모양으로 머릿수건을 쓰고 바지런히 근처를 왕래하며 청소를 해준다. 더운 여름날 땀이 밴 얼굴을 붉게 후끈거리며 마차를 끄는 말이 싸놓은 똥을 흔적도 남김없이 깨끗이 처리하고 있다. 작년 언저리부터 방공훈련이 종종 실시되면서 어느 집 부인이나 아가씨도 몸빼를 입고 양동이를 들고 기어나오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었다. 여학생들의 근로봉사는 이미 당연하여 희귀한 일이 아니며 가정부인 역시 사다리를 걸치고 지붕에 올라가 이를 악물고 소방작업을 할 정도는 익숙해진 것이다. 올해(아니 작년이다) 여학교의 운동회에서는 양동이로 물을 나르거나 흙을 담은 자루를 어깨에 지고 달리고, 부상자를 업거나 들 것에 눕히거나 하는 경쟁이 프로그램에 새로 더해졌다. 황송하게도 제81회 의회 개원식의 조칙(詔勅)은 "바야흐로 전국(戰局)이 중대하다. 모름지기 억조일심(億兆一心)으로 더욱더 국력을 증강하고 적국의 분에 넘치는 야심을 분쇄해야 한다"고 분부하셨다. 국력 증강을 위해서는 여성의 산업 전선 진출이 더욱더 요청될 것이다. 옥 같은 얼굴, 눈 같은 살갗은 당분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햇빛에 그을은 피부, 밭의 먼지와 공장의 기름으로 더러워진 몸빼와 마디가 불거진 손 一 이것이 금후 일본 여성의 새로운 미(美)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또한 강한 자의 어머니 될 소질도 될 것이다. (香山光郞, <朝日新聞>(南鮮版), 1943.1.9)여성 개업의 1호 의사진명여학교 터 맞은 편으로 이광수의 아내 허영숙이 1938년 개업한 조선 최초의 조산병원인 '허영숙 산원' 건물이 있다. 효자동 175번지에 있는 허영숙 산원은 스무 개가 있는 순 조선식 큰 집으로 개업하면서 장안의 화제였다. 1938년 5월 1일 개업한 허영숙 산원을 <월간 여성>에서 일하던 기자 노천명(시인 노천명)이 방문하고 쓴 기사가 있다. 효자동 가는 전차를 타고 진명고녀 앞에서 내려 들어가노라면 삼분을 채 못 걸어 바로 길가에 유난히 눈에 띄는 아담한 순 조선식 큰 건물 하나가 있다. 살림집으로는 지나치게 크고 그렇다고 무슨 공무를 보는 집으로는 맞지 않게 아늑하고 다정한 맛을 주는 여기가 허영숙씨가 새로 개업한 씨의 산원이다… 이 산원의 특징은 조선식 온돌방에서 생활하고 또 이 온돌 따뜻한 방에서 해산을 해온 조선부인들이 병원엘 갑재기 들어가 침대 우에서 느끼던 종래의 불편을 일소하기 위해서 여기는 순 조선식의 좋은 점을 살려가지고 우리 부인들에게 맞게 설비한 점이라고 한다… ('허영숙산원 탐방기' 여성 1938. 12.)이광수가 살던 집을 주로 둘러보는 과정이지만, 이광수의 아내 허영숙의 흔적을 만나는 건 필연이다. 이광수만큼이나 허영숙도 근대의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허영숙은 이광수와 혼인하기 전인 1920년 5월, 서대문정(당주동)에서 '영혜의원'을 개업한 여성 개업의 1호 의사였다. 이때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재작년에 동경녀자의학뎐문학교를 졸업하야 조선에 처음으로 녀의(女醫)가 된 허영숙 녀사는 이번에 서대문뎡 일뎡목에 녀의원을 내이고 금일부터 개업을 한다는데 병원 일훔은 영혜의원(英惠醫院)이라 하며 이로써 조선녀자가 의원을 개업하기는 처음이라 하겟더라.('허영숙 여사 개업' 동아일보 1920. 5. 1.)1921년 5월, 허영숙은 이광수와 결혼하는데, 이광수는 이미 결혼해 아내 백혜순이 있었으나 백혜순과 이혼하고 허영숙과 결혼한다. 이광수와 허영숙이 처음 만난 건 1918년 도쿄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에서였다. 허영숙은 경성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학교 부속병원에서 실습하고 있었는데, 그때 일본 유학을 하던 이광수가 폐결핵에 걸려 이 병원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결혼 직전 허영숙이 '모처의 부탁으로 무거운 사명을 받아' 상하이로 가서 이광수를 만났고, 이광수는 상하이에서 조선으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신의주에서 체포되는데, '귀순증'을 지니고 있었다는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다. 그래서인지 이광수는 불과 하루 만에 석방된다.이후 한동안 당주동 집에 칩거하며 두문불출하던 이광수는 당주동 집과 동소문 밖에 있는 명륜동 집을 오가며 생활한다. 당시 숭삼동(명륜정 3정목 127번지) 집은 이광수가 폐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길 때 백인제 박사(백병원 설립자)가 이광수를 돌봐주던 집이기도 하다.허영숙은 의사였지만 1923년 무렵부터 동아일보에 글을 싣기 시작해 1927년 3월까지 <동아일보> 기자로도 일했다. 이광수가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는데, 1925년 이광수가 폐결핵으로 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허영숙이 이광수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동아일보 기자가 되었다. 이때 쓴 기사는 허영숙의 전문 분야인 의학상식, 육아, 가정 등에 관한 내용이었고 1927년 퇴직하고 다시 의사로 돌아왔다.슬픈 경계선 '자하문'우리 일행은 창의문 앞에서 잠시 쉬며 김남일 작가의 설명을 들었다. 창의문(彰義門)은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부른다. 창의문이 나오는 소설이나 수필 작품을 보면, 최정희 작가가 쓴 소설 '흉가(1937년)', '정적기(1938년)', 수필 '화초밭(1939년)'이 있고, 엄흥섭의 작품 '산가영춘기(1937년)'도 있다.최정희의 작품을 보자. 남편과 사이가 틀어져서 헤어지고 정동 집을 떠나 자하문 밖("고향은 端川. 지금 사는 곳은 紫霞門과 洗劍亭사이"(<삼천리>, 1937.1)에 나가 살게 된 시절의 이야기로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특히 <정적기>는 일기체에, 자신이 쓴 작품 제목들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예컨대 <흉가>를 써서 집을 팔아먹지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집주인에게 혼나는 이야기가 나오고, 창의문(자하문)은 서울에서 어떤 이유로든 쫓겨나게 된 사람들이 넘어가는 슬픈 경계선을 의미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만하면 고향 손님이 와도 부끄럽잖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 "엄마 왜 우리는 밤낮 이사만 해... 우리 지금 가는 집은 하늘 끝에 있어?" 하고 정동 집에서 떠나던 날 자하문턱을 해가 저물어서 넘을 때 자하문으로 뵈는 하늘을 넘어다보며 울 듯 겁나는 듯한 얼굴로 아이가 내게 묻던 말도 기억에 있기는 하나 그래도 나는 날이 밝으면 집주인에게 돈을 찾아가지고 이사를 하리라는 마음을 먹었다.(<흉가>) 엄흥섭이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수필 '산가영춘기(1937년)에는 다음처럼 기록하고 있다. 창의문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사람은 쓰봉 기럭지가 길어서는 안 된다. 깃도구두니 강가루껍질 구두를 신어서는 안 된다. 실용적인 복수구두니 병정구두에 뒷축 앞코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징을 박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이면 긴 치맛자락을 끌어서는 안 된다. 백설 같은 흰버선을 신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굽 높은 구두를 신어서는 더구나 안 된다. 창의문 고갯길은 돌밭길이요 바위 언덕길이요 모래 흙투성이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고개 너머엔 부암, 홍지, 신영, 구기 등의 여러 동리가 이 산골짝 저 산골짝으로 흩어져 산다. 이 4,5 동리의 동민들은 대부분이 '지게'와 친한 사람들이다. 봄엔 여러 가지 꽃 장수를 하고 여름에서 가을엔 능금 장수 사과 장수 감 장수, 겨울엔 문안에 들어와 똥오줌을 퍼내가고 '시메나와' 장사까지 하는 악착스런 근로척급들이다."(조선일보, 1937년 3월 26일)창의문(자하문)을 지나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약간 오르막 길을 오르면 부암동 백사실 계곡으로 향한다. 백사실 계곡 안에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가 남아 있는데, 건물은 사라지고 주춧돌만 남았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는 연못과 계곡과 함께 이곳이 조선시대에도 꽤 사람이 많이 찾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 건물은 사라지고 주춧돌만 남았다.ⓒ 백건우 백사실 계곡을 내려와 평지에 이르면 계곡이 만나 흐르는 곳에 세검정 정자를 볼 수 있다. 부암동 일대에는 역사와 관련한 흔적이 많다. 무계원(武溪園)은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도심 속 전통문화공간으로 무계원에서 인왕산 안쪽으로 150m쯤 올라가면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가 있다. 세종의 셋째 왕자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의 별장인 무계정사가 있던 터다.
▲ 무계원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무계원ⓒ 백건우 윤치호의 아버지 반계 윤웅렬의 별장도 부암동에 있는데 1905년 유행병을 피해 부암동에 별장을 짓고 살았으며, 윤웅렬 사후에는 셋째 아들 윤치창이 상속받아 안채 등 한옥건물을 추가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부암동에는 대원군의 사랑채인 석파정 별당과 석파정이 있는데, 일본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1909년 조선을 방문해서 남긴 기록에 이곳 석파정에 관한 기록이 있다. 또한 화가 김환기의 미술관도 있는데,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은 본명이 변동림으로, 천재 이상의 아내이기도 했다. 이상의 죽음을 지켜본 변동림은 1944년 김환기와 결혼한다. 김향안은 환기미술관을 부암동에 짓고 미술관 옆에 '수향산방'을 짓고 살았다.부암동 325-2번지는 현진건 작가가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살던 곳으로 생계를 위해 양계를 했다. 이 시기에 주로 역사소설, 신문소설을 집필했다. 현진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