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연극 ‘트랩’. /세종문화회관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죄를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니까!”
잘나가는 섬유 회사 영업 책임자 ‘트랍스’(박건형)는 농담하듯 가볍게 “피고를 연기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은퇴한 검사 ‘초른’(강신구)은 뜻밖에 진지하게 답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연극 '트랩'의 '트랍스' 역 박건형 배우(왼쪽)와 '검사 초른' 역 강신구 배우(오른쪽). /세종문화회관


골드몽자동차 고장으로 우연히 묵게 된 시골 마을, 트랍스는 판사·검사·변호사·사형 집행인으로 정년 퇴임한 노인들이 값비싼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벌이는 모의 법정 게임에 초대받은 참이다. 보통 사람 누구나 그렇듯 큰 죄 짓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노인들의 하루 저녁 실없는 장난인 줄 알았던 게임에 말려들수록 트랍스의 무죄 확신은 뜻밖의 부조리한 바다신2게임 결론을 향해 요동친다. 트랍스는 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블랙 코미디 같은 법정 공방을 지켜보는 배심원이 된다.



서울시극단 '트랩'에 검사 '초른'으로 출연하는 강신구 배우(왼쪽)와 은퇴 법조인들의 법정 놀이에 걸려드는 '트랍스 오션파라다이스게임 ' 역의 박건형 배우. /세종문화회관


서울 세종문화회관 S 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각색·연출 하수민)은 스위스 작가 프레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 ‘사고(Die Panne)’가 원작. 재연 무대에 주인공 트랍스 역으로 합류한 박건형 배우와 초연부터 검사 역을 맡았던 시극단 단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원 강신구 배우를 최근 만났다.
강 배우는 “초연 때는 ‘검사’ 역할이 어딘가 고장 난 사법 체계를 대표해 없는 죄를 만들어내는 심문관 같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스스로 진실을 폭로하게 만드는 유혹자에 가깝더라”고 했다. “검사 초른의 목소리는 마치 트랍스의 내면의 무의식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요. 다정한 친구처럼, 뭐든 이해해 줄 것처럼 사이다쿨 의심과 불안을 덜어주며 트랍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연극 ‘트랩’에서, 큰 죄 짓지 않고 살아왔다 믿었던 남자 ‘트랍스’(박건형·왼쪽 사진)는 우연히 은퇴 법조인 노인들의 모의 법정 게임에 휘말린다. 은퇴 검사 ‘초른’(오른쪽 사진)은 끈질기게 트랍스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어 가라앉아 있던 죄의식을 흔들어 깨운다. /세종문화회관


박건형 배우는 “교묘하게 의심받던 트랍스가 노인들 꼬드김에 넘어가 자기 죄에 솔직해질 땐 원작 제목처럼 ‘고장’이 나는 것 같더라”고 했다. “파도에 휩쓸리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점점 더 먼 바다로 밀려가는 조각배 같은 느낌일까요. 트랍스의 마지막 선택은 어쩌면 자신을 실제보다 훨씬 고상하고 대단한 인간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죄인의 자리로 추락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높이는 일이 되다니, 역설적이죠.” 그는 “트랍스가 인생 처음으로 겪는 그 황망함이 매번 공연마다 관객의 가슴으로 전달되도록 애쓰고 있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원작의 연극 '트랩'에 출연 중인 강신구(왼쪽) 배우와 박건형 배우. /세종문화회관


이 연극은 결국 도덕과 법, ‘형식적 무죄’와 ‘실질적 책임’ 사이의 긴장을 통해 죄의 본질을 묻는다. 강 배우는 “분명 시작할 땐 흥미로운 재판 놀이였는데, 그 유희가 책임, 정의, 양심 같은 데 대한 여러 생각으로 번져가는 게 이 연극의 매력”이라고 했다. 박 배우는 “무대를 둘러싸고 객석이 3면에 위치한 구조라 관객들끼리도 서로 눈이 마주친다. 트랍스가 내리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나라면 어떨까 가슴 졸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공연은 30일까지, 4만~5만원. 기자 admin@reelnar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