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단독 공연을 개최하는 심수봉. 그는 인터뷰에 동석한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그랬슈" 맞장구를 치며 재잘거리는 대화를 나눴다. 스스로를 “소녀 감성에 워낙 예민한 여성”이라고 말한 그는 “그런 면들이 실제 경험으로 가사를 써 온 제 노래들에서도 부각되는 것 같다”고 했다./박성원 기자


“아유, 가사 실수 때문에.”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만난 가수 심수봉(70)은 음악 방송 녹화 직후 속이 상해 있었다. 연출팀의 간주 길이 실수로 노래를 한 소절 놓쳤다는 것. 정작 기자가 지켜본 중계 화면에선 바다이야기룰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그럼 다행”이라며 금세 함박웃음을 지었다. 데뷔 47년 차임에도 소녀처럼 열정과 웃음이 넘쳤다.
심수봉은 오는 25일 오후 8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단독 공연 ‘꽃길’을 연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데뷔 45주년 기념 투어의 연장선. 이후 춘천(29일)·영천(12월 9일), 충주(12월 2 골드몽 7일)·전주(12월 28일) 등에서 연말 무대를 이어간다. 그는 “지난해부터 세어 보니 35회 전국 공연을 열었더라”며 “세월이 흘러도 노래하고 곡 만드는 건 여전히 설렌다”고 했다.
데뷔 47년 차…“노래하고 곡 만드는 건 지금도 설레”
‘명지대 3학년 심민경’으로 출연해 MBC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온라인릴게임 여대생이 긴장한 기색도 없이 피아노를 치며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을 열창하는 당시 영상은 지금도 가요계 전설로 회자된다. 정작 자신은 그때 “결선에서 상도 못 받아 창피했고, 가수로서 좌절한 기억이라 머릿속에서 오래 지우고 살았다”고 했다. 10대 시절엔 미8군 무대에서 드럼을 치기도 했다.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모습에 ‘한국의 카렌 카펜터’로 불리기도 릴게임뜻 했지만, “‘여자가 무거운 악기 나르면 고생이니 바꿔보라’는 밴드 마스터 말에 피아노로 바꿨다”고 했다.



가수 심수봉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단독공연 '꽃길' 관련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박성원 기자

릴게임몰메가
요즘은 “데뷔 초기 목소리로 돌아가 보려는데 쉽지 않다. 지금은 그때보다 목소리 톤이 반음 더 높다”고 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제가 데뷔 초부터 일부러 비음(콧소리)을 낸다 여기는데, 오해다. 의사 말이 제 얼굴뼈에 공명을 주는 울림 공간이 크다더라”고 했다. “저도 예전에는 그 콧소리가 이상하다 느껴져서 막 소리를 질러 가며 조금씩 바꿔왔어요. 최근 우연히 대학가요제 때 영상을 다시 봤는데 굉장히 특색 있는 음색이었더군요. 그걸 더 살릴걸. 뭐든 시간이 지나야 성숙하고 회개하는 모양이에요(웃음).”
심수봉의 자작곡은 유독 사랑을 갈구하는 가사가 많고, 한국적인 ‘한’이 서렸다. 심수봉은 “제가 만든 노래의 99%가 마이너 단조”라며 “우리 가요의 핵심도 서민들의 삶 속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대변하는 것”이라 했다. “저 자신도 아버지를 일찍 잃고 홀어머니와 자라면서 늘 가슴에 외로움과 슬픔을 품고 있었고, 이를 음악으로 달랬지요.”
남편이자 전직 라디오 PD인 김호경(67)씨에게 바친 고백송으로 유명한 ‘비나리’의 원제도 본래는 ‘고독한 사랑’.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김씨는 “처음 노래를 듣고 여덟 번이나 앙코르를 외쳤다”고 했다. 심수봉은 “‘하늘이여, 이 사람 영원히 사랑하게 해줘요’란 가사가 제 방식의 연정 기도였던 셈”이라며 웃었다.
‘사랑밖에 난 몰라’, ‘미워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써낸 심수봉은 “누구에게도 적대적이지 않고, 포용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노래를 쓰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2023년 발매한 ‘부부행진곡’도 1·2절 코드 진행은 같지만, 장조와 분위기는 파격적으로 달라진다. 심수봉은 “남남이 만나 하나가 되는 삶의 여정이 녹록지 않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라 했다. 그는 “생활 속 실제 사연과 개인적인 감정 체험을 곡에 자주 담는다”고도 했다. “상상력이 좀 부족해서인지 없는 사실을 노래에 쓴 적은 별로 없다”면서 “악상은 하늘로부터 갑자기 뚝 떨어진다”고 했다. 그만큼 “작곡보단 작사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다”고 했다. “노래는 5분 만에도 쓰지만, 가사는 형용사 하나까지도 수백 번 고쳐요. 길면 석 달 걸립니다.”
남다른 뿌리도 그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증조부로부터 4대째 예술혼을 이어온 집안. 피리 명인인 증조부 심팔록, 판소리 중고제 대가인 조부 심정순, 큰아버지 심상덕은 가야금 명인인 황병기의 스승이었고, 아버지 심재덕 역시 민요 수집가였다. 심수봉은 “아버지가 국악 DNA를 물려주려 절 낳았다고 생각한다. 가문의 영향이 없었다면 제 가요 인생도 없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쉽게 꺼내기 힘든 그날의 기억
10·26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기억이다. 심수봉은 “표면상 금지곡은 없었지만 10·26 직후 5공 시절엔 아예 활동이 막혀 생계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1984년 히트곡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전 국민의 열광과 함께 절 양지로 끌어내 준 고마운 곡”이라 했다. 그는 “여러 괴롭힘을 참 많이 당한 세월이었지만 이젠 정말 괜찮아졌다”며 “앞으로는 백만 송이 장미처럼 사랑을 주는 이야기만 하고 싶다”고도 했다. “누가 막 미워지는 짓을 하고 속상해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가라는 뜻의 그 노래 가사가 제 인생의 답이 돼 버렸지요.”
심수봉은 최근 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재심 과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것에 대해선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당시 심정은 이미 제 노래 ‘무궁화’의 가사에 다 농축해 불렀다”는 그의 표정은 다소 괴로워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그의 남편 김호경씨가 “이젠 그런 이야기가 사실 그만 언급됐으면 한다. 우리에겐 이제야 겨우 빠져나온 트라우마 같은 기억”이라고 덧붙였다.
심수봉은 1994년 첫 회고록을 낼 당시 “그때 그 여인 심수봉이 아닌, 완전한 자연인이자 가수 심수봉으로 사랑받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에겐 이번 ‘꽃길’ 투어가 그런 공연이다. 그는 “매 공연마다 제 슬픔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위로를 받았다. 무언가 제 안에서 서서히 회복돼 가는 걸 느꼈다”고 했다. 남은 여생의 목표도 분명해졌다. “백만 송이 장미 같은 노래를 번안이 아닌 자작곡으로 쓰고 싶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곡을 쓰고, 무대에 설 겁니다. 우리 가요지만 세계 어디 내놔도 명곡이라 할 곡과 함께요.” 기자 admin@slotmeg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