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맥스연애의 위기를 극복하는 강력한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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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맥스연애의 위기를 극복하는 강력한 해결책
연인과의 데이트는 언제나 특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냥 밥 먹고 영화 보는 것뿐이 되어버리곤 하죠. 왜 그럴까요? 사랑의 감정이 점차 식어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남성의 에너지와 활력 저하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남성의 자신감과 스태미너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면서 연애 초기의 설렘과 열정은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비맥스VIMAX입니다
1. 연애 초반의 설렘,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바라보는 그 뜨거운 시선과 설렘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는 너무 오래된 커플이라 그런지 이제는 그냥 친구 같아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단순히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정력과 활력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연애 초기, 혹은 결혼 초반의 뜨거운 감정이 이어지려면 남성의 활력이 중요합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남성은 자신감을 가지고 연인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게 되죠.
하지만 나이가 들고, 생활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체력과 스태미너가 저하되면 감정은 자연스럽게 식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요? 바로 비맥스로 남성의 활력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2. 사랑을 이어가는 진짜 비결, 비맥스로 남성의 활력 되찾기
비맥스는 100 천연 성분으로 제조된 남성강장제입니다. 이 제품은 비아그라나 시알리스와 같은 화학 성분이 아닌, 자연에서 얻은 약초로 만들어져 내성이 없고, 안전하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전해 내려온 약초들과 처방을 기반으로 개발된 비맥스는 체력 회복, 성기능 강화, 스태미너 증진 등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비맥스가 어떻게 연인과의 관계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3. 비맥스의 놀라운 효과연애의 위기를 넘어서자
남성의 자신감 회복
남성의 자신감이 회복되면, 연인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일상 속에서의 대화와 행동에서 자연스러운 애정 표현이 이어집니다. 비맥스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촉진시켜,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의 적극성을 높여줍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연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에너지 회복과 피로 감소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의 데이트는 언제나 밋밋하고 재미없습니다. 비맥스는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어 데이트 중에도 활기찬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연애는 단순히 앉아서 대화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함께 나가 놀고, 활동적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비맥스가 그 부분을 도와줍니다.
성기능 개선 및 지속적인 정력 유지
남성의 성기능 저하는 연애의 큰 위기입니다. 관계에서의 성적인 만족도가 떨어지면, 정신적, 감정적 거리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비맥스는 성기능 개선과 정력 증진을 도와주어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연스럽게 열정을 유지할 수 있게 돕습니다.
스트레스 완화 및 혈액 순환 개선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입니다. 스트레스는 성적 능력과 에너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비맥스는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결과적으로 스트레스 없는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어,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도 행복한 감정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4. 실제 사용자의 변화 이야기비맥스를 통한 사랑 회복
30대 직장인 김영진 씨
연애 초반처럼 연인에게 관심을 계속 주고 싶었는데, 피곤함과 스트레스로 점점 무기력해지더군요. 비맥스를 섭취하고 나서 체력이 회복되고, 연인과의 데이트에서 다시 활기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40대 사업가 이재호 씨
결혼 15년 차인데, 아내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서 고민이었어요. 비맥스를 복용한 뒤, 스태미너가 크게 향상되었고, 아내와의 연애가 다시 뜨겁게 돌아왔습니다
50대 공무원 박상일 씨
나이가 들면서 성기능 저하가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비맥스를 복용하고 나니 다시 예전처럼 자신감과 활력 을 되찾았습니다. 아내와의 관계도 다시 좋아졌어요.
5. 연애의 위기를 넘는 방법비맥스가 정답
연애와 결혼에서 감정의 위기를 맞이했다면, 비맥스를 통해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보세요. 남성의 체력과 스태미너가 회복되면, 연인과의 관계에서 더 깊은 애정과 소통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연애 초반의 설렘, 결혼 초반의 열정을 다시 찾고 싶다면, 비맥스를 복용하세요
자신감, 활력, 성기능까지 비맥스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보세요.
연애의 위기, 비맥스로 극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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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119sh.info
1986년 1월 28일 오전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이륙 중인 챌린저호. 이륙 73초 만에 연료가 새며 공중에서 폭발했다. NASA 제공
인류의 발자국이 달에 닿은 지 57년, 미지의 영역이던 우주는 이제 ‘관광’의 무대로 올라섰다. 하지만 우주 개발 이면에는 잊어서는 안 될 피의 대가도 존재한다. 40년 전인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우주 개발의 성과 뒤편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과거 비극 속에서 제대로 배웠는 릴게임사이트 지를 짚어본다.
챌린저호에 탑승한 7인의 승무원.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임무 전문가 엘리슨 오니즈카, 조종사 마이클 스미스, 사령관 프랜시스 딕 스코비, 임무 전문가 로널드 맥네어, 임무 전문가 주디스 레스닉, 탑재체 전문가 그레고리 자비스, 민간인 초등교사 크리스타 황금성사이트 맥컬리프. NASA 제공
● 고무링 하나가 불러온 참극
1986년 1월 28일 오전 11시 38분,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화염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발사 당일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이 중단될 정도로 챌린저호는 야마토게임연타 화제였다. 미국 최초의 민간인 우주비행사로 초등학교 교사 크리스타 맥컬리프가 탑승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로켓이 상승하자 대중은 일제히 환호했다.
기대에 찬 환호는 2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비명으로 바뀌었다. 발사 후 73초, 오른쪽 고체 로켓 부스터에서 작은 불꽃이 분출됐다. 곧이어 거대한 폭발음을 남기며 챌린저호는 산산조각 났다. 바다이야기 짙은 연기가 Y자 모양으로 갈라지며 하늘을 가득 채웠다.
로켓 파편은 대서양 곳곳에 가라앉았다. 이 모든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시청자들은 충격에 그 자리에서 숨을 죽였다.
우주 개발을 소련과의 냉전 경쟁에서 핵심 과제로 추진하던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날 예정된 연설을 취소하고 전 국민 위로 담화를 오션릴게임 발표했다. 희망을 품고 챌린저호에 탑승한 7명의 승무원은 그렇게 지금까지도 지구로 귀환하지 못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곧장 원인 분석에 나섰다. 같은 해 7월, 사고 원인으로 로켓 연료탱크의 이음매 부분에 있는 O자 모양 고무링(O-링)을 지목했다. 고무로 만들어진 O-링은 로켓 연료탱크 이음매를 메워 연료 누출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고무는 저온에서 탄성이 약해진다.
발사 당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O-링이 얼었고 탄성이 약해진 O-링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연료탱크에서 뜨거운 가스가 새어 나와 폭발로 이어졌다.
챌린저호 참사는 기술 혁명으로 들뜬 20세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인류의 진보를 약속할 것만 같던 과학이 안긴 대표적 ‘기술재난’으로 거론된다. 인류 과학기술의 정수이자 가장 명민한 집단으로 칭송받는 NASA에서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까.
과학동아가 만난 공학자와 철학자, 사회학자들은 기술의 성숙만으로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챌린저호 발사 전날인 1986년 1월 27일 저녁부터 미국 플로리다주의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해 발사 직전 발사대에 고드름이 맺힌 모습. 추위에 O-링이 얼며 고무의 탄성이 줄어들었고 연료 누출을 막을 수 없었다. NASA 제공
● 기술재난 부른 ‘일탈의 정상화’
12월 5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챌린저호 참사의 근원으로 ‘일탈의 정상화’를 꼽았다.
“몇 번의 안전 확인을 거듭하더라도 명백한 실패 신호가 없으면 굳이 더 점검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거대한 조직 내에서 점점 일탈의 정상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챌린저호도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허술함이 누적돼 왔던 거죠.” 그는 사회재난을 조직 문화의 관점에서 30여 년간 연구해 온 사회학자다.
일탈의 정상화는 1996년 챌린저호 참사를 분석한 미국의 사회학자 다이앤 본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여겼던 일탈이 계속 반복되면서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밀려난다는 이론이다.
이 교수는 챌린저호 참사가 “개인의 악의나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일상적 일탈이 축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참사가 발생한 날은 챌린저호의 첫 비행이 아니었다. 챌린저호는 마지막 비행 이전 3년간 아홉 차례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NASA는 다른 우주왕복선까지 포함해 24회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O-링 손상은 총 7번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O-링이 안전을 위협하는 요주의 부품임을 인지했지만 시험 비행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자 점점 ‘납득할 만한’ 위험으로 여기게 됐다.
추후 진행된 사고조사 보고서에서는 챌린저호 발사를 두고 내부 갈등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발사 전날 밤, NASA에 로켓 부품을 조달하던 기업 ‘모턴 사이어콜’의 엔지니어 로저 보졸리는 필사적으로 발사 중단을 요청했다.
발사 예정일 온도가 뚝 떨어져 “추운 날씨에 O-링이 얼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NASA 운영진은 다음 날 챌린저호 발사를 강행했다.
이 교수는 챌린저호가 대표적인 일탈의 정상화 사례라고 지적한다.
“엔지니어들은 매일 업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데이터를 상부에 보고할 것인가 이 정도 오차는 무시할 것인가 등이죠. 이런 선택 과정에서 더 이상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작은 일탈들이 쌓여 조직 문화를 형성합니다.”
이 교수는 “챌린저호 사고는 강력한 냉전을 배경으로 한 체제 경쟁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며 일탈을 묵인하게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사회주의 진영보다 우월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력이 강하게 내려오면서 실무자의 안전을 타협하는 문화가 고착됐어요. 우주 비행에 실패할 수 없었던 미국은 발사 시점을 앞당겼고 미국 의회는 NASA에 비용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죠. 경제적 압박, 정치적 일정, 조직 내 위계 구조가 모두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높이는 쪽으로 작동하며 폭발은 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겁니다.”
● 배우지 못한 교훈, 되풀이된 참사
NASA는 사고 원인 발표와 동시에 해결책 공모에 나섰다. 개선책 중 하나를 제시한 인물은 한국인이었다. 미국 우주선 부품 제조업체 테이코엔지니어링의 정재훈 CEO(당시 부사장)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발사 당일 TV로 흰 연기를 보고도 처음엔 폭발한 줄 몰랐죠. 해결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뒤 머리를 싸맨 어느 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열 조절 장치였어요.”
정 CEO는 특수 O-링이 들어간 열 조절 장치 아이디어를 정리해 NASA에 보냈다. 40개 공모 아이디어 중에서 최종 2안으로 선정됐다. 정 부사장의 기술을 채택한 NASA는 1988년 9월 개선된 O-링을 디스커버리호에 장착해 발사했다.
NASA는 이후 모든 우주선에 새로운 열 조절 장치를 의무 장착했다. NASA의 의사결정 과정이 안전성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조직 개편에도 나섰다. 하지만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17년 후 NASA에는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다. 2003년 2월 1일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대기권 진입 중 폭발했다. 발사 당시 연료탱크 파편이 날개에 부딪혀 단열재에 균열이 생겼다. 임무를 마치고 대기권 재진입 도중 균열 부위에 불이 붙었다. 미국은 또다시 7명의 우주비행사를 잃었다.
정 CEO는 “여러 부서에 연락해 우여곡절 끝에 NASA 총책임자 론 디트모어를 만났다”며 “해결책이 거의 완성했다며 냉담한 반응이었지만 거듭 찾아가 설계도를 입수했다”고 회상했다.
정 CEO에 따르면 폭발 원인은 영하 183℃의 액체 산소 연료를 주입하는 파이프 배관 부분이었다.
“0.2in(인치) 틈새로 습기 찬 공기가 접촉하는 순간 얼음이 생기면서 연료가 가열되지 않았던 겁니다. 공기 접촉을 차단하는 0.007인치 두께의 실리콘 고무막을 최초로 개발했죠. 2003년 12월 12일 NASA에 완성품을 보냈어요.”
2005년 7월 26일 결빙 위험을 줄이는 기술적 보완을 거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다만 정CEO는 “기술적 결함을 막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며 “기술을 넘어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지점이 조직 내부에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컬럼비아호 추락 당시 모습. 컬럼비아호는 이륙 직후 외부 연료탱크에서 발생한 결함으로 발포단열재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조각은 우주왕복선의 왼쪽 날개를 손상시켰고, 이후 대기권 재돌입 과정에서 손상된 날개의 균열 부분이 대기와의 마찰로 과열돼 공중에서 폭발했다. NASA 제공
● ‘정상사고’의 함정, 극복하려면
컬럼비아호 사고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NASA는 챌린저호 사고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개선을 약속했는데 참사는 왜 재발했을까.
12월 8일 화상으로 만난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 개념으로 재발 이유를 설명했다. 물리학과 과학철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정상사고는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미국 사회학자 찰스 페로가 제시한 이론이다. 원자력 발전소, 로켓, 화학 공장처럼 고도로 복잡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철저히 관리해도 사소한 실수나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으로 사고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이 교수는 “거대 기술 시스템을 완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불확실성이 있단 걸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NASA는 우주왕복선의 내구성을 낙관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했단 걸 사고를 통해서야 알게 된 거죠. NASA는 수십 번 왕복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만들었으니 시스템을 잘 안다는 착각에 종종 빠집니다. 그러나 만든 사람조차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모르는 인공지능(AI)처럼 복잡한 시스템은 그 속을 모르는 게 일반적이에요. 두 차례 비극은 기술력을 확신하면서 발생한 거죠.”
챌린저호 발사 73초 뒤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고 하늘은 나선형의 짙은 연기로 가득 찼다. 이 장면은 당시 TV를 통해 생중계되며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NASA 제공
챌린저호는 ‘Criticality 1’ 등급 부품이 740개에 달했다. Criticality 1 등급은 고장 날 경우 승무원과 비행체를 잃을 수 있는 부품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완벽한 안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문제는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기술이든 규모가 커지면 너무나 복잡해지기에 정상사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위험하니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입장 또한 막대한 기회비용을 초래하죠. 기술을 사용할 때 엔지니어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외부 집단인 사회학자, 철학자, 윤리학자 등과 함께 논의하며 사회적 합의점을 치밀하게 찾아가야 합니다.”
정상사고를 극복하는 문화는 현실에서 가능할까. 이재열 교수는 해법으로 ‘상생형 문화’를 내놨다. 그는 미국 화학회사 듀폰의 안전 곡선을 예로 들어 조직 문화의 네 단계를 설명했다.
“1단계는 사고가 나면 ‘어쩔 수 없었다’는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2단계는 안전에 대해 ‘시키니까 한다’는 수동적 태도예요. 3단계는 ‘나에겐 문제가 없다’는 협소한 생각입니다. 4단계는 내 문제를 넘어 주변 문제도 함께 파악해서 알려주는 단계죠. 4단계까지 도달하려면 심리적 안정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위험을 보면서 소통하는 문화가 가장 바람직한 안전 문화입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을 꼽았다.
“거대 기술 시스템 앞에서 인간은 무지합니다. NASA는 컬럼비아호 참사 전까지만 해도 우주왕복선이 수십 번은 왕복 운행할 수 있다고 단정했어요. 불행을 최소화하려면 과학기술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노력하되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추모공원의 챌린저호 추모 비석(왼쪽)과 컬럼비아호 추모 비석(오른쪽). NASA는 전시관과 추모공원을 통해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다. NASA 제공
● 민간 우주 시대, 잊지 말아야 할 40년
21세기 들어 우주 개발의 주도권은 정부에서 민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로켓 재사용 기술을 처음 성공시킨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NASA보다 빠르게 달과 화성 탐사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2025년 11월 한국도 민간 우주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도로 누리호 4차 발사에 성공했다. 2032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낙관이 만연한 때일수록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점을 미국의 두 차례 참사를 통해 배웠다.
이재열 교수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조직 문화, 시스템적 특징이 결합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우주 개발이 정치적 상징성으로 활용될수록 내부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챌린저호 참사 40년, 기술은 발전했다. O-링은 개선됐고 결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개발됐다. 로켓은 더 강력해졌고 우주정거장이 건설됐다. 민간 우주기업이 등장했고 한국도 우주 강국을 꿈꾼다. 한국은 경제력과 과학기술력 모두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받는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사고와 참사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불과 1년 전 181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국내 공항에 착륙하던 둔덕을 들이받고 전소했다.
NASA는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사고 이후 ‘영원히 기억하기’ 전시관을 만들었다. 케네디우주센터에는 챌린저호 동체 일부가 전시돼 있다. 매년 추모의 날을 지정해 희생자를 기린다.
밥 카바나 NASA 안전센터장은 2023년 추모식에서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발사 결정을 내린 사람들 중 누구도 승무원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희생자들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은 결국 잊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는 먼지처럼 점차 시야에서 사라진다. 불과 1년도 안 된 재난조차 이미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묻히곤 한다. 망각에 저항하는 일부의 관심과 노력만이 재난의 기억을 되살린다.
인류는 정녕 미래로 나아갈 준비가 됐을까. 우주 개척을 꿈꾸는 우리에게 40년 전 73초 만에 사라진 우주왕복선은 지금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1월호, 챌린저호 참사 40주기…40년 전 참사가 남긴 질문
[박동현 기자 parkdd@donga.com]
인류의 발자국이 달에 닿은 지 57년, 미지의 영역이던 우주는 이제 ‘관광’의 무대로 올라섰다. 하지만 우주 개발 이면에는 잊어서는 안 될 피의 대가도 존재한다. 40년 전인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우주 개발의 성과 뒤편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과거 비극 속에서 제대로 배웠는 릴게임사이트 지를 짚어본다.
챌린저호에 탑승한 7인의 승무원.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임무 전문가 엘리슨 오니즈카, 조종사 마이클 스미스, 사령관 프랜시스 딕 스코비, 임무 전문가 로널드 맥네어, 임무 전문가 주디스 레스닉, 탑재체 전문가 그레고리 자비스, 민간인 초등교사 크리스타 황금성사이트 맥컬리프. NASA 제공
● 고무링 하나가 불러온 참극
1986년 1월 28일 오전 11시 38분,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화염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발사 당일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이 중단될 정도로 챌린저호는 야마토게임연타 화제였다. 미국 최초의 민간인 우주비행사로 초등학교 교사 크리스타 맥컬리프가 탑승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로켓이 상승하자 대중은 일제히 환호했다.
기대에 찬 환호는 2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비명으로 바뀌었다. 발사 후 73초, 오른쪽 고체 로켓 부스터에서 작은 불꽃이 분출됐다. 곧이어 거대한 폭발음을 남기며 챌린저호는 산산조각 났다. 바다이야기 짙은 연기가 Y자 모양으로 갈라지며 하늘을 가득 채웠다.
로켓 파편은 대서양 곳곳에 가라앉았다. 이 모든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시청자들은 충격에 그 자리에서 숨을 죽였다.
우주 개발을 소련과의 냉전 경쟁에서 핵심 과제로 추진하던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날 예정된 연설을 취소하고 전 국민 위로 담화를 오션릴게임 발표했다. 희망을 품고 챌린저호에 탑승한 7명의 승무원은 그렇게 지금까지도 지구로 귀환하지 못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곧장 원인 분석에 나섰다. 같은 해 7월, 사고 원인으로 로켓 연료탱크의 이음매 부분에 있는 O자 모양 고무링(O-링)을 지목했다. 고무로 만들어진 O-링은 로켓 연료탱크 이음매를 메워 연료 누출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고무는 저온에서 탄성이 약해진다.
발사 당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O-링이 얼었고 탄성이 약해진 O-링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연료탱크에서 뜨거운 가스가 새어 나와 폭발로 이어졌다.
챌린저호 참사는 기술 혁명으로 들뜬 20세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인류의 진보를 약속할 것만 같던 과학이 안긴 대표적 ‘기술재난’으로 거론된다. 인류 과학기술의 정수이자 가장 명민한 집단으로 칭송받는 NASA에서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까.
과학동아가 만난 공학자와 철학자, 사회학자들은 기술의 성숙만으로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챌린저호 발사 전날인 1986년 1월 27일 저녁부터 미국 플로리다주의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해 발사 직전 발사대에 고드름이 맺힌 모습. 추위에 O-링이 얼며 고무의 탄성이 줄어들었고 연료 누출을 막을 수 없었다. NASA 제공
● 기술재난 부른 ‘일탈의 정상화’
12월 5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챌린저호 참사의 근원으로 ‘일탈의 정상화’를 꼽았다.
“몇 번의 안전 확인을 거듭하더라도 명백한 실패 신호가 없으면 굳이 더 점검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거대한 조직 내에서 점점 일탈의 정상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챌린저호도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허술함이 누적돼 왔던 거죠.” 그는 사회재난을 조직 문화의 관점에서 30여 년간 연구해 온 사회학자다.
일탈의 정상화는 1996년 챌린저호 참사를 분석한 미국의 사회학자 다이앤 본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여겼던 일탈이 계속 반복되면서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밀려난다는 이론이다.
이 교수는 챌린저호 참사가 “개인의 악의나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일상적 일탈이 축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참사가 발생한 날은 챌린저호의 첫 비행이 아니었다. 챌린저호는 마지막 비행 이전 3년간 아홉 차례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NASA는 다른 우주왕복선까지 포함해 24회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O-링 손상은 총 7번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O-링이 안전을 위협하는 요주의 부품임을 인지했지만 시험 비행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자 점점 ‘납득할 만한’ 위험으로 여기게 됐다.
추후 진행된 사고조사 보고서에서는 챌린저호 발사를 두고 내부 갈등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발사 전날 밤, NASA에 로켓 부품을 조달하던 기업 ‘모턴 사이어콜’의 엔지니어 로저 보졸리는 필사적으로 발사 중단을 요청했다.
발사 예정일 온도가 뚝 떨어져 “추운 날씨에 O-링이 얼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NASA 운영진은 다음 날 챌린저호 발사를 강행했다.
이 교수는 챌린저호가 대표적인 일탈의 정상화 사례라고 지적한다.
“엔지니어들은 매일 업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데이터를 상부에 보고할 것인가 이 정도 오차는 무시할 것인가 등이죠. 이런 선택 과정에서 더 이상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작은 일탈들이 쌓여 조직 문화를 형성합니다.”
이 교수는 “챌린저호 사고는 강력한 냉전을 배경으로 한 체제 경쟁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며 일탈을 묵인하게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사회주의 진영보다 우월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력이 강하게 내려오면서 실무자의 안전을 타협하는 문화가 고착됐어요. 우주 비행에 실패할 수 없었던 미국은 발사 시점을 앞당겼고 미국 의회는 NASA에 비용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죠. 경제적 압박, 정치적 일정, 조직 내 위계 구조가 모두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높이는 쪽으로 작동하며 폭발은 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겁니다.”
● 배우지 못한 교훈, 되풀이된 참사
NASA는 사고 원인 발표와 동시에 해결책 공모에 나섰다. 개선책 중 하나를 제시한 인물은 한국인이었다. 미국 우주선 부품 제조업체 테이코엔지니어링의 정재훈 CEO(당시 부사장)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발사 당일 TV로 흰 연기를 보고도 처음엔 폭발한 줄 몰랐죠. 해결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뒤 머리를 싸맨 어느 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열 조절 장치였어요.”
정 CEO는 특수 O-링이 들어간 열 조절 장치 아이디어를 정리해 NASA에 보냈다. 40개 공모 아이디어 중에서 최종 2안으로 선정됐다. 정 부사장의 기술을 채택한 NASA는 1988년 9월 개선된 O-링을 디스커버리호에 장착해 발사했다.
NASA는 이후 모든 우주선에 새로운 열 조절 장치를 의무 장착했다. NASA의 의사결정 과정이 안전성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조직 개편에도 나섰다. 하지만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17년 후 NASA에는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다. 2003년 2월 1일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대기권 진입 중 폭발했다. 발사 당시 연료탱크 파편이 날개에 부딪혀 단열재에 균열이 생겼다. 임무를 마치고 대기권 재진입 도중 균열 부위에 불이 붙었다. 미국은 또다시 7명의 우주비행사를 잃었다.
정 CEO는 “여러 부서에 연락해 우여곡절 끝에 NASA 총책임자 론 디트모어를 만났다”며 “해결책이 거의 완성했다며 냉담한 반응이었지만 거듭 찾아가 설계도를 입수했다”고 회상했다.
정 CEO에 따르면 폭발 원인은 영하 183℃의 액체 산소 연료를 주입하는 파이프 배관 부분이었다.
“0.2in(인치) 틈새로 습기 찬 공기가 접촉하는 순간 얼음이 생기면서 연료가 가열되지 않았던 겁니다. 공기 접촉을 차단하는 0.007인치 두께의 실리콘 고무막을 최초로 개발했죠. 2003년 12월 12일 NASA에 완성품을 보냈어요.”
2005년 7월 26일 결빙 위험을 줄이는 기술적 보완을 거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다만 정CEO는 “기술적 결함을 막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며 “기술을 넘어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지점이 조직 내부에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컬럼비아호 추락 당시 모습. 컬럼비아호는 이륙 직후 외부 연료탱크에서 발생한 결함으로 발포단열재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조각은 우주왕복선의 왼쪽 날개를 손상시켰고, 이후 대기권 재돌입 과정에서 손상된 날개의 균열 부분이 대기와의 마찰로 과열돼 공중에서 폭발했다. NASA 제공
● ‘정상사고’의 함정, 극복하려면
컬럼비아호 사고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NASA는 챌린저호 사고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개선을 약속했는데 참사는 왜 재발했을까.
12월 8일 화상으로 만난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 개념으로 재발 이유를 설명했다. 물리학과 과학철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정상사고는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미국 사회학자 찰스 페로가 제시한 이론이다. 원자력 발전소, 로켓, 화학 공장처럼 고도로 복잡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철저히 관리해도 사소한 실수나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으로 사고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이 교수는 “거대 기술 시스템을 완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불확실성이 있단 걸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NASA는 우주왕복선의 내구성을 낙관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했단 걸 사고를 통해서야 알게 된 거죠. NASA는 수십 번 왕복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만들었으니 시스템을 잘 안다는 착각에 종종 빠집니다. 그러나 만든 사람조차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모르는 인공지능(AI)처럼 복잡한 시스템은 그 속을 모르는 게 일반적이에요. 두 차례 비극은 기술력을 확신하면서 발생한 거죠.”
챌린저호 발사 73초 뒤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고 하늘은 나선형의 짙은 연기로 가득 찼다. 이 장면은 당시 TV를 통해 생중계되며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NASA 제공
챌린저호는 ‘Criticality 1’ 등급 부품이 740개에 달했다. Criticality 1 등급은 고장 날 경우 승무원과 비행체를 잃을 수 있는 부품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완벽한 안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문제는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기술이든 규모가 커지면 너무나 복잡해지기에 정상사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위험하니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입장 또한 막대한 기회비용을 초래하죠. 기술을 사용할 때 엔지니어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외부 집단인 사회학자, 철학자, 윤리학자 등과 함께 논의하며 사회적 합의점을 치밀하게 찾아가야 합니다.”
정상사고를 극복하는 문화는 현실에서 가능할까. 이재열 교수는 해법으로 ‘상생형 문화’를 내놨다. 그는 미국 화학회사 듀폰의 안전 곡선을 예로 들어 조직 문화의 네 단계를 설명했다.
“1단계는 사고가 나면 ‘어쩔 수 없었다’는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2단계는 안전에 대해 ‘시키니까 한다’는 수동적 태도예요. 3단계는 ‘나에겐 문제가 없다’는 협소한 생각입니다. 4단계는 내 문제를 넘어 주변 문제도 함께 파악해서 알려주는 단계죠. 4단계까지 도달하려면 심리적 안정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위험을 보면서 소통하는 문화가 가장 바람직한 안전 문화입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을 꼽았다.
“거대 기술 시스템 앞에서 인간은 무지합니다. NASA는 컬럼비아호 참사 전까지만 해도 우주왕복선이 수십 번은 왕복 운행할 수 있다고 단정했어요. 불행을 최소화하려면 과학기술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노력하되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추모공원의 챌린저호 추모 비석(왼쪽)과 컬럼비아호 추모 비석(오른쪽). NASA는 전시관과 추모공원을 통해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다. NASA 제공
● 민간 우주 시대, 잊지 말아야 할 40년
21세기 들어 우주 개발의 주도권은 정부에서 민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로켓 재사용 기술을 처음 성공시킨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NASA보다 빠르게 달과 화성 탐사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2025년 11월 한국도 민간 우주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도로 누리호 4차 발사에 성공했다. 2032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낙관이 만연한 때일수록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점을 미국의 두 차례 참사를 통해 배웠다.
이재열 교수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조직 문화, 시스템적 특징이 결합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우주 개발이 정치적 상징성으로 활용될수록 내부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챌린저호 참사 40년, 기술은 발전했다. O-링은 개선됐고 결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개발됐다. 로켓은 더 강력해졌고 우주정거장이 건설됐다. 민간 우주기업이 등장했고 한국도 우주 강국을 꿈꾼다. 한국은 경제력과 과학기술력 모두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받는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사고와 참사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불과 1년 전 181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국내 공항에 착륙하던 둔덕을 들이받고 전소했다.
NASA는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사고 이후 ‘영원히 기억하기’ 전시관을 만들었다. 케네디우주센터에는 챌린저호 동체 일부가 전시돼 있다. 매년 추모의 날을 지정해 희생자를 기린다.
밥 카바나 NASA 안전센터장은 2023년 추모식에서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발사 결정을 내린 사람들 중 누구도 승무원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희생자들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은 결국 잊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는 먼지처럼 점차 시야에서 사라진다. 불과 1년도 안 된 재난조차 이미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묻히곤 한다. 망각에 저항하는 일부의 관심과 노력만이 재난의 기억을 되살린다.
인류는 정녕 미래로 나아갈 준비가 됐을까. 우주 개척을 꿈꾸는 우리에게 40년 전 73초 만에 사라진 우주왕복선은 지금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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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현 기자 parkdd@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