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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현 기자]
▲ 이란 언론센터가 2026년 3월 3일 공개한 항공 촬영 사진. 이란 호르모즈간주 미나브의 한 초등학교가 공습을 받아 어린이들이 사망했다. 장례식 도중, 애도객들이 무덤을 파고 있다. 이란 언론은 이 학교를 포함해 수백 명의 이란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으나, AFP 기자들은 사망자 수를 독립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사진: Iranian Pr 릴게임추천 ess Center / AFP)
ⓒ 연합뉴스 = AFP
3일, 우리 아이들은 새 학기를 시작했다.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같은 날, 이란 미나브에서는 바다이야기게임장 관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란 국기로 덮인 작은 관들, 하얀 관들. 관 위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며칠 전까지 교과서를 펼치고, 친구와 웃고, 꿈을 꾸던 얼굴들이다.
TV 뉴스 화면 속 장례 행렬을 보는 순간,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먹먹하게 떠올랐다. 상무관 강당을 빽빽이 메웠던 얼기설기 엮은 관들이 황금성릴게임사이트 겹쳐 보였다. 그 가엾은 어린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광주의 아이들이 그랬듯, 미나브의 아이들에게도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7살, 8살, 10살, 12살. 아이들은 전쟁을 선택하지 않았고, 누구의 적도 아니었고, 어떤 이념도 품지 않았다. 단지 토요일 아침, 평소처럼 학교에 갔을 뿐이다.
대체 신은 존재하는가.
온라인릴게임 존재한다면, 이 작은 관들의 행렬을 보고 있는가. 165개의 관 위에 놓인 165장의 사진을, 그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는가. 아니, 신에게 물을 것이 아니다. 물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이 야만을, 이 광기를,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미사일 버튼을 누른 손이 신의 손은 아니었다. 전쟁을 결정한 것은 인간이고, 멈추지 않는 바다이야기슬롯 것도 인간이며, 외면하는 것도 인간이다.
미나브의 아침, 멈춘 시간
2026년 2월 28일(현지시각),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 주 미나브시. 토요일은 이란의 수업일이다. 아침 10시, 샤자레 타이예베(شجره طیبه, '좋은 나무') 여자 초등학교의 7~12세 소녀들이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사일이 학교를 강타했다.
학교 이름은 꾸란 이브라힘 장(14:24)의 '좋은 나무'에서 따왔다고 한다. 건물은 무너졌고, 교과서와 가방이 피와 재에 뒤덮였다. 이란 당국의 최종 발표에 따르면 165명이 사망하고 95명이 부상했다.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국영미디어는 초기에 사망자를 180명으로 보도했으나 독립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권단체 헹가우에 따르면 당시 학교에는 약 170명의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귀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이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군은 해당 지역에서의 공격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미 국방부는 민간인 피해 보고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군이 의도적으로 학교를 표적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란 친왕정파는 IRGC(이슬람혁명수비대)의 요격 실패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있다. <알자지라> 조사보도에 따르면, 이 학교는 원래 IRGC 해군 군사 복합시설의 일부였다가 2016년 독립적인 벽과 출입구를 갖추고 분리되었다. 학교와 군 기지 사이에 전문클리닉이 있었는데, 공습 당일 미사일은 군 기지와 학교를 맞혔지만 그 사이의 클리닉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자지라>는 이것이 우연으로 설명되기 어려우며, 공격 주체가 시설 간 좌표를 구분하여 작전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이 맞다면, 오폭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쏘았든, 수업 시간의 학교를 보호할 조치가 있었는가? 사전 경고는 있었는가? 아이들은 양쪽 모두의 실패 사이에서 죽었다.
국제사회의 분노, 그리고 아이러니
유네스코(UNESCO)는 이 공격을 국제인도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규탄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도 규탄 성명을 냈다. 유니세프(UNICEF)는 민간인과 민간 시설, 특히 학교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 3월 2일, 유엔 안보리(UN Security Council)에서는 '아동, 기술, 그리고 분쟁 속 교육(Children, Technology, and Education in Conflict)'을 주제로 회의가 열렸다. 의장석에는 멜라니아 트럼프(Melania Trump)가 앉아 있었다. 미국이 3월 안보리 의장국이었기 때문이다. 멜라니아 트럼프는 "미국은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의 편에 서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이란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란 유엔대사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Amir Saeid Iravani)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회의를 이란 도시들에 공습을 가하면서 여는 것은 깊이 수치스럽고 위선적이라고 말했다. 이게 아이러니가 아니면 뭐가 아이러니인가.
유엔 정무·평화구축담당 사무차장 로즈마리 디칼로(Rosemary DiCarlo)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 UAE, 카타르, 바레인, 오만의 학교들이 문을 닫고 원격 수업으로 전환했다고 보고했다. 전쟁이 아이들의 교육권을 빼앗는 것은 폭탄이 떨어지는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날,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는 펜타곤 브리핑에서 이 전쟁의 대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교전수칙도 없고, 국가건설의 수렁도 없고, 민주주의 건설 연습도 없다. (…)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싸우며 시간이나 생명을 낭비하지 않는다. 전쟁은 지옥이고 언제나 그럴 것이다."
맞다, 전쟁은 지옥이다. 하지만 그 지옥에서 가장 먼저 타는 것은 권력자들이 아니다. 미나브에서 교과서를 펼치던 소녀들이다. 가자지구 텐트 안에서 떨던 영아들이다. '전쟁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설명도, 면책도 될 수는 없다.
가자에서 미나브까지 —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관
미나브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가자에서는 2023년 10월 이후 6만 4000명 이상의 어린이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2025년 10월 유니세프). 1000명 이상의 영아가 포함되어 있다. 유엔의 표현대로, 가자는 현대 역사상 가장 많은 어린이 절단 환자를 가진 곳이 되었다. 세이브더칠드런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첫 11개월 동안 매달 평균 475명의 어린이가 평생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부상을 입었다. 2025년 3월 휴전 결렬 이후에만 1309명이 추가 사망하고 3738명이 부상당했다(2025년 5월 유니세프).
2025년 6월 이란-이스라엘 12일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의 공습은 주거 지역과 민간 시설을 가리지 않았고, 어린이를 포함한 수백 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26년 1월 이란 정권의 자국민 시위 탄압 때 144명 이상의 어린이가 살해되었으며, 그 외에도 다수가 부상하거나 구금되었다. 이란의 아이들은 하늘에서는 미사일로, 땅에서는 자국 정권의 총에 죽어가고 있다.
전쟁은 아이들을 직접 죽이고, 학교를 부수고, 트라우마를 심고, 굶기고, 가족을 해체시킨다. 가자에서는 수만 명의 아이가 부모를 잃었고, 1만 7000명 이상이 보호자 없이 남겨졌다(유니세프). 65만 8000명의 학령기 아동이 2년 넘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수단에서는 2026년 1월에만 최소 20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유니세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평화다." (What all children need most is peace)
이 전쟁은 멈춰야 한다. 165명의 초등학생이 죽은 것이 어떤 군사적 이점에 비례하는가?
그런데, 이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란은 멀고, 중동은 복잡하고, 우리한테는 우리 문제가 있다고.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나와 무관한 고통은 없다는 감수성이다. 민주주의는 투표와 제도만이 아니라, 부당한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시민을 기르는 것이 본질이다. 한국의 민주시민교육이 4.19나 5.18을 가르치는 이유는 역사 지식 때문이 아니다. 국가 폭력에 의해 무고한 사람이 죽었을 때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내면화시키기 위해서다. 그 질문이 국경에서 멈춰야 할 이유가 없다. 미나브의 초등학교에서 165명의 아이가 죽었을 때 저건 이란 일이라고 말하는 시민을 민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민은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 토론하고,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전쟁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거나 외교는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트럼프는 의회의 전쟁 선포 없이 공격을 개시했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복수의 매체는 이 전쟁이 압도적으로 인기 없다고 보도했다. 시민이 관여하지 않으면, 권력자들은 아이들의 관으로 거리를 메우고도 '전쟁은 지옥이니까...'라고 말하며 넘어간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뿐이다.
침묵할 수 없는 이유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민주시민교육을 전 교과에 반영하면서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을 인간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시민교육(GCED) 프레임워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민주시민교육은 이미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을 자신의 영역으로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것은 얼마나 실천되고 있을까. 미나브의 아이들이 죽었을 때, 우리 교실에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아동권리협약(UNCRC)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비준한 이 협약은 모든 아동의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을 규정한다. '모든'에 국적 제한은 없다. 영유아·아동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란의 아이들 165명이 학교에서 죽은 것을 우리 관할 밖의 일로 돌리기는 어렵다.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의 문제도 있다. 이란 전쟁에 대해 한국 시민이 접하는 정보는 극도로 제한적이다. 미국 측 서사, 이란 측 서사, 맥그리거 같은 반개입주의 서사가 각각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여러 관점을 대조하고, 사실을 확인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 그 과정을 시민이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한국의 직접적 이해관계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위협받으면 한국의 원유 수입에 직격탄이다. 유가가 오르면 물가에, 물가는 보육료와 가계 부담에, 가계 부담은 출생률에 영향을 미친다. 저 먼 나라의 전쟁이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식탁까지 이어져 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것.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의 아이들에게 공감하는 학생이, 미나브의 아이들 앞에서는 멈춰도 괜찮을까. 민주시민교육이 보편적 인권을 말하면서 그 보편성이 한반도에서 멈춘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 그 교육은 완성된 것인가.
시민이 외면하면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시민이 읽고, 토론하고,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전쟁은 멈출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힘이고, 그 힘을 기르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몫이다.
에필로그 — 어떤 이란 친구에 대하여
내 아이가 어렸을 때, 아랫집에 이란 친구가 살았다. 그 아이의 이름의 뜻은 파라다이스였다. 서로 쓰는 말이 달랐지만, 아이들은 함께 놀았다. 언어가 달라도 웃음은 같았고, 손을 잡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국경은 없었다. 적도 없었다. 그냥 친구였다.
미나브의 소녀들도 누군가의 파라다이스였을 것이다. 누군가와 말이 안 통해도 서로 웃으며 뛰어놀던 아이였을 것이다. 우리는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다.
▲ 딸의 이란 친구가 그려준 그림. 서로의 우정을 담았다. (당시 만 4세) 아랫집에 살던 이란 친구가 당시 네 살이던 딸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 ⓒ 박창현
▲ 이란 언론센터가 2026년 3월 3일 공개한 항공 촬영 사진. 이란 호르모즈간주 미나브의 한 초등학교가 공습을 받아 어린이들이 사망했다. 장례식 도중, 애도객들이 무덤을 파고 있다. 이란 언론은 이 학교를 포함해 수백 명의 이란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으나, AFP 기자들은 사망자 수를 독립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사진: Iranian Pr 릴게임추천 ess Center / AFP)
ⓒ 연합뉴스 = AFP
3일, 우리 아이들은 새 학기를 시작했다.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같은 날, 이란 미나브에서는 바다이야기게임장 관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란 국기로 덮인 작은 관들, 하얀 관들. 관 위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며칠 전까지 교과서를 펼치고, 친구와 웃고, 꿈을 꾸던 얼굴들이다.
TV 뉴스 화면 속 장례 행렬을 보는 순간,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먹먹하게 떠올랐다. 상무관 강당을 빽빽이 메웠던 얼기설기 엮은 관들이 황금성릴게임사이트 겹쳐 보였다. 그 가엾은 어린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광주의 아이들이 그랬듯, 미나브의 아이들에게도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7살, 8살, 10살, 12살. 아이들은 전쟁을 선택하지 않았고, 누구의 적도 아니었고, 어떤 이념도 품지 않았다. 단지 토요일 아침, 평소처럼 학교에 갔을 뿐이다.
대체 신은 존재하는가.
온라인릴게임 존재한다면, 이 작은 관들의 행렬을 보고 있는가. 165개의 관 위에 놓인 165장의 사진을, 그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는가. 아니, 신에게 물을 것이 아니다. 물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이 야만을, 이 광기를,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미사일 버튼을 누른 손이 신의 손은 아니었다. 전쟁을 결정한 것은 인간이고, 멈추지 않는 바다이야기슬롯 것도 인간이며, 외면하는 것도 인간이다.
미나브의 아침, 멈춘 시간
2026년 2월 28일(현지시각),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 주 미나브시. 토요일은 이란의 수업일이다. 아침 10시, 샤자레 타이예베(شجره طیبه, '좋은 나무') 여자 초등학교의 7~12세 소녀들이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사일이 학교를 강타했다.
학교 이름은 꾸란 이브라힘 장(14:24)의 '좋은 나무'에서 따왔다고 한다. 건물은 무너졌고, 교과서와 가방이 피와 재에 뒤덮였다. 이란 당국의 최종 발표에 따르면 165명이 사망하고 95명이 부상했다.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국영미디어는 초기에 사망자를 180명으로 보도했으나 독립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권단체 헹가우에 따르면 당시 학교에는 약 170명의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귀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이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군은 해당 지역에서의 공격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미 국방부는 민간인 피해 보고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군이 의도적으로 학교를 표적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란 친왕정파는 IRGC(이슬람혁명수비대)의 요격 실패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있다. <알자지라> 조사보도에 따르면, 이 학교는 원래 IRGC 해군 군사 복합시설의 일부였다가 2016년 독립적인 벽과 출입구를 갖추고 분리되었다. 학교와 군 기지 사이에 전문클리닉이 있었는데, 공습 당일 미사일은 군 기지와 학교를 맞혔지만 그 사이의 클리닉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자지라>는 이것이 우연으로 설명되기 어려우며, 공격 주체가 시설 간 좌표를 구분하여 작전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이 맞다면, 오폭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쏘았든, 수업 시간의 학교를 보호할 조치가 있었는가? 사전 경고는 있었는가? 아이들은 양쪽 모두의 실패 사이에서 죽었다.
국제사회의 분노, 그리고 아이러니
유네스코(UNESCO)는 이 공격을 국제인도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규탄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도 규탄 성명을 냈다. 유니세프(UNICEF)는 민간인과 민간 시설, 특히 학교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 3월 2일, 유엔 안보리(UN Security Council)에서는 '아동, 기술, 그리고 분쟁 속 교육(Children, Technology, and Education in Conflict)'을 주제로 회의가 열렸다. 의장석에는 멜라니아 트럼프(Melania Trump)가 앉아 있었다. 미국이 3월 안보리 의장국이었기 때문이다. 멜라니아 트럼프는 "미국은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의 편에 서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이란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란 유엔대사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Amir Saeid Iravani)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회의를 이란 도시들에 공습을 가하면서 여는 것은 깊이 수치스럽고 위선적이라고 말했다. 이게 아이러니가 아니면 뭐가 아이러니인가.
유엔 정무·평화구축담당 사무차장 로즈마리 디칼로(Rosemary DiCarlo)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 UAE, 카타르, 바레인, 오만의 학교들이 문을 닫고 원격 수업으로 전환했다고 보고했다. 전쟁이 아이들의 교육권을 빼앗는 것은 폭탄이 떨어지는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날,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는 펜타곤 브리핑에서 이 전쟁의 대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교전수칙도 없고, 국가건설의 수렁도 없고, 민주주의 건설 연습도 없다. (…)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싸우며 시간이나 생명을 낭비하지 않는다. 전쟁은 지옥이고 언제나 그럴 것이다."
맞다, 전쟁은 지옥이다. 하지만 그 지옥에서 가장 먼저 타는 것은 권력자들이 아니다. 미나브에서 교과서를 펼치던 소녀들이다. 가자지구 텐트 안에서 떨던 영아들이다. '전쟁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설명도, 면책도 될 수는 없다.
가자에서 미나브까지 —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관
미나브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가자에서는 2023년 10월 이후 6만 4000명 이상의 어린이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2025년 10월 유니세프). 1000명 이상의 영아가 포함되어 있다. 유엔의 표현대로, 가자는 현대 역사상 가장 많은 어린이 절단 환자를 가진 곳이 되었다. 세이브더칠드런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첫 11개월 동안 매달 평균 475명의 어린이가 평생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부상을 입었다. 2025년 3월 휴전 결렬 이후에만 1309명이 추가 사망하고 3738명이 부상당했다(2025년 5월 유니세프).
2025년 6월 이란-이스라엘 12일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의 공습은 주거 지역과 민간 시설을 가리지 않았고, 어린이를 포함한 수백 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26년 1월 이란 정권의 자국민 시위 탄압 때 144명 이상의 어린이가 살해되었으며, 그 외에도 다수가 부상하거나 구금되었다. 이란의 아이들은 하늘에서는 미사일로, 땅에서는 자국 정권의 총에 죽어가고 있다.
전쟁은 아이들을 직접 죽이고, 학교를 부수고, 트라우마를 심고, 굶기고, 가족을 해체시킨다. 가자에서는 수만 명의 아이가 부모를 잃었고, 1만 7000명 이상이 보호자 없이 남겨졌다(유니세프). 65만 8000명의 학령기 아동이 2년 넘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수단에서는 2026년 1월에만 최소 20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유니세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평화다." (What all children need most is peace)
이 전쟁은 멈춰야 한다. 165명의 초등학생이 죽은 것이 어떤 군사적 이점에 비례하는가?
그런데, 이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란은 멀고, 중동은 복잡하고, 우리한테는 우리 문제가 있다고.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나와 무관한 고통은 없다는 감수성이다. 민주주의는 투표와 제도만이 아니라, 부당한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시민을 기르는 것이 본질이다. 한국의 민주시민교육이 4.19나 5.18을 가르치는 이유는 역사 지식 때문이 아니다. 국가 폭력에 의해 무고한 사람이 죽었을 때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내면화시키기 위해서다. 그 질문이 국경에서 멈춰야 할 이유가 없다. 미나브의 초등학교에서 165명의 아이가 죽었을 때 저건 이란 일이라고 말하는 시민을 민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민은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 토론하고,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전쟁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거나 외교는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트럼프는 의회의 전쟁 선포 없이 공격을 개시했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복수의 매체는 이 전쟁이 압도적으로 인기 없다고 보도했다. 시민이 관여하지 않으면, 권력자들은 아이들의 관으로 거리를 메우고도 '전쟁은 지옥이니까...'라고 말하며 넘어간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뿐이다.
침묵할 수 없는 이유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민주시민교육을 전 교과에 반영하면서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을 인간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시민교육(GCED) 프레임워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민주시민교육은 이미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을 자신의 영역으로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것은 얼마나 실천되고 있을까. 미나브의 아이들이 죽었을 때, 우리 교실에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아동권리협약(UNCRC)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비준한 이 협약은 모든 아동의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을 규정한다. '모든'에 국적 제한은 없다. 영유아·아동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란의 아이들 165명이 학교에서 죽은 것을 우리 관할 밖의 일로 돌리기는 어렵다.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의 문제도 있다. 이란 전쟁에 대해 한국 시민이 접하는 정보는 극도로 제한적이다. 미국 측 서사, 이란 측 서사, 맥그리거 같은 반개입주의 서사가 각각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여러 관점을 대조하고, 사실을 확인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 그 과정을 시민이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한국의 직접적 이해관계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위협받으면 한국의 원유 수입에 직격탄이다. 유가가 오르면 물가에, 물가는 보육료와 가계 부담에, 가계 부담은 출생률에 영향을 미친다. 저 먼 나라의 전쟁이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식탁까지 이어져 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것.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의 아이들에게 공감하는 학생이, 미나브의 아이들 앞에서는 멈춰도 괜찮을까. 민주시민교육이 보편적 인권을 말하면서 그 보편성이 한반도에서 멈춘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 그 교육은 완성된 것인가.
시민이 외면하면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시민이 읽고, 토론하고,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전쟁은 멈출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힘이고, 그 힘을 기르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몫이다.
에필로그 — 어떤 이란 친구에 대하여
내 아이가 어렸을 때, 아랫집에 이란 친구가 살았다. 그 아이의 이름의 뜻은 파라다이스였다. 서로 쓰는 말이 달랐지만, 아이들은 함께 놀았다. 언어가 달라도 웃음은 같았고, 손을 잡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국경은 없었다. 적도 없었다. 그냥 친구였다.
미나브의 소녀들도 누군가의 파라다이스였을 것이다. 누군가와 말이 안 통해도 서로 웃으며 뛰어놀던 아이였을 것이다. 우리는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다.
▲ 딸의 이란 친구가 그려준 그림. 서로의 우정을 담았다. (당시 만 4세) 아랫집에 살던 이란 친구가 당시 네 살이던 딸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 ⓒ 박창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