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웃는 남자들, 아이코스ICOS MAX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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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웃는 남자들, 아이코스ICOS MAX의 비밀
웃음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남자의 웃음에는.늘 피곤에 쩔어 있던 얼굴이 생기를 되찾고, 무기력했던 하루가 활기로 채워질 때, 사람들은 묻습니다.무슨 일 있어요? 요즘 왜 이렇게 좋아 보여요?그때 조용히 웃으며 말할 수 있습니다.아이코스ICOS MAX 덕분입니다.
그 남자의 웃음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남자의 자신감은 단순히 겉모습이나 말솜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몸속 깊은 에너지, 스스로에 대한 신뢰, 그리고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이 진짜 자신감의 뿌리입니다.
그러나 많은 남성들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을 지나며 점점 웃지 않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밤이 두려워지며,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죠.나, 예전 같지 않은데?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분전환이 아니라 신체의 핵심 기능을 회복시키는 과학적 접근입니다. 바로 그 해답이 아이코스ICOS MAX입니다.
아이코스가 다른 이유과학으로 설명되는 웃음
아이코스는 단순한 발기 보조제가 아닙니다. 남성의 신체 전체 밸런스 회복과 에너지 보강 , 호르몬 균형 조절 , 심리적 안정까지 고려한 설계 가 이 제품의 핵심입니다.
즉, 일시적인 자극이 아닌 지속 가능한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것이 아이코스를 선택한 남성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복용 효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발기력 개선
성욕 증진
지속력 증가
피로 해소
면역력 강화
호르몬 밸런스 유지
주요 성분천연의 힘과 임상의 결합
아이코스는 믿을 수 있는 천연 성분들을 과학적으로 배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주요 성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L아르기닌 산화질소NO 생성을 유도하여 혈관을 확장하고, 발기 기능 개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트리뷸러스질경이 추출물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촉진하여 성욕 및 전반적인 활력을 증진합니다.
마카 뿌리 추출물 남미 고산지대에서 귀하게 여겨지는 성분으로, 피로 회복과 성 기능 강화에 도움을 줍니다.
홍삼 혈액순환 개선과 면역력 강화,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인 고전적 건강식품.
아연 남성 호르몬을 구성하는 필수 미네랄로, 정자 생성 및 생식 건강을 지원합니다.
이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효과를 내는 것은 물론,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남성의 신체 전반에 활력을 부여합니다.
임상으로 증명된 발기력 향상과 성생활 만족도 개선
아이코스는 단순히 효과만을 내세우지 않습니다.다수의 국내외 임상 시험에서 아래와 같은 결과를 입증했습니다.
복용 후 30분~1시간 이내에 발기력 증가
최대 36시간 효과 지속
성생활의 질이 평균 70 이상 개선
성욕 회복 및 피로 감소를 90 이상의 사용자가 체감
이 수치는 단지 설문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실제 호르몬 수치, 혈류량, 발기 강도 등을 분석한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니다.
복용법과 안전성
복용 시점: 성행위 30분 전, 또는 하루 중 가장 피로가 느껴질 때
복용 횟수: 1일 1캡슐
지속 기간: 효과는 최대 36시간 지속 가능
식사 여부: 식사와 무관하나, 공복 시 흡수율이 더 높음
또한 아이코스는 천연 성분으로만 구성되어 있어화학적 부작용 우려가 거의 없으며, 처방전 없이도 복용이 가능합니다.다만, 고혈압, 심장질환, 약물 복용 중인 경우에는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이런 남성이라면 꼭 필요합니다
성기능 저하로 인해 자신감을 잃은 남성
부부 관계에서 만족감이 줄어든 남성
일상 속 피로감으로 활력을 잃은 중년 남성
건강한 성생활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남성
아이코스는 단지 약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리셋하는 시작점입니다.
사용자 후기매일 웃을 수 있는 이유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확실히 다릅니다. 밤의 시간이 기다려질 줄은 몰랐습니다. 47세, 회사원 요즘 아내가 먼저 말하더군요. 당신 요즘 참 멋있다고요. 52세, 자영업 비아그라처럼 심장에 부담도 없고, 자연스럽게 컨디션이 올라오니 이게 진짜다 싶어요. 43세, 교사이들은 모두 아이코스를 복용한 뒤 변화된 삶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말합니다.지금은 매일 웃을 수 있다고.
결론당신의 웃음, 아이코스가 책임집니다
단순한 웃음이 아닙니다.스스로를 사랑하는 웃음,파트너와 함께하는 웃음,삶을 진심으로 즐기는 웃음.
그 웃음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 아이코스ICOS MAX입니다.
남자의 자신감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지만,한 번 잃으면 오랫동안 되찾기 어렵습니다.그렇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입니다.
이제 당신이 웃을 차례입니다.비밀은 아이코스에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남성들의 자신감을 높여주는 제품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처방전 필요없는 비아그라 디시와 같은 키워드로 정보를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구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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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nara.info
1979년 3월10일 당시 노동절 원풍모방 노동자들의 탈춤 공연. 필자 제공
환갑을 전후한 십여명의 여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2019년 가을, 서울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원풍동지회 총회와 126명의 구술 증언록 출판기념식이었다. 양복지 ‘킹텍스’ 생산공장 원풍모방에서 1982년까지 일한 노조원과 그 자녀들, 어린 손주까지 삼대에 걸친 주최 쪽 손님과 외빈들로 공간은 빼곡했다. 헐렁한 검은 바지와 흰 티셔츠의 할미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 바다이야기게임방법 간, 눈자위가 붉어진 관객들은 때때로 박장대소하다가도 손수건을 꺼냈다. 탈춤에서 한삼을 휘날리는 할머니와 “얼쑤, 잘한다!” 대거리를 하는 관객들이 신기한지 아이들은 두리번거리다 까르륵거렸다.
행사 5개월 전, 이번에 탈춤 한번 춰볼까, 말이 나온 후 제주, 광주, 경기도까지 전국에 흩어져 사는 10여명이 매달 한차례 1박으로 만나 연습하 사아다쿨 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양사위가 먼저니, 겹사위가 먼저느니 왈가왈부에, 대사 한줄 외고는 금방 ‘업은 아기 3년 찾는’ 격으로 헤맸다. 손주 백일잔치, 조카 결혼식, 무너진 비닐하우스 정비며 온갖 가정사도 많았으나, 이런저런 일들을 미루고 돌려막고 포기했다.“10분만 쉬자” 하고 보면 어느새 코를 골고, 10분 연습하고 나면 근육이 뭉친다고 아구구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비명이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선 무대였다. 스무살에 높이 뛰던 팔다리는 이제 삐걱거리고 급히 만든 탈은 코 자리인지 입 구멍인지 답답해 무대 밖으로 던져 버리는가 하면 대사는 깜깜해 에이 모르겠다며 덩기덕 쿵덕 팔을 저어버려도 뭔 대수, 상관없었다. 40여년 전의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반갑고 먹먹한 공연이었다.
릴게임바다이야기
2019년 가을, 서울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원풍동지회 총회에서, 40년 전 원풍모방 노조 탈춤반 회원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필자 제공
원풍탈춤반은 1979년 1월에 만들어졌다. 크리스찬 아카데미 활동으로 교류하던 기독교장로회 청 릴게임한국 년회(기청) 탈춤팀이 원풍 노조 명절 잔치에서 두차례 한 공연과, 1978년 제일교회에서 상연한 노래극 ‘공장의 불빛’(김민기) 등이 계기였다. 몇차례의 탈춤과 마당극 관람을 통해 관심이 높아진 노조 지도부가 기청 활동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해 응한 덕이다.
노조는 3교대 순환근무로 나누어진 A, B, C반에서 각 열명씩 30명을 모집해 팀을 꾸린 후 그중에서 회장과 연구부장, 각 반 반장을 뽑았다. 나는 초기 연구부장을 맡았다. 대방동 돈보스코 회관에서 첫 수련회를 하며 회장이 선언문을 낭독했다. “우리는 노동자, 민중, 농민의 자녀들로 사명 의식을 가지고 모였다. 결코 오락이나 흥미만 돋우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노동자문화를 찾는다는 보람과 긍지로 …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기반을 튼튼히 다져 가자.”
당시는 3월10일이 근로자의 날이었다. 1월에 탈춤반을 꾸리고 보니 3월이 코앞이라 즉시 공연 준비에 돌입했다. 첫 작품은 원풍노조 역사를 되짚는 동시에 기업주와 어용노조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실태, 그에 맞선 노동자들이 단결해 승리하는 내용이었다. 상류층을 상징하는 놀이판에는 부패와 쾌락, 음모의 장면들을 우스꽝스럽게 꾸미고 노동자 판에서는 부조리와 싸우는 노동자, 생각 말고 그냥 살자는 노동자, 기업주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노동자 부류가 등장해 우여곡절 끝에 단결해서 이기는 내용이었다. 매주 두세차례 퇴근 뒤 모여 대본 짜고 연습하느라 잠은 부족하고 고단했지만, 사는 맛을 느꼈다. 대사를 외우고 춤을 추는 눈들이 반짝였다. 연습하다 출근하는 야근반 동료에게 이 시절 우리가 나눈 정은 박카스였다. “이거 마시고 졸지 마” 꼭 쥐여준 음료를 작업복 주머니에 넣고 기계 앞에서 대사를 읊으며 졸음을 이겨냈다. 기청 학생들은 매번 번을 정해 달려왔고 식당 아주머니들이 듬뿍듬뿍 식판을 채워주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장면에 따라 웃음과 야유가 넘나들다가 구사대가 노동자를 폭행하는 장에서는 일부 조합원이 울음을 터뜨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승리로 끝나 기쁨이 되었다. 공연장 가득 함성이 쏟아졌고 전 조합원의 흥겨운 뒤풀이로 이어졌다. 대중 앞에서 나를 춤추게 한 첫 무대이기도 했다.
원풍노조 65개 소그룹 중에도 특히 탈춤반이 도드라졌다. 공장 옥상의 뙤약볕 아래서 춤추고 상근자들이 퇴근한 노조 사무실에서 늦도록 뚱땅거렸다. 사무실 한구석에 풀주머니가 쌓이고 신문지를 불리고 이겨 만든 탈을 말리기 위해 온 탁자에 늘어놓았다. 급기야 탈춤반이 너무 몰려다니며 시끄럽다는 민원을 받기도 했다.
장구를 잘 치는 친구, 춤사위가 시원한 친구, 배역을 기가 막히게 소화하는 친구 등 각자의 자질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몸치에 박치인 나는 상쇠 다음인 꽹과리의 부쇠를 맡았는데 상쇠를 방해만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탈춤 불량품’이었지만 그래도 쓸 만한 구석이 하나는 있었는데 바로 대본을 만드는 일이었다. 전통 민속놀이 책을 참고하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언어화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노가바’(기존 곡에 가사만 바꾼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좀 청승맞은 구석이 있던 나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에 맞춰 가사를 바꿨다.
“내 손 거쳐 만든 물건 백화점엔 가득해도/ 셋방살이 내 방에는 재고품도 하나 없네…”
4절까지 만들어 흥얼댄 이 노래는 나중 한국노동조합협의회가 엮은 노래책에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1981년께 원풍모방 옥상에서 진행된 탈춤반 공연 연습 장면. 필자는 1980년 12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강제사직서를 써야 했던 탓에 이때 공연엔 참여하지 못했다. 필자 제공
탈춤반은 노동절, 명절, 노사협상, 체육대회, 부서 야유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즉석에서 징 북 장구 꽹과리로 흥을 돋우기도 하며 거의 모든 행사에서 감초 구실을 했다. 1980년 5월13일 한국노총회관 점거 농성장에서는 어용 노총 쇄신과 노동 기본권 보장 촉구에 관한 대사를 만들어 신나게 춤췄는데 그 봄이 며칠 후 그리 처참히 무너질 줄은 몰랐다.
원풍 탈반의 소문이 나면서 외부 공연 요청도 제법 많아졌다.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증축 개관 기념행사,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지도자대회, 한신대학교 등 크고 작은 내외부 공연이 16차례 넘게 이루어졌다. 특히 부산 조선방직쟁의(1952년) 과정을 극으로 만든 ‘조방쟁의’ 공연의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1982년, 원풍노조가 파괴당하고 우여곡절을 거쳐 83년 1월19일 해산을 결정했다. 해산식 날 “각자 현장을 찾아 새로운 씨앗이 되자” 하는 선언문 낭독 후 마지막으로 탈춤반이 춤을 추었고 강당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2019년 관객의 눈물은 그날의 회한이었다.
옛 대본을 살펴보다 그 시대의 바람이 지금도 별다르지 않음을 서글퍼하며 그때의 기원을 재생한다.
“유세차 경신년 3월10일, 노동절을 맞이하여 우리 노동자들이 이렇게 모였으니 이 길 저 길, 거리 귀신님, 원풍모방 지신님이여 이 자리 무사히 끝나도록 인도하시기를 비나이다. 또한 근로조건 개선하라 불타도록 외치다가 지금은 지하에 계신 전태일 귀신님, 생존권 찾으려고 싸우다 투구 쓴 몽둥이에 피 흘리며 죽은 김경숙 귀신님, 두루 이 조촐한 자리 함께하여 살피소서. 남영귀신, 해태귀신, 원풍귀신, 동일귀신, 청계피복귀신, 백만 노동자 수호하는 귀신님들이시여, 이 나라의 노동자들이 참된 권리 찾아내고 노동인권 보장받아 기쁘게 일할 수 있도록 하소서.
옷 바꿔 입은 가짜 귀신, 몽둥이에 투구 귀신, 카메라든 정보 귀신, 귀족노조 어용 귀신, 노동삼권 거머쥐고 노동자를 깔보는 귀신, 물가폭등 귀신, 혼란 온다 떠들면서 계엄령 잡은 귀신, 껍데기뿐인 수출증대 성장 귀신 썩썩 물러나게 하여 주시옵고, 노동삼권 돌려받고 보위법이 철폐되고 해고자가 복직되고 어용 귀족 없어지고 생계비를 보장받고 감옥이 없어지는 평등하고 밝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두루 살피시옵기를 비나이다. 상향.” (1980년 3·10 노동절 탈춤 공연 제문)
장남수
환갑을 전후한 십여명의 여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2019년 가을, 서울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원풍동지회 총회와 126명의 구술 증언록 출판기념식이었다. 양복지 ‘킹텍스’ 생산공장 원풍모방에서 1982년까지 일한 노조원과 그 자녀들, 어린 손주까지 삼대에 걸친 주최 쪽 손님과 외빈들로 공간은 빼곡했다. 헐렁한 검은 바지와 흰 티셔츠의 할미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 바다이야기게임방법 간, 눈자위가 붉어진 관객들은 때때로 박장대소하다가도 손수건을 꺼냈다. 탈춤에서 한삼을 휘날리는 할머니와 “얼쑤, 잘한다!” 대거리를 하는 관객들이 신기한지 아이들은 두리번거리다 까르륵거렸다.
행사 5개월 전, 이번에 탈춤 한번 춰볼까, 말이 나온 후 제주, 광주, 경기도까지 전국에 흩어져 사는 10여명이 매달 한차례 1박으로 만나 연습하 사아다쿨 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양사위가 먼저니, 겹사위가 먼저느니 왈가왈부에, 대사 한줄 외고는 금방 ‘업은 아기 3년 찾는’ 격으로 헤맸다. 손주 백일잔치, 조카 결혼식, 무너진 비닐하우스 정비며 온갖 가정사도 많았으나, 이런저런 일들을 미루고 돌려막고 포기했다.“10분만 쉬자” 하고 보면 어느새 코를 골고, 10분 연습하고 나면 근육이 뭉친다고 아구구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비명이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선 무대였다. 스무살에 높이 뛰던 팔다리는 이제 삐걱거리고 급히 만든 탈은 코 자리인지 입 구멍인지 답답해 무대 밖으로 던져 버리는가 하면 대사는 깜깜해 에이 모르겠다며 덩기덕 쿵덕 팔을 저어버려도 뭔 대수, 상관없었다. 40여년 전의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반갑고 먹먹한 공연이었다.
릴게임바다이야기
2019년 가을, 서울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원풍동지회 총회에서, 40년 전 원풍모방 노조 탈춤반 회원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필자 제공
원풍탈춤반은 1979년 1월에 만들어졌다. 크리스찬 아카데미 활동으로 교류하던 기독교장로회 청 릴게임한국 년회(기청) 탈춤팀이 원풍 노조 명절 잔치에서 두차례 한 공연과, 1978년 제일교회에서 상연한 노래극 ‘공장의 불빛’(김민기) 등이 계기였다. 몇차례의 탈춤과 마당극 관람을 통해 관심이 높아진 노조 지도부가 기청 활동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해 응한 덕이다.
노조는 3교대 순환근무로 나누어진 A, B, C반에서 각 열명씩 30명을 모집해 팀을 꾸린 후 그중에서 회장과 연구부장, 각 반 반장을 뽑았다. 나는 초기 연구부장을 맡았다. 대방동 돈보스코 회관에서 첫 수련회를 하며 회장이 선언문을 낭독했다. “우리는 노동자, 민중, 농민의 자녀들로 사명 의식을 가지고 모였다. 결코 오락이나 흥미만 돋우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노동자문화를 찾는다는 보람과 긍지로 …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기반을 튼튼히 다져 가자.”
당시는 3월10일이 근로자의 날이었다. 1월에 탈춤반을 꾸리고 보니 3월이 코앞이라 즉시 공연 준비에 돌입했다. 첫 작품은 원풍노조 역사를 되짚는 동시에 기업주와 어용노조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실태, 그에 맞선 노동자들이 단결해 승리하는 내용이었다. 상류층을 상징하는 놀이판에는 부패와 쾌락, 음모의 장면들을 우스꽝스럽게 꾸미고 노동자 판에서는 부조리와 싸우는 노동자, 생각 말고 그냥 살자는 노동자, 기업주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노동자 부류가 등장해 우여곡절 끝에 단결해서 이기는 내용이었다. 매주 두세차례 퇴근 뒤 모여 대본 짜고 연습하느라 잠은 부족하고 고단했지만, 사는 맛을 느꼈다. 대사를 외우고 춤을 추는 눈들이 반짝였다. 연습하다 출근하는 야근반 동료에게 이 시절 우리가 나눈 정은 박카스였다. “이거 마시고 졸지 마” 꼭 쥐여준 음료를 작업복 주머니에 넣고 기계 앞에서 대사를 읊으며 졸음을 이겨냈다. 기청 학생들은 매번 번을 정해 달려왔고 식당 아주머니들이 듬뿍듬뿍 식판을 채워주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장면에 따라 웃음과 야유가 넘나들다가 구사대가 노동자를 폭행하는 장에서는 일부 조합원이 울음을 터뜨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승리로 끝나 기쁨이 되었다. 공연장 가득 함성이 쏟아졌고 전 조합원의 흥겨운 뒤풀이로 이어졌다. 대중 앞에서 나를 춤추게 한 첫 무대이기도 했다.
원풍노조 65개 소그룹 중에도 특히 탈춤반이 도드라졌다. 공장 옥상의 뙤약볕 아래서 춤추고 상근자들이 퇴근한 노조 사무실에서 늦도록 뚱땅거렸다. 사무실 한구석에 풀주머니가 쌓이고 신문지를 불리고 이겨 만든 탈을 말리기 위해 온 탁자에 늘어놓았다. 급기야 탈춤반이 너무 몰려다니며 시끄럽다는 민원을 받기도 했다.
장구를 잘 치는 친구, 춤사위가 시원한 친구, 배역을 기가 막히게 소화하는 친구 등 각자의 자질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몸치에 박치인 나는 상쇠 다음인 꽹과리의 부쇠를 맡았는데 상쇠를 방해만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탈춤 불량품’이었지만 그래도 쓸 만한 구석이 하나는 있었는데 바로 대본을 만드는 일이었다. 전통 민속놀이 책을 참고하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언어화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노가바’(기존 곡에 가사만 바꾼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좀 청승맞은 구석이 있던 나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에 맞춰 가사를 바꿨다.
“내 손 거쳐 만든 물건 백화점엔 가득해도/ 셋방살이 내 방에는 재고품도 하나 없네…”
4절까지 만들어 흥얼댄 이 노래는 나중 한국노동조합협의회가 엮은 노래책에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1981년께 원풍모방 옥상에서 진행된 탈춤반 공연 연습 장면. 필자는 1980년 12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강제사직서를 써야 했던 탓에 이때 공연엔 참여하지 못했다. 필자 제공
탈춤반은 노동절, 명절, 노사협상, 체육대회, 부서 야유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즉석에서 징 북 장구 꽹과리로 흥을 돋우기도 하며 거의 모든 행사에서 감초 구실을 했다. 1980년 5월13일 한국노총회관 점거 농성장에서는 어용 노총 쇄신과 노동 기본권 보장 촉구에 관한 대사를 만들어 신나게 춤췄는데 그 봄이 며칠 후 그리 처참히 무너질 줄은 몰랐다.
원풍 탈반의 소문이 나면서 외부 공연 요청도 제법 많아졌다.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증축 개관 기념행사,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지도자대회, 한신대학교 등 크고 작은 내외부 공연이 16차례 넘게 이루어졌다. 특히 부산 조선방직쟁의(1952년) 과정을 극으로 만든 ‘조방쟁의’ 공연의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1982년, 원풍노조가 파괴당하고 우여곡절을 거쳐 83년 1월19일 해산을 결정했다. 해산식 날 “각자 현장을 찾아 새로운 씨앗이 되자” 하는 선언문 낭독 후 마지막으로 탈춤반이 춤을 추었고 강당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2019년 관객의 눈물은 그날의 회한이었다.
옛 대본을 살펴보다 그 시대의 바람이 지금도 별다르지 않음을 서글퍼하며 그때의 기원을 재생한다.
“유세차 경신년 3월10일, 노동절을 맞이하여 우리 노동자들이 이렇게 모였으니 이 길 저 길, 거리 귀신님, 원풍모방 지신님이여 이 자리 무사히 끝나도록 인도하시기를 비나이다. 또한 근로조건 개선하라 불타도록 외치다가 지금은 지하에 계신 전태일 귀신님, 생존권 찾으려고 싸우다 투구 쓴 몽둥이에 피 흘리며 죽은 김경숙 귀신님, 두루 이 조촐한 자리 함께하여 살피소서. 남영귀신, 해태귀신, 원풍귀신, 동일귀신, 청계피복귀신, 백만 노동자 수호하는 귀신님들이시여, 이 나라의 노동자들이 참된 권리 찾아내고 노동인권 보장받아 기쁘게 일할 수 있도록 하소서.
옷 바꿔 입은 가짜 귀신, 몽둥이에 투구 귀신, 카메라든 정보 귀신, 귀족노조 어용 귀신, 노동삼권 거머쥐고 노동자를 깔보는 귀신, 물가폭등 귀신, 혼란 온다 떠들면서 계엄령 잡은 귀신, 껍데기뿐인 수출증대 성장 귀신 썩썩 물러나게 하여 주시옵고, 노동삼권 돌려받고 보위법이 철폐되고 해고자가 복직되고 어용 귀족 없어지고 생계비를 보장받고 감옥이 없어지는 평등하고 밝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두루 살피시옵기를 비나이다. 상향.” (1980년 3·10 노동절 탈춤 공연 제문)
장남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