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가게집 딸로 자라오다
지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음식점을 오래 운영해오신 아버지는, 어딜 가나 상호만 대면 “아, 거기?” 하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아, 저도 덩달아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친구 중에는 아버지 때부터 오랜 단골이라는 아이들도 많고, 가족 단위로 식사를 자주 오는 등, 저희 가게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존재감을 발산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한때는 지역 내 어디를 가기만 해도 “네가 어디 가게 딸이라며?” 물어보는 사람도 많고, 자연스럽게 저만의 특징이나 장점을 드러내기도 전에 캐릭터가 생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보다는 저 하나로 온전히 인출장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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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 제가 살던 지역을 벗어나고 나서도, 심심찮게 “아, 거기 맛집 유명하지!” 대답해주는 사람이 많아, 그때부터는 저희 가게보다 저 자체가 유명해지려 노력하는 일 자체를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평생에 걸쳐 쌓아오신 난공불락의 성에, 아직 어린 제가 도전하는 자체가 넌센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상당한 공력을 쌓아 오신 데다가, 현재 위치에 안주하는 일 없이 언제나 현역에서 부지런히 노력하시는 아버지와 저의 격차는 이미 상당히 벌어져 있었기에, 제가 조금이나마 메워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역할을 무조건 원망하기보다, 최대한 이용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버지 가게의 존재감이 언제나 후광처럼 제 배경에 존재해준 덕분에, 저는 어디를 가더라도 존재감을 잃을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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