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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인방송] 과거 라디오 방송국 PD를 시작으로 워커힐호텔 대형 공연 프로듀서 그리고 기획사 대표까지. 화려하고 거대한 쇼비즈니스 세계 정。을 찍었던 그가 돌연 인천의 작은 소극장 극장장으로 부임했을 때,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척박했던 공공 소극장 '문학시어터'를 보란듯이 인천의 독보적인 문화공간으로 키워내며 고정 관객층을 단단하게 확보해냈다.
여기서 멈춰도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시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었다. 안정적인 공공 극장 극장장 자리를 내려놓고, 이제는 콘텐츠 라이브 콜렉티브 'Studio110'을 통해 또 다시 거친 스타트업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경인방송 <이슈&피플>에서 만난 현어진 대표는 '왜 또다시 모험이냐'는 질문에 "무대 위에서 휘발되는 지식과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예술 생태계를 살리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2021년 5월 문학시어터에서 공연된 음악극 '천변살롱' 포스터. [사진=문학시어터 홈페이지 갈무리]
'공간'이 주도적으로 콘텐츠를 생산...예술가와 관객의 마음 모두 사로잡다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프로듀서다. 라디오 방송국과 대형 호텔 공연, 대학로 소극장 공연들, 수많은 콘서트와 공연들을 기획하며 그가 몸으로 체득한 노하우는 단 하나, '현장의 힘'이었다. 2017년 인천 문학시어터 극장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여건은 척박함 그 자체였다. 예산도 부족했고 관객의 발길도 뜸했다. 공공 소극장 특성상 행정처리와 공문서에 치여야했다. 대관 외에는 자체 콘텐츠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문학야구장 1루쪽 지하에 자리한 위치 때문에 때때로 들리는 엄청난 소음이라는 변수도 있었다.
"결국 답은 자체 콘텐츠였습니다. 지역이라고 해서 수준을 낮추는 게 아니라, 인천 시민들이 진짜 갈증을 느끼는 고품질의 공연을 직접 기획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후 문학시어터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무대를 빌려주는 '대관용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창작물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인큐베이터'가 돼야 한다는 그의 공간 철학 덕분이었다.
그는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전설적인 밴드 '동물원' 콘서트를 유치하고, 황석정·하림의 음악극 '천변살롱' 등 서울 대학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명품 자체 기획 공연들을 문학시어터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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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즉각 반응했다.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할 수 있도록 품을 내어주고, 관객들이 마실 가듯 모여들자 극장에는 자연스럽게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른 극장장들과는 달리 당시 현어진 극장장은 공연 전후에 관객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어느새 문학시어터는 단순한 동네 극장이 아닌, '믿고 보는 콘텐츠를 가진 극장'이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얻게 됐다. 고정 관객들이 생겼고, 특별한 행사나 공연이 없는 날에도 현 관장을 보러 관객들이 발걸음을 하기도 했다. 공연때마다 관객석은 가득찼다.
문학시어터의 성공은 인천시민 역시 높은 문화적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서울 옆 인천'이어서 서울보다 집객력이 약하고 구매력도 높지 않다는 편견을 깬 것이기도 했다. 결국 좋은 콘텐츠는 어디에서나 관객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현어진 대표가 공연을 앞두고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 대표는 현장의 경험들을 기록으로 남겨서 전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문화 생태계가 선순환하며 '인간적 현장성'을 지켜내는 방향이라고 믿는다. [사진=Studio110]
박수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현장의 경험과 예술성, 글로 기록하고 나눠야
잘나가던 공공 소극장 극장장 직을 내려놓고 다시 도전한 'Studio110' 모토는 독특하다.
"무대 위에서만 전해지던 지식을 기록으로 남긴다"
공연예술은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지면 사라지는 휘발성이 강한 장르다. 기획자의 노하우, 연출가의 고민, 배우의 호흡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기억 속에만 남는다. 그는 이 위대한 현장 경험들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그는 못내 아쉬웠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출판하는 작업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게 아닙니다. 건강한 예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거름을 쌓는 일이죠. 선배들의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기록으로 남아야 신진 아티스트와 기획자들이 그걸 발판 삼아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으니까요."
현 대표는 무대 위 지식을 기록하는 작업이 단순한 아카이빙을 넘어 '예술 생태계'를 기름지게 하는 가장 따뜻한 밑거름이라고 믿는다. 선배 세대가 치열하게 부딪히며 쌓아 올린 현장의 노하우가 기록으로 남겨질 때, 비로소 새로 시작하는 신진 아티스트와 젊은 기획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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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으로 문화예술계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시대, 기획자와 연출가가 지켜내야 할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적 현장성'입니다. 무대 위 배우의 미세한 떨림,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숨소리,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관객과 예술가의 교감은 오직 그 시간,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인간들만이 나눌 수 있는 본질입니다. AI 기술은 연출가의 역량을 확장하고 오차 없는 무대를 만드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기술을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즐기고 활용해야 하겠죠."
그래서 현 대표의 스튜디오110 모토 역시 예술가들의 무형의 자산을 영원한 기록으로 붙잡아두는 데 방.이 찍혀 있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문화예술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현대 공연예술계 속에서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인간적 현장성'의 본질은 결국 사람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따뜻한 시선에 닿아 있다.
현 대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억.
2015년 고(故)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기획하고, 그 경험을 담아 '김광석 포에버' 라는 책을 공동 집필한 일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 공연은 국내 공연기획 분야에서 단일 아티스트 추모 공연 역사상 최장기, 최대 규모 브랜드 공연이란 독보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과거 추모 공연이 단순히 고인의 히트곡을 커버하는 형태였다면 2015년 공연은 출연진과 관객이 고인과 공간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연출이 큰 호응을 얻었다.
또 김광석과 동시대를 호흡했던 동물원, 박학기, 유리상자 등 선배 뮤지션뿐만 아니라 규현, 홍대광, 박시환, 김필 등 당대 젊은 아티스트들까지 대거 참가하며 '추모'라는 무거운 키워드를 전 세대가 즐기는 '축제' 형태로 재정의하는 기획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에게 가수 김광석은 단순한 대중음악가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위로의 상징입니다. 그가 남긴 음악처럼, 무대 위에서 전해지는 감동 역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해왔습니다."
현 대표는 지난해 수원컨벤션에서 열린 양희은 콘서트 연출을 맡았다. 기술의 시대에 '인간의 온기'를 찾아내는 그의 프로듀싱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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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tudio110]
"공연장은 창작물의 인큐베이터"...단순한 대관 사업에 머물면 안돼
인천은 서울과 인접해 있어 문화 자본과 관객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이른바 '빨대 효과'를 겪기 쉬운 도시다. 인천의 문화적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그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인천시가 보유한 주요 경기장이나 유휴 공간, 체육 시설들을 K-문화예술의 산실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동시에 인천아트플랫폼과 같은 예술인 레지던시의 가치를 계속해서 살려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공공 소극장과 기초 문화 공간들이 제도적·재정적 한계에 부딪혀 단순한 '대관 사업'에 머무르곤 합니다. 하지만 공연장의 진짜 역할은 공간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물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인큐베이터'가 돼야 합니다."
공공 소극장이 단순한 대관처로 전락할 경우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이 단절되고 독자적인 문화 자생력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지역 레지던시 등을 통한 신진 예술가 발굴과 지원, 지역 문화공간들 협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여기에 공공극장의 예산이 시설 관리비와 인건비에 매몰되어 콘텐츠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지적하며, '시설 관리 비용'과 '콘텐츠 제작 비용'을 제도적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행정 업무에 매몰돼 독창적인 기획을 할 여력이 없는 구조를 비판하며, '행정 인력'과 '전문 기획(예술감독) 인력'을 명확히 분리해 극장 고유의 색깔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 대표는 서울이 가깝다는 .은 인천 문화의 약.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의 가능성"이라며 인천이 가진 무한한 개성과 잠재력을 응원했다.
"경인방송 청취자 여러분, 그리고 인천의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스튜디오 110을 통해 무대 위 지식을 기록으로 묶어 후배들을 위한 밑거름을 만드는 한편, 창작자로서 무대 현장에 가장 오래 남아 관객들과 눈 맞추고 감동을 나누는 기획자가 되겠습니다. Studio110이 걸어갈 이 새로운 도전에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사라질 뻔한 무대의 지식과 경험을 모아 단단한 텍스트로, 그리고 새로운 라이브 콘텐츠로 이어가겠다는 현어진의 모험. 기술의 시대에 오히려 '인간의 온기'를 붙잡으려는 이 기획자의 인생은, 이제 막 가장 뜨거운 막을 올리고 있다.
다시 듣기 [클릭] https://www.ifm.kr/article/84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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