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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eastorygame.top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제롬 파월이 2026년 1월 13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준비제도 청사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 "의회 의원들과 만남에 관해서는 저는 의사당 복도를 걸어 다니며 의원들을 만나면서 카펫이 닳도록 할 것입니다. 의장이 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우려와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가능한 한 명 모바일바다이야기 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여기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주길 바랍니다."(제롬 파월 연준 의장, 2018년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
#. 2024년 여름.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의회에서 파월에게 질문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저희 강아지 거스(Gus)가 안부 전해달래요. 파월 의장이 우리 사무실 강아지를 만난 적이 있거든요."파월은 웃으 사이다쿨 며 답했다. "거스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좋은 강아지였다고요."
"카펫이 닳도록"…파월의 '의회형 리더십'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연준 내부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널드 릴박스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연준을 흔들고, 정부 성향의 인물(스티븐 마이런)을 임명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도 파월의 지위와 권위는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월의 가치관과 정책 방향을 놓고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파월이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파월과 함께 일해본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그를 "원칙을 지키면서 바다이야기릴게임2 도 상대를 존중하는, 신뢰할 수 있는 리더"라고 말한다.
파월이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몸담았던 칼라일그룹의 공동 설립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파월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뽐내지 않습니다. 누구 위에서 군림하려 하지도 않죠.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호감 가는 인격적인 사람입니다. 경제학 박사 학위는 없지만 백경게임 ,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글라스 레디커 전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대표의 평가도 비슷한 결이다. 그는 " 파월은 탁월한 합의 도출 능력을 갖고 있어 의장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곳은 경쟁이 치열한 곳이지만, 파월과 함께 일하거나 그와 가까이 지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상원 은행위원회 공화당 간사를 지낸 패트릭 투미 전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파월의 '의회 인기'를 강조했다. 투미 전 의원은 "파월은 의회에서 매우 존경받고 인기가 높다"며 "나처럼 그의 통화정책에 강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그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2011년 연준 이사로 파월과 함께 지명됐던 제러미 스타인은 파월의 첫 인상을 이렇게 기억한다. "입사 오리엔테이션 자리에 앉았을 때 옆을 보니 사모펀드 회사 사람처럼 보였어요. 저보다 정장도 구두도 머리 스타일도 더 멋졌거든요. 그런데 그는 그런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부쉈습니다. 그는 조금도 오만하지 않았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동료들과 소통도 잘했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었어요."
경제학 박사도 아닌데…왜 워싱턴은 파월을 인정하나
파월은 경제학 박사도 아니고, 거대 이론을 들이대며 시장을 설득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최근 전임자였던 재닛 옐런, 벤 버냉키, 앨런 그린스펀처럼 '지적 카리스마'로 중앙은행을 이끈 인물들과도 결이 다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다. 미국은 왜 파월에게 권위를 부여했나. 워싱턴은 왜 그를 지지하나. 의회는 왜 그와 때로는 싸우면서도 결국 그를 인정하나.
파월의 생애를 보면 그 답을 유추할 수 있다. 파월은 미국 동부 해안의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1953년 워싱턴DC에서 교육 수준이 높은 가톨릭 가정의 6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통계학자이자 수학자였고, 아버지는 철강회사의 변호사였다. 파월은 조지타운 고등학교를 거쳐 프린스턴 대학교, 조지타운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취미는 기타 연주와 골프였다. 한때는 자전거 애호가이기도 했다.
파월의 첫 직장은 로펌 '데이비스 포크 앤드 워드웰(Davis Polk & Wardwell)'이었다. 그는 2년간 짧은 변호사 생활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월스트리트와 인연을 맺는다. 파월의 커리어가 '월가형 리더십'으로 굳어지는 출발점은 투자은행 '딜런 리드 앤드 컴퍼니(Dillon, Read & Co.)'였다. 딜런 리드는 대기업의 인수합병(M&A) 거래를 전문적으로 다뤘다. 대형 상업은행처럼 조직과 자본 규모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소수 정예 중심으로 월가 인맥과 명성이 중요한 조직이었다.
파월은 이곳에서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훗날 재무부 장관이 되는 니콜라스 브래디를 만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중함과 기밀을 지키는 방식 자체를 체득한 것이다.
파월이 근무하던 시절 이 회사의 디렉터였던 캐서린 오스틴 피츠는 "기업 문화는 매우 비밀주의적이었다. 1300년대 북유럽의 상인 길드였던 한자 동맹의 구성원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사의 사훈은 '오래된 파트너와 함께하는 진지한 비즈니스'였다. 피츠는 "그들은 조용히 일을 처리했고 기밀이 전부였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계를 정말 중시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파월이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그 관계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오래 유지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했다.
1991년 '살로먼 사태'…파월이 배운 위기 수습의 방식
니콜라스 브래디는 딜런 리드의 회장이었다. 그는 1988년 레이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에 임명됐고, 이후 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서도 재무장관을 지냈다. 파월은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로 발탁됐다. 브래디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몸담았던 은행 출신을 정부에 데려오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파월만은 예외였다.
파월의 경력에서 중요한 사건은 1991년에 터졌다.
재무부는 월가 투자은행 살로먼 브라더스가 유령회사를 동원해 국채 입찰을 조작하고, 단기국채(T-bills) 물량을 불법적으로 대거 사들여 시장을 '장악(corner)'하려 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당시 살로먼 트레이더 폴 모저는 이 방식으로 단기국채 공급량의 94%를 통제할 정도로 무리한 거래를 벌였다.
스캔들이 터지자 니콜라스 브래디 재무장관은 살로먼의 프라이머리 딜러 지위 박탈을 검토했다. 프라이머리 딜러는 연준이 진행하는 국채 경매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인 만큼, 지위 박탈은 사실상 회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조치였다.
이때 재무부 실무의 중심에는 국내금융 담당 재무부 차관보였던 파월이 있었다. 살로먼 측은 "회사가 무너지면 월가 전체로 충격이 번질 수 있다"며 총력 로비에 나섰다. 워싱턴 오피스를 이끌던 스티븐 벨은 재무부 관료들과 밤샘 통화를 벌였던 상대가 바로 파월이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재무부는 살로먼이 프라이머리 딜러 지위를 유지하도록 결정했고, 벨은 이 결정을 이끌어낸 핵심 인물로 파월을 지목했다. 월가 경험이 있던 파월이 "살로먼 붕괴가 연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이해했고, 브래디 장관의 최종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연합뉴스
월가가 아닌 워싱턴의 사모펀드…'딜 감각'을 키운 칼라일 시절
파월은 1997년 정부 경험을 활용해 칼라일그룹 파트너로 자리를 옮겼다. 칼라일그룹은 뉴욕에 둥지를 튼 전통 월가 사모펀드와 달리, 워싱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정부 지출에 의존하는 기업을 매수해 투자한 뒤 다시 파는 방식으로 유명했다. 이 과정에서 전직 정부 관료를 영입해 그들의 인맥과 정보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파월의 업무는 투자 제안서를 훑어보고 잠재력이 큰 거래를 골라내 투자하는 것이었다.
파월은 칼라일그룹 재직 시절 렉스노드 인수 딜에 관여하며, 사모펀드식 '기업을 사들여 키운 뒤 되파는' 구조를 현장에서 경험했다. 칼라일은 2002년 렉스노드를 약 9억달러에 인수한 뒤 외형을 키워 2006년 아폴로에 약 18억달러에 매각했다.
지난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재지명하고, 라엘 브레이너드(Lael Brainard) 연준 이사를 부의장으로 지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부채한도 위기에서 '초당적 DNA'를 만들다
칼라일에서 사모펀드 일을 하며 막대한 부를 이룬 파월에게도 공공 영역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월은 월가를 떠난 뒤 "재정과 부채 문제는 결국 정치가 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 초당적 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로 자리를 옮겼고, 2011년 부채한도 위기 국면에서 워싱턴의 타협을 설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의 극심한 대립으로 미국이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하자, 파월은 이 문제가 국가 경제에 미칠 치명적인 파장을 우려했다.
공화당원이었던 파월은 보수 진영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정파적 이익보다 "국가의 신용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논리를 폈고, 이 과정에서 보여준 전문성과 중립성은 훗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이 그를 연준 이사로 지명하는 결정적 발판이 됐다.
소방수와 뒷정리…그럼에도 '신뢰'가 남았다
파월 의장은 연준에 부임한 첫해 대부분의 시간을 통화경제학을 익히는 데 쏟았다. 전직 직원들은 그가 경제 논문의 각주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회상한다. 파월은 2011년 말 연준 이사로 지명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그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파월을 의장으로 재지명했다.
옐런 의장 시절 파월은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의장과 공개적으로 마찰을 빚은 적도 없었고, 금리에 대한 전반적인 비둘기파적 입장에서도 큰 틀을 유지했다. 파월은 연준 의장으로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며 위기를 잘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정책 판단을 두고 비판도 함께 따라붙었다.
코로나19 초기 파월은 '소방수'로서 만점짜리 활약을 펼치며 세계 경제의 붕괴를 막아냈다. 그러나 불을 끈 뒤 '뒷정리(긴축)' 단계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을 과소평가한 점은 그의 임기 중 가장 뼈아픈 실책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파월을 향한 인기는 식지 않았고, 신뢰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월가에서 체득한 유연함이 연준에서의 초당적 리더십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스터 조지 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그는 먼저 듣고, 공통분모를 찾으려 한다"며 "그런 태도가 사람들이 파월을 신뢰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 "의회 의원들과 만남에 관해서는 저는 의사당 복도를 걸어 다니며 의원들을 만나면서 카펫이 닳도록 할 것입니다. 의장이 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우려와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가능한 한 명 모바일바다이야기 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여기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주길 바랍니다."(제롬 파월 연준 의장, 2018년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
#. 2024년 여름.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의회에서 파월에게 질문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저희 강아지 거스(Gus)가 안부 전해달래요. 파월 의장이 우리 사무실 강아지를 만난 적이 있거든요."파월은 웃으 사이다쿨 며 답했다. "거스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좋은 강아지였다고요."
"카펫이 닳도록"…파월의 '의회형 리더십'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연준 내부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널드 릴박스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연준을 흔들고, 정부 성향의 인물(스티븐 마이런)을 임명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도 파월의 지위와 권위는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월의 가치관과 정책 방향을 놓고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파월이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파월과 함께 일해본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그를 "원칙을 지키면서 바다이야기릴게임2 도 상대를 존중하는, 신뢰할 수 있는 리더"라고 말한다.
파월이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몸담았던 칼라일그룹의 공동 설립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파월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뽐내지 않습니다. 누구 위에서 군림하려 하지도 않죠.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호감 가는 인격적인 사람입니다. 경제학 박사 학위는 없지만 백경게임 ,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글라스 레디커 전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대표의 평가도 비슷한 결이다. 그는 " 파월은 탁월한 합의 도출 능력을 갖고 있어 의장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곳은 경쟁이 치열한 곳이지만, 파월과 함께 일하거나 그와 가까이 지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상원 은행위원회 공화당 간사를 지낸 패트릭 투미 전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파월의 '의회 인기'를 강조했다. 투미 전 의원은 "파월은 의회에서 매우 존경받고 인기가 높다"며 "나처럼 그의 통화정책에 강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그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2011년 연준 이사로 파월과 함께 지명됐던 제러미 스타인은 파월의 첫 인상을 이렇게 기억한다. "입사 오리엔테이션 자리에 앉았을 때 옆을 보니 사모펀드 회사 사람처럼 보였어요. 저보다 정장도 구두도 머리 스타일도 더 멋졌거든요. 그런데 그는 그런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부쉈습니다. 그는 조금도 오만하지 않았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동료들과 소통도 잘했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었어요."
경제학 박사도 아닌데…왜 워싱턴은 파월을 인정하나
파월은 경제학 박사도 아니고, 거대 이론을 들이대며 시장을 설득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최근 전임자였던 재닛 옐런, 벤 버냉키, 앨런 그린스펀처럼 '지적 카리스마'로 중앙은행을 이끈 인물들과도 결이 다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다. 미국은 왜 파월에게 권위를 부여했나. 워싱턴은 왜 그를 지지하나. 의회는 왜 그와 때로는 싸우면서도 결국 그를 인정하나.
파월의 생애를 보면 그 답을 유추할 수 있다. 파월은 미국 동부 해안의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1953년 워싱턴DC에서 교육 수준이 높은 가톨릭 가정의 6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통계학자이자 수학자였고, 아버지는 철강회사의 변호사였다. 파월은 조지타운 고등학교를 거쳐 프린스턴 대학교, 조지타운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취미는 기타 연주와 골프였다. 한때는 자전거 애호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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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은 이곳에서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훗날 재무부 장관이 되는 니콜라스 브래디를 만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중함과 기밀을 지키는 방식 자체를 체득한 것이다.
파월이 근무하던 시절 이 회사의 디렉터였던 캐서린 오스틴 피츠는 "기업 문화는 매우 비밀주의적이었다. 1300년대 북유럽의 상인 길드였던 한자 동맹의 구성원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사의 사훈은 '오래된 파트너와 함께하는 진지한 비즈니스'였다. 피츠는 "그들은 조용히 일을 처리했고 기밀이 전부였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계를 정말 중시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파월이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그 관계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오래 유지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했다.
1991년 '살로먼 사태'…파월이 배운 위기 수습의 방식
니콜라스 브래디는 딜런 리드의 회장이었다. 그는 1988년 레이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에 임명됐고, 이후 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서도 재무장관을 지냈다. 파월은 부시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로 발탁됐다. 브래디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몸담았던 은행 출신을 정부에 데려오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파월만은 예외였다.
파월의 경력에서 중요한 사건은 1991년에 터졌다.
재무부는 월가 투자은행 살로먼 브라더스가 유령회사를 동원해 국채 입찰을 조작하고, 단기국채(T-bills) 물량을 불법적으로 대거 사들여 시장을 '장악(corner)'하려 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당시 살로먼 트레이더 폴 모저는 이 방식으로 단기국채 공급량의 94%를 통제할 정도로 무리한 거래를 벌였다.
스캔들이 터지자 니콜라스 브래디 재무장관은 살로먼의 프라이머리 딜러 지위 박탈을 검토했다. 프라이머리 딜러는 연준이 진행하는 국채 경매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인 만큼, 지위 박탈은 사실상 회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조치였다.
이때 재무부 실무의 중심에는 국내금융 담당 재무부 차관보였던 파월이 있었다. 살로먼 측은 "회사가 무너지면 월가 전체로 충격이 번질 수 있다"며 총력 로비에 나섰다. 워싱턴 오피스를 이끌던 스티븐 벨은 재무부 관료들과 밤샘 통화를 벌였던 상대가 바로 파월이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재무부는 살로먼이 프라이머리 딜러 지위를 유지하도록 결정했고, 벨은 이 결정을 이끌어낸 핵심 인물로 파월을 지목했다. 월가 경험이 있던 파월이 "살로먼 붕괴가 연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이해했고, 브래디 장관의 최종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연합뉴스
월가가 아닌 워싱턴의 사모펀드…'딜 감각'을 키운 칼라일 시절
파월은 1997년 정부 경험을 활용해 칼라일그룹 파트너로 자리를 옮겼다. 칼라일그룹은 뉴욕에 둥지를 튼 전통 월가 사모펀드와 달리, 워싱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정부 지출에 의존하는 기업을 매수해 투자한 뒤 다시 파는 방식으로 유명했다. 이 과정에서 전직 정부 관료를 영입해 그들의 인맥과 정보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파월의 업무는 투자 제안서를 훑어보고 잠재력이 큰 거래를 골라내 투자하는 것이었다.
파월은 칼라일그룹 재직 시절 렉스노드 인수 딜에 관여하며, 사모펀드식 '기업을 사들여 키운 뒤 되파는' 구조를 현장에서 경험했다. 칼라일은 2002년 렉스노드를 약 9억달러에 인수한 뒤 외형을 키워 2006년 아폴로에 약 18억달러에 매각했다.
지난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재지명하고, 라엘 브레이너드(Lael Brainard) 연준 이사를 부의장으로 지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부채한도 위기에서 '초당적 DNA'를 만들다
칼라일에서 사모펀드 일을 하며 막대한 부를 이룬 파월에게도 공공 영역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월은 월가를 떠난 뒤 "재정과 부채 문제는 결국 정치가 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 초당적 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로 자리를 옮겼고, 2011년 부채한도 위기 국면에서 워싱턴의 타협을 설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의 극심한 대립으로 미국이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하자, 파월은 이 문제가 국가 경제에 미칠 치명적인 파장을 우려했다.
공화당원이었던 파월은 보수 진영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정파적 이익보다 "국가의 신용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논리를 폈고, 이 과정에서 보여준 전문성과 중립성은 훗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이 그를 연준 이사로 지명하는 결정적 발판이 됐다.
소방수와 뒷정리…그럼에도 '신뢰'가 남았다
파월 의장은 연준에 부임한 첫해 대부분의 시간을 통화경제학을 익히는 데 쏟았다. 전직 직원들은 그가 경제 논문의 각주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회상한다. 파월은 2011년 말 연준 이사로 지명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그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파월을 의장으로 재지명했다.
옐런 의장 시절 파월은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의장과 공개적으로 마찰을 빚은 적도 없었고, 금리에 대한 전반적인 비둘기파적 입장에서도 큰 틀을 유지했다. 파월은 연준 의장으로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며 위기를 잘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정책 판단을 두고 비판도 함께 따라붙었다.
코로나19 초기 파월은 '소방수'로서 만점짜리 활약을 펼치며 세계 경제의 붕괴를 막아냈다. 그러나 불을 끈 뒤 '뒷정리(긴축)' 단계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을 과소평가한 점은 그의 임기 중 가장 뼈아픈 실책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파월을 향한 인기는 식지 않았고, 신뢰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월가에서 체득한 유연함이 연준에서의 초당적 리더십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스터 조지 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그는 먼저 듣고, 공통분모를 찾으려 한다"며 "그런 태도가 사람들이 파월을 신뢰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